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개인의 필요에 따라 가발을 쓰는 것이 단순한 ‘라이프스타일’(life style)의 문제가 아닌 엄중한 국가적 문제로 여겨진다. 실제 가발을 쓰려면 시·군·구역 안전부 주민등록과에서 가발 쓴 사진을 새로 등록하고 공민증을 재발급받아야 한다는 특수 규정도 존재하는데, 이는 가발을 쓰면 사람의 외모가 달라져 주민 감시·단속을 책임지는 국가기관이 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렇듯 가발을 쓰는 문제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가발 등록과 통제는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18년 11월 초겨울 어느 날에는 평양시를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가발 단속사건이 벌어졌다.
그날도 수도 평양으로 출입하는 육로의 관문인 명호동초소(평양시 룡성구역)에서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벌이버스 승객들이 증명서와 통행증, 신분증 검열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평소와 같이 평양시 출입자들의 짐 단속이 진행되던 중 초소의 부초소장인 40대 초반의 검열관 리모 씨가 한 중년 남성을 따로 불러세웠다. 그는 이 중년 남성의 머리 모양이 이상하다며 직접 신분증을 요구했다.
부초소장 리 씨에게 지목된 중년 남성은 평양시 대성구역 룡흥시장관리소 직원으로 일하는 40대의 일반 평양시민이었다. 리 씨는 이 중년 남성의 얼굴과 시민증을 번갈아 보더니 “시민증 사진과 실물이 다른데 본인 것이 맞느냐” “혹시 위조 시민증이 아니냐” “남의 것을 가지고 다니는 것 아니냐”며 따져 물으며 유심히 그의 머리를 살폈다.
중년 남성은 초소 앞 길거리 한복판 그것도 벌이버스에서 내려 검열을 받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부초소장에게 걸려든 일로 주목을 받자 “군관 동지, 내가 다 말하겠으니 웬만하면 초소 안에 들어가서 사연을 들으면 안 되겠느냐”고 통사정했다.
그러자 리 씨는 “내가 초소 근무만 하전사 때부터 몇 년인 줄 아느냐” “너 같은 것들 순간에 잡아낼 수 있다” “당신, 간첩이야 위조 시민증이야”하고 더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그 주변으로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들고 차들도 지나던 길을 멈추고 지켜보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황한 중년 남성은 “사실 탈모가 너무 심해서 가발을 쓴 것이고 이것도 이번에 평성(평안남도)에 나가서 새로 맞춘 것인데 시민증 사진과 다소 다를 수 있으니 초소 안에 들어가서 벗어 보이면 확인될 것”이라며 리 씨에게 속삭이듯 간청했다.
그러나 리 씨는 “혁명의 수뇌부 보위 사업 차원이니 불복하면 즉시 체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권총까지 빼서 들더니 중년 남성의 머리를 휙 잡아챘다.
졸지에 가발이 벗겨진 중년 남성을 두고 리 씨는 가발 안을 샅샅이 훑으면서 “이런 속에다 삥두(마약)를 감추고 다닌다지”라고 말하고는 주변 사람들 모두 들으라는 듯 언성을 높여 “동무는 국가 주민등록기관에 등록한 뒤 가발을 착용해야 하고 시민증도 재발급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 규정을 어기면 수도 보위, 인민 보위에 공백을 찾는 불순분자들에게 책동의 틈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억울해하던 중년 남성은 이후 리 씨에 이끌려 초소 안으로 들어갔고, 근무지인 대성구역 룡흥시장관리소로부터 신원확인을 받고서야 풀려났다. 그러나 그는 가발을 돌려받지는 못했다. 북한이 중국의 무역회사들과 합작해 외화벌이용 수출품으로 만든 일등품 가발을 뒷거래한 물건이라 단속대상이라는 이유에서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제재 대상에 들지 않는 경공업 제품의 대중(對中)수출에 주력해왔다. 중국에서 들여온 인모나 인공모를 교화소 수감자들이 수작업해 만든 가발도 주요 수출품 가운데 하나다. 일부 개인은 이렇게 제작된 가발을 뒤로 빼돌려 팔아왔는데, 중년 남성은 바로 그런 가발을 사서 결과적으로 국가재산을 훔쳐 파는 자들의 상품 밀매를 조성했다는 오명을 쓰고 가발을 회수당한 것이다.
이 사건을 겪은 중년 남성은 이후 주변 지인들에게 “너무 망신을 당해서 차라리 본래대로 사는 게 마음 편하다”며 가발이라면 진저리를 쳤다고 한다. 더욱이 이 사건으로 탈모인들 사이에서는 ‘가발을 쓰면 초소에서 간첩 취급을 당하거나 무조건 타고 가던 벌이차에서 내려 오랜 시간 조사받아야 한다더라’는 뜬소문도 떠돌았다는 전언이다.
2018년에 있었던 명호동초소 가발 단속 사건을 전한 소식통은 “이 사건 이후에 가발에 대한 등록 사업과 단속이 더 세졌다”면서 “지역 간 이동의 자유도 없을뿐더러 머리 단장의 개인 취향까지도 국가승인 없이는 허용이 안 되는 것이 지금 조선(북한)의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