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포커스] 백두산 대학, ‘남조선 혁명’ 결의를 다지는 곳

김정은 백두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에 올랐다고 지난해 12월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김정은이 2020년을 ‘정면돌파의 해’로 내세우면서 북한 내부에서 가장 두드러진 실천 운동은 바로 ‘백두산 대학’이다. 이것은 ‘백두산 혁명전적지 답사 행군’을 상징하는 용어로 김정은이 지난해 12월 초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처음 제시한 것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과 사적지들 마다에는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의 혁명사상이 그대로 맥박치고 있다고 하시면서 수령님과 장군님의 사상, 우리 당의 혁명사상과 굴함없는 혁명정신을 알자면 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한 교양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특히 혁명의 지휘성원들이 수령님과 장군님을 닮은 견실하고 유능한 정치활동가들로 자기자신들을 철저히 준비하고 무장하려면 백두산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한 《백두산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노동신문 12월 4일자,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백두산지 구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보시였다’)

이 기사는 김정은의 ‘백두산 대학’ 제시가 주체혁명위업의 종국적 완성을 앞당겨 나갈 수 있게 하는 진로를 명시했다고 하였다. 여기서, ‘주체혁명위업의 종국적 완성’의 진의는 무엇인가.

작년 12월 4일자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백두산 정상에 오른 것에 관한 관련 기사를 9개나 쏟아냈다. 이날 김정은이 수많은 지시를 내렸지만 가장 핵심이 ‘백두산 대학’과 ‘백두산 (칼바람) 정신’이었다. 이때부터 현재까지(7.16) 노동신문에 ‘백두산 대학’ 관련 기사가 62건이고 ‘백두산 정신’이 들어간 기사는 112건이다. 김정은의 ‘백두산 대학’에 대한 교시가 떨어지자 작년 겨울부터 조선소년단(약 400만명),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약 800만명)을 포함한 북한 전체 인민들은 오늘도 백두산 정상을 오르고 있다. 정상에 오른 그들은 과연, 어떠한 구호를 외치고 있는가.

<백두산 대학>, 두 가지 목적

2020년을 ‘정면돌파의 해’로 내세우기 전에, 김정은이 ‘백두산 대학’을 제시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0년을 ‘정면돌파의 해’로 선언하면서 김정은은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지도자상(象)을 얻었다. 국제사회가 아무리 북한경제의 숨통을 조여와도 절대로 굴복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다. 여기에 직결되는 구호는 ‘자력갱생’, ‘자력자강’이다. ‘자력번영’ 까지 나왔다. 이 슬로건은 김정은 시기에 ‘70일 전투’, ‘200일 전투’, ‘만리마 운동’이라는 구체적인 실천 운동으로 이어졌다.

한편, 김정은이 직접 하달한 ‘백두산 대학’은 노력 동원보다는 인민들 정신무장 실천운동 성격이 강하다. 노동신문 검토해볼 때, 백두산 대학의 대표적 구호는 “백두의 칼바람 맛을 알면 혁명가가 되고, 모르면 배신자가 된다”였다. 여기에서의 혁명은 ‘조선혁명’을 뜻하는 것을 관련 다른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노동신문 6월 8일 자에는 “눈보라치는 백두산에 올라 백두의 칼바람을 맛보아야 백두산의 진짜 맛을 알수 있으며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성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지게 된다.”고 했다. 여기에서 김정은이 ‘백두산 대학’을 제시한 목적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으로, 내부단속, 통제 수단이다. 작년 2월,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가 결렬되고 대북경제제재가 풀리지 않음으로 북한의 경제는 바닥을 치는 상황이었다. <조선문학> 2019년 5월호, <<소나무>>(단편소설)에서는 그 상황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지금도 어렵다. 어렵다는 말로써는 다 표현할 수 없으리만치 어렵다. 시련과 난관을 뚫고 헤친 우리 혁명의 전 로정을 살펴보아도 지금처럼 어려웠던 적은 드물었다.”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시기 때보다 더 어려운 형편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그야말로 북한경제가 파탄 난 것이다. 내부의 불만, 동요가 충분히 예측되었다. 김정은에게는 내부단속, 통제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그 통제 수단으로 김정은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운 것이 바로 100km 행군이 필수인 ‘백두산 대학’이었던 것이다. 인민들의 심신을 고달프게 하면서 동시에 정신무장을 시키기에 아주 좋은 방편이다. 경제 폭망의 모든 책임을 미국에 전가시키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여기에서 두 번째 목적이 도출된다. 반제국주의(반미·항미) 운동을 가장 강하게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남조선(한국)이 여전히 미제국주의 압제하에 있다고 설정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남조선을 해방하자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일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여름철 답사 현황을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 6월 중순 첫 여름철 답사 행군 대오가 혁명의 수도 평양을 출발한 때로부터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답사 단체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식 평화, ‘남조선 해방

지난 6월 26일자 노동신문 사설에는 “정전은 평화가 아니다. 이 땅에 제국주의와 계급적 원쑤들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해이될 수 없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현재의 정전상태를 평화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표명했다. 김정은이 2018년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을 거론하며 평화공세를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 안에서도 평화는 남북한의 현 체제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더 나아가, 김정은의 핵 보유 의지를 미국의 위협에 맞선 정권유지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우세했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으로 지칭해서 그러한 해석들이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기만술이었다.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불발과 6월, 미북정상 판문점 회동에도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내지 못한 김정은은 2020년 들어와서 그가 2014년에 제시했던 국가목표인 ‘백두산 대국’의 종착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전부터는 북한 내부에서는 통용되었지만 김정은의 평화공세 전략으로 외부세계에는 가려져 있었다. 가려졌다기보다, 평화공세에 휘둘려 신중히 탐색하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2018년 1월,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평화공세 전략으로 전환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김정은식 평화가 어떤 것인지 인민들에게 강력한 지침을 하달하였다.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조선문학> 2018년 1월호, ‘성전의 나팔소리’(단편소설)에서 김정은식 평화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여기에서 김정은식 평화의 최종 목표는 바로 ‘남조선 해방’이었다. 조선작가동맹은 당 선전선동부 산하기관으로 당의 지시를 철저히 관철한다. 그들이 쓰는 글들을 당의 지침으로 이해해도 틀림이 없다. 몇 달 전 김여정이 작가동맹에게 김정은이 제시한 ‘백두산 대학의 정신’을 담은 문학작품을 만들라고 지시를 했었다(데일리NK 2.28).

조선문학 1월호에 실린 단편소설, ‘성전의 나팔소리’에는 김정은을 사랑과 믿음의 전쟁 철학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위대한 대성인이라고 하면서 그를 ‘평화의 수호자’라고 칭송한다. 평화를 남조선 해방에 연결시키고 미제국주의 압제하에서의 남조선 해방을 위해서는 전쟁까지라도 불사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의미로 사랑과 믿음에 끔찍한 전쟁을 연결시킨 것이다. 이처럼, 김정은이 대외적으로 평화공세를 시작할 때, 당은 작가동맹을 시켜 평화는 남조선 해방이라고 인민들에게 철저히 주입시켰던 것이다. 행여나 김정은식 평화를 잘못 받아들이지 말라는 단도리 성격이 강했다.

평화와 남조선 해방의 연결은 앞에서 언급한 노동신문의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전은 평화가 아니다. 이 땅에 제국주의와 계급적 원쑤들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해이될 수 없다”(6.26일자) 여기서 제국주의는 미국을 가리킨다. ‘계급적 원쑤들’은 남한 내 혁명적 타도세력을 가리킨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도 ‘남조선 해방’까지 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백두산 대국의 종착지, ‘남조선 해방

김정은이 2014년에 국가목표로 세웠던 <백두산 대국>의 종착지도 ‘남조선 해방’(적화통일)인 것이 드러난다. 작가동맹의 또 하나의 기관지인 <청년문학>은 북미정상 제2차회담(2019.2) 전인 2019년 1월호에 혁명송가인 ‘김정은장군찬가’를 실었다. 3절의 가사가 아래와 같다.

장군은 눈부신 세기의 태양
장군은 찬란한 승리의 기치
백두산 대국 삼천리 밝은 미래 펼친다
그 이름도 위대한 김정은 장군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국가목표인 ‘백두산 대국’의 범위를 삼천리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삼천리는 함경북도부터 제주도까지 아우르는 것으로 한반도 전체를 가리킨다.

2017년 8월, 백두산 정상에서 ‘국제북한친선협의회’ 주관으로 개최된 ‘백두산위인칭송국제축전’(백두산태양맞이모임)에서 공포한 <백두산 선언>에서도 백두산 대국의 정의를 분명히 밝혔다. 선언서에는 백두산 대국을 사회주의의 보루라고 적시했는데 이는 백두산 대국을 사회주의의 완성으로 본 것이다. 앞의 내용과 연결시키면, 남조선 해방이 곧 사회주의의 완성이라는 의미다.

현재, 김정은 정권은 무력으로 적화통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전혀 없다. 지정학적으로도 뒷받침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도 북한 인민들은 김정은에게 등 떠밀려 백두산 정상에 올라가 ‘남조선 해방’을 부르짖고 있다. 허공 속 메아리에 불과 하지만 김정은의 적화야욕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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