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방문을 거칠게 비난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동서남북도 모르고 돌아치다가는 한치의 앞길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는 기사에서, 서훈 실장이 얼마전 미국을 방문해 오브라이언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만나 ‘한미동맹불화설’로 심기가 불편해진 상전의 비위를 맞추느라 별의별 행동을 다 했다고 비아냥댔습니다.
서훈 실장이 “남북관계는 단순히 남북만의 관계라고 할 수 없다” “남북관계는 미국 등 주변국들과 서로 의논하고 협의해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한 데 대해서는 “얼빠진 나발” “제정신있는 소리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맹비난했습니다. 미국에 “굽신거리는 모양새가 차마 눈뜨고 보아주기 민망스러울 정도”라며, “뼈속까지 친미의식에 쩌들어있는 미국산 삽살개”라는 노골적인 비난도 했습니다.
남북관계는 남과 북 사이에 풀어야 할 “우리민족 내부의 문제로서 외세에 빌붙거나 다른 나라 그 누구와 논의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북한의 주장입니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남한 당국이 미국에 제발을 얽매어놓았기 때문이라는 기존 주장도 되풀이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
북한이 남한을 비난한 것은 물론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비교적 대남비난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왔고,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이라고 지칭하며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이라는 비교적 비중있는 매체로 서훈 실장의 미국방문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온 이유는 뭘까요?
바이든 당선 가능성에 대비한 대남 전략 가동
모든 것은 미국에서 바이든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이든이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트럼프 시기의 북미관계는 처음부터 다시 리셋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진찍기에 열을 올리는 트럼프식 북미정상회담도 어려울 것이고, 미국의 대북압박이 다시 거세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 ICBM 등을 통한 무력압박과 함께 협상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 여기서 남한은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강력히 바라고 있어 북한이 손을 내밀면 언제든 활용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한을 북한이 활용하려면 남북관계 개선의 여지를 열어두는 것과 동시에 남한이 미국에 경도되지 않도록 하는 압박도 필요합니다.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SLBM이나 ICBM의 추가발사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남한이 미국과의 한미 공조로 북한에 완전히 돌아서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대선 이후를 바라보는 북한의 수싸움
바이든이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는 무력시위를 남한을 상대로는 관계개선의 여지를 열어두는 것과 함께 한미관계에 경도되지 말라는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의 새 행정부를 상대로 ICBM을 포함한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함과 동시에, 남과 북의 이른바 ‘민족공조’를 강조해 남한을 남북관계의 틀 안에 묶어두려는 전략입니다. 남한을 적절히 활용하면 대미 무력시위는 무력시위대로 진행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상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 대선 이후를 바라보는 북한이 이미 수싸움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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