특별통행권 남용해 銅 밀수한 원유시추개발회사…결말은 총살형

[북한 비화] 10호 초소 검열에 걸려 적발…"적들에 총알 재료 제공했다" 이유로 사형 집행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왼편에는 북한 신의주, 오른편에는 중국 단둥이 보인다. /사진=데일리NK

북한의 경제난 여파는 특수단위인 원유시추개발회사에도 불어닥쳤다. 평안남도에 있는 원유개발국 산하 원유시추개발회사는 자체의 힘으로 원유를 개발하라는 선대(先代)의 유훈 교시 관철을 위해 김정은이 막강한 힘을 실어준 곳으로 여러 특별대우를 받아왔다. 그러다 지난 2019년 이곳에서 큰 사건이 벌어졌다.

북한은 김일성 시기부터 평안북도의 12월5일청년광산을 원유 시추 장소로 정하고 원유개발국과 산하 원유시추개발회사에 일종의 통행 특권을 부여했다. 원유개발국이나 산하 원유시추개발회사의 물동량 수송차들에 ‘원유개발’이라는 글자를 박고 다니도록 하면서 초소에서 일절 검열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바로 이 특별통행권한을 이용해 원유시추개발회사 직원들은 평안도와 평양을 오가면서 전국각지의 동(銅)을 모아 차에 감추고는 10호 초소들을 무사통과해 접경지역인 신의주까지 날랐고, 이를 몰래 중국에 팔아넘겼다.

이들이 처음부터 국가통제품인 유색금속 밀수에 손을 댄 것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까지 겹쳐 국가계획을 못 하게 되면서 배급이나 생활비가 제대로 나오지 않자 먹고살기 위해 적동, 황동 밀수에 뛰어든 것이었다.

그러다 2019년 10월 말 신의주 석화초소에 새로 배치된 10호 초소 부초소장 김모 상위가 한밤중 ‘원유개발’이라고 적힌 원유시추개발회사 차량을 가로막는 일이 벌어졌다.

운전사들과 호송원은 창문을 열고 “원유개발국 차입니다”라고 차분히 말했지만, 금방 배치돼 온 부초소장은 “그런데요?”라고 되묻더니 증명서와 차 안의 짐을 보겠다고 했다. 이에 호송원은 “중앙에 전화해 동무가 한번 혼나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라며 검열에 불응했다.

호송원과 부초소장의 실랑이는 20분 이상 계속됐다. 호송원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을 하는 차라 동무들에게 보여줄 수 없거니와 갈 길도 바쁘다. 신의주 도착시간을 보장 못 하면 동무네가 다 책임지겠나”라고 위협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부초소장은 물러서지 않고 더더욱 차를 가로막았다.

결국 호송원은 “다른 곳으로 돌아갈 테니 동무네 문제 될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고 차를 돌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길로 에돌아가던 중에 차량이 고장 나면서 호송원과 운전사는 별수 없이 농장 민가 쪽에 차를 세우고 본부에 연락해 부속품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한 후 인근 숙박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졌다.

그러는 사이 차량에는 도둑 2명이 접근했다. 차량 적재함 철문을 뜯은 이들은 돈이 되는 적동과 황동이 마대에 가득 담겨 있는 것을 보고 급히 집에 있는 손수레까지 가져와 두 마대를 싣고 달아나버렸다. 그러면서 철문을 쇠줄로 티 나지 않게 잠가놓았다.

이튿날 부속이 도착해 차량을 고친 이들은 차 고장이 어젯밤 초소에서 자신들을 가로막은 풋내기 부초소장 때문이라면서 오기를 품고 다시 석화초소로 향했다. 그러나 당시 해당 초소에는 다른 사람들이 근무를 서고 있어 원유시추개발회사 차량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사통과됐다.

북한 평안북도 압록강변의 한 초소에서 정차 중인 북한 차량들의 모습. /사진=데일리NK

그렇게 초소를 지나 5m쯤 갔을까. 갑자기 초소 검열원이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차를 세우라고 소리쳤다. 적재함 철문이 열려 있으니 잘 닫고 출발하라는 게 그 이유였다. 호송원과 운전사가 급히 차를 세우고 재빨리 문을 닫으려는데 그 사이 그 안을 본 다른 검열원이 수상함을 느끼고 재빨리 이를 초소에 알렸다.

결국 현장 검열에 걸린 호송원과 운전사는 적재된 짐이 원유 시추와 관계없는 적동, 황동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이후 이들은 도 보위국에서 국가보위성으로 넘겨졌고, 보위성은 이 사건의 연루자들까지 모조리 파헤쳐 중앙에 보고했다.

중앙에서는 “적들에게 총알 재료를 제공하고, 나라의 귀중한 유색금속을 팔아 돈주머니를 불린 원유시추개발회사 전체를 사상 검토해 간부사업하며 관련자들은 전부 군법으로 다스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국가보위성은 2019년 11월 초 동 밀수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거나 책임이 있는 원유시추개발회사 사장, 당비서, 보위지도원 등 8명을 체포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말 당시 평양시에 속해 있던 중화군(현재는 황해북도) 사격장에 원유개발국 성원들과 가족들을 모아놓고 오랜 기간 적동, 황동 수십t을 중국에 팔아넘긴 죄로 7명에 대한 총살형을 집행했다. 그 외 나머지 1명은 무기형을 받아 함흥교화소에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특수단위들이 10호 초소 검열에서 제외되던 관례는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후에 이 일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당의 신임이 큰 자들일수록 못된 짓을 더 많이 한다”고 꼬집었다. 그런가 하면 이 사건에 관한 중앙의 지시내용을 두고서는 “중국이 적이라는 소리인가 아니면 중국에 나와 있는 안기부(국가정보원) 놈들이 우리나라 동을 다 사들여 총알이나 포탄을 만든다는 뜻인가”라는 등 무성한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