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도발 강도 높이는 북한, 가능한 남북관계는?

화성-17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 25일 전날(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발사 명령을 하달하고 직접 현장에서 발사 전과정을 지도했다고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도발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올 들어 여러 번의 미사일을 발사하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 약속까지 깨트리더니 제7차 핵실험이 기정사실화되는 양상이다. ICBM급 미사일의 추가 발사도 점쳐진다.

북한이 핵 개발을 더욱 가속화하며 우리를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고 있으니 당장은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안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강 대 강’의 대치가 심화되는 중에 무슨 남북관계냐 할 수도 있지만, 북한의 핵개발과 이로 인한 긴장이 하루이틀 사이에 끝날 것이 아닌 만큼 중장기적으로 남북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는 남북관계가 지금 교착돼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이 대남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 남북관계가 다소 진전되는 듯 보였던 때에도 남북관계의 질적인 발전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도돌이표를 찍는 이유는 남한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데에도 원인이 있지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해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온존하고 그로 인해 남북관계의 발전에 제약이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냉정한 현실인식 하에서 남북관계를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관리해나갈 것인지 근본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 문제에서 지금 ‘사실’로 인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2018년의 화해 국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하지만, 북한이 지금까지 우라늄 농축을 중지했다거나 ICBM 개발을 중지했다거나 하는 실질적인 핵능력의 동결 내지 감소를 보여준 것은 없었다. 오히려 2018년의 화해 국면을 포함해 전 기간 동안 북한이 핵 능력을 꾸준히 증강시키고 있다는 데 대체로 평가가 일치하고 있고,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북한은 핵무기 보유 의지를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북한 핵보유가 NPT 체제 위반이라는 점을 떠나, 북한의 핵보유는 우리 국익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핵무기는 비대칭무기이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로는 대처할 수 없다. 우리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든지 미국의 확장억제에 더욱 매달려야 하는데, 국제사회의 제재를 무릅쓰고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도 쉽지 않고 미국의 확장억제에 매달릴수록 안보 종속은 더욱 심화된다. 국제사회의 관점에서 보든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보든 북한의 핵보유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유엔의 대북제재는 상수가 된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지만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유엔의 대북제재는 당분간 상시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유엔의 대북제재가 계속되면 우리가 국제사회의 경제시스템에서 이탈할 생각을 하지 않는 한 남북경협의 진전도 어려워진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가 남북경협에 매달리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상태에서 남북관계의 한계는 명확하며,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북한을 설득해 핵을 포기하도록 하겠다는 것도 과도한 ‘기대’에 불과하다. 남한이 남북관계 진전에 목을 매면 맬수록 북한은 자신들이 필요한 만큼 남한을 이용할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임기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개성공단도 금강산관광도 재개되지 못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았고 유엔의 대북제재가 온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협 이외에 다른 분야에서라도 남북관계 진전이 이뤄졌나? 유엔 제재와 관계없이 코로나19 방역 같은 보건분야 협력이나 산림협력, 인적교류 등에서 가능한 부분이 있었지만, 북한은 이마저도 남한에 냉랭했다. 남북관계를 실질적인 협력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에 매달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소한 교류협력 하나하나도 정치적 활용가치를 계산하며 움직였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해야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를 모두 그만두자는 말이 아니다.

북한이 핵개발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고 우리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도 정치적 활용가치를 따지며 삐딱하게 나오고 있지만, 북한은 미우나 고우나 우리가 같이 살아가야 할 이웃이자 민족이고 궁극적인 통일의 대상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한다고 해서 전쟁을 할 수도 없고 365일 내내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며 살 수도 없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억지력은 확실히 해야 하지만, 필요한 만큼 교류하고 필요한 만큼 만나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남북관계는 당분간 쿨하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보유 의지를 굽히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에는 한계가 불가피하다. 북한의 핵보유 의지와 유엔의 대북제재를 상수로 인정하고, 그러한 선상에서 가능한 남북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 차원의 인도지원이나 민간단체의 교류 협력, 인적교류 등은 상황에 따라 계속할 수 있다. 평창올림픽과 같은 이벤트를 남북관계 개선의 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고, 돼지열병이나 코로나19 같은 보건분야에서 남북이 협력의 방향을 모색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협력에 목을 매지 말고 북한이 원하면 하고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쿨한 자세를 가지자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 하고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없다고 인정하면, 과도한 기대에 매몰돼 ‘북한이 언제 호응해올까’ 하고 북한에 매달릴 필요도 없다. 동포애적 견지에서 대북 협력과 지원의 가능성은 열어놓되, 북한이 남북관계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판단하면, 북한도 비로소 실용적인 차원에서 남북 협력 여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한 남북관계론

북한에 대한 비핵화 요구는 계속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비핵화를 대북정책의 목표로 설정하고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는 한 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꾸준히 주지시켜야 한다. 다만, 실질적인 대북정책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수립해야 한다.

당분간 남북은 지금처럼 두 개의 체제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북한붕괴를 추구하며 북한과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몰아가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지만, 핵을 가진 세습독재체제인 북한과의 교류 협력을 통해 통일의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과도한 열의에 빠져 남북관계에 매달리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우리는 좀 더 냉정한 가운데 가능한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를 사고할 필요가 있다. 고도화된 북한 핵개발 수준과 엄혹해진 유엔 제재를 볼 때, 대북정책의 선택지는 사실 그리 넓은 것도 아니다. 진보와 보수에 따라 달라지는 대북정책으로 인해 북한이 남한 정권을 이용할 생각만 갖게 하지 않아도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도 있다. 현실을 인정하고 가능한 선에서의 관계를 추구하는 ‘쿨한 남북관계’, 냉온탕을 오가는 남북관계의 등락을 넘어 장기적으로 지금보다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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