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정은 “미국, 제압·굴복 시키는데 초점 맞춰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앞서 5일부터 7일까지 이뤄진 8차 당대회 기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 보고 내용을 공개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8차 노동당 대회를 진행하면서도 회의 내용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던 북한이 오늘(9일) 김정은 위원장의 당 중앙위 사업평가 보고 내용을 자세히 공개했습니다. 어제까지 키워드 위주로 공개됐던 뉘앙스와는 사뭇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미국은 최대 주적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을 최대 주적으로 지칭하면서 제압 굴복시켜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은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활동의 기본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북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면서, 반제자주역량과의 연대 즉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를 확대발전시켜 세계적 범위에서 반제국주의 공동투쟁을 과감히 전개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는데 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김 위원장은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미국에 대한 비난을 해온 것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당 대회라는 최고 수위의 정치행사에서 미국을 ‘최대 주적’으로 지칭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더구나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사회주의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냉전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마저 줍니다.

핵무력 완성은 가장 의의 있는 민족사적 공적

북한은 이 같은 전략을 위해 핵무력 강화에 대해 여러 가지로 언급했습니다.

먼저 2017년 11월 29일 ICBM급 미사일인 ‘화성-15형’을 발사해 핵무력건설을 완성한 것을 “가장 의의 있는 민족사적 공적”이라고 지칭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지상과 수중에서 고체 연료에 기반한 ICBM 개발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며, 1만 5천km 사정권 안의 임의의 전략적 대상들을 정확히 타격소멸하는 명중률을 더욱 발전시켜 핵선제, 보복타격능력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정거리 1만 5천km면 북한에서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미국 전역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끊임없이 개발하겠다는 뜻입니다.

전술핵무기와 초대형핵탄두 생산도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다탄두개별유도기술을 완성하기 위한 연구사업이 마감단계에서 진행중이라고 밝혀 다탄두 ICBM 개발이 멀지 않았음을 시사했습니다. 중형잠수함 무장현대화가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단계에 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국가방위력은 외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혀 대외협상에도 나설 여지를 열어 뒀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 보유 의지를 밝힌 것에서 보면, 북한이 생각하는 협상은 우리가 바라는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핵보유국을 전제로 한 협상이 분명해 보입니다.

남한 당국에 일방적으로 선의 보여줄 필요 없어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바이든 정부와의 가교 역할을 기대해 유화적으로 나오지 않겠느냐는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가 판문점선언 이전시기로 되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남한의 군사적대행위와 반북모략소동으로 남북관계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방역협력, 인도협력, 개별관광 등을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평가절하하면서, 첨단군사장비 반입 중지와 한미군사훈련 중지 같은 근본문제부터 풀어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의 무기 개발은 자위적 조치로 정당하다면서도 남한의 군사력 강화 조치는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조치라는 주장입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남조선(남한) 당국에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선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으며 우리(북한)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북남합의들을 이행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해주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남북,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의 남북 교류를 북한의 일방적인 선의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남한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가까운 시일 안에 남북관계가 3년 전 봄날과 같이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는데, 우리 정부에게 한미군사훈련과 첨단무기 도입 등의 조치를 중단하라는 요구로 들립니다.

금강산 개발과 관련해서는 현대적인 문화관광지로 변화시키겠다면서, “전형적인 우리(북한)식 건축형식의 건물들을 일떠세울데 대한 과업이 제시”됐다고 밝혔습니다. 고성항 부두에 있는 해금강호텔을 비롯한 시설물들을 모두 들어내겠다고 밝혔는데, 남한의 재산권과 상관없이 자체 개발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디.

경제개발 핵심은 여전히 자력갱생

김정은 위원장은 새로운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제시했습니다. 앞서 대미, 대남관계 입장 표명에서 보듯 대외적으로 협조를 강화하기 보다는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하겠다는 자력갱생이 핵심입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기본종자, 주제는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이라며, 5개년 계획은 현실적 가능성을 고려해 자립적 구조를 완비하고 수입의존도를 낮추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미국 대선 이후 바이든 후보의 당선도 일체 보도하지 않는 등 침묵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만큼 시간을 갖고 대외전략을 고민해왔다는 것인데, 오늘 발표된 내용을 보면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권과의 연대를 강화하며 미국과의 대결을 불사하겠다는 쪽인 것 같습니다. 물론 북한이 이런 입장을 발표했다고 해서 곧바로 대형 도발로 가는 것은 아니고 모든 것은 정세에 따라 조정되겠지만, 앞으로의 한반도 정세도 순탄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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