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형편’ 언급하더니…北, 급히 배급 풀자 폭등하던 쌀값 하락

평양시·군수공장·특급기업소 등 국가 주요 산업 종사자 및 특별계층에만 식량 배급 이뤄져

2018년 10월 촬영된 북한 평안남도 순천 지역 풍경. 곡물을 흥정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데일리NK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인민들의 식량 형편을 언급한 가운데, 최근 당국이 평양과 주요 기업소를 대상으로 배급을 실시해 부랴부랴 쌀 가격 안정화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달 초부터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던 북한 쌀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복수의 데일리NK 내부 소식통을 통해 북한의 지역별 시장 물가를 종합한 결과 지난 16일 평양의 쌀 가격은 1kg당 3900원, 신의주는 3850원으로 나타났다. 평양과 신의주, 혜산 등 북한 주요 도시에서 이달 초 4000원대 초반에 거래됐던 쌀 가격이 지난 8일에는 5000원대까지 오르더니 일주일 사이에 20% 이상 하락한 것이다.

1kg에 3000원까지 상승했던 옥수수 가격도 16일 평양 2300원, 신의주 2400원에 거래되는 등 쌀과 비슷한 폭으로 가격이 내려간 것으로 확인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평양에서는 지난 12일부터 중심구역은 한 달 치, 주변구역은 열흘 치의 식량 배급이 이뤄지고 있다. 배급되는 식량은 쌀과 보리, 강냉이(옥수수), 감자 등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비슷한 시기 평안도, 함경도, 자강도 등지의 군수공장과 주요 연합기업소에도 일제히 식량이 공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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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평안북도 구성시와 대관·태천군 등의 대표적인 군수공장에는 석 달 치의 식량이, 자강도 희천·강계·만포시 등의 군수기지에는 한 달 치 배급이 이뤄졌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또 함경북도 청진시에 위치한 김책제철연합기업소와 김책시에 있는 성진제강연합기업소 등 특급기업소 노동자들도 이번 주 초 배급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듯 지역별 대형 공장기업소에 배급이 이뤄지면서 평양과 신의주 등 대도시의 시장 물가가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양강도는 다른 지역보다 곡물 가격 하락세가 하루에서 이틀가량 뒤늦게 나타났고 하락폭도 비교적 작았는데, 양강도에 군수공장이나 특급기업소가 많지 않아 배급 대상이 제한돼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양강도 혜산시의 쌀 가격은 지난 2일 1kg에 4400원에 거래됐다가 값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해 15일 7000원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16일 오전 혜산 쌀값은 6350원으로 조사돼 양강도의 쌀 가격도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혜산에서도 뒤늦게 쌀 가격이 하락하는 양상이지만, 평양과 신의주의 하락폭이 두드러지면서 혜산과 다른 대도시들의 쌀 가격 차이는 현재 2000원 가까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6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가 전날(15일) 개회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 당국은 이번 배급을 두고 ‘김정일의 당 사업 개시일’(19일)을 맞아 당이 인민에게 하사하는 선물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사실상 식량 부족으로 폭등하는 쌀 가격을 서둘러 안정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분석된다.

실제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지난해 태풍 피해로 알곡 생산계획을 미달한 것으로 하여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며 “이번 전원회의에서 그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지도자의 이 같은 발언과 식량 배급이 맞물리면서 곡물 가격이 즉각적으로 안정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북한 당국은 평양시와 금속·화학·군수 등 국가가 중시하는 주요 기간산업 종사자들에게만 배급을 실시해 곡물 가격 상승에 대한 불안감을 일시적으로 해소하고, 주요 국가정책 관련 업무를 맡은 일꾼들을 독려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북한이 코로나19 방역을 목적으로 국경을 봉쇄한 이후 물류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면서 북한 곡물 가격의 불안정성이 심화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석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물류나 유통이 활발하지 않을 경우 지역 간 격차나 가격 변동 폭이 커질 수 있다”며 “가격 변동이 크고 소비생활이 불안해지는 것은 좋은 시그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연구위원은 “배급이나 당국의 경제적 조치가 꼭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비교적 공급이 충분한 곳에 불필요한 공급이 이뤄지거나, 공급이 부족한 곳은 계속해서 공급이 부족해지는 지역 격차 문제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