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남북·북미관계 원론적 입장 재확인…개선 여지는 남겨

5~7일 사업총화보고 내용 공개…"南 태도 여하에 달려…강대강 선대선 원칙으로 美 상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앞서 5일부터 7일까지 이뤄진 8차 당대회 기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 보고 내용을 공개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에서 남북합의의 성실한 이행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강조하며 향후 남북·북미관계는 한국과 미국의 태도, 행보에 달려있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새로운 대미·대남정책을 제시하기보다 앞으로 전개되는 상황에 맞춰 대응하겠다는 원론적인 메시지를 낸 셈이다.

9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등 매체는 앞서 사흘간(5~7일)의 8차 당대회 기간에 이뤄진 김 위원장의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 보고 내용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번 보고에서 남북, 북미관계와 관련한 정책적 입장을 천명했다.

먼저 김 위원장은 “북남(남북)관계의 현 실태는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통일이라는 꿈은 더 아득히 멀어졌다”며 “남조선(한국)에서는 의연히 조선반도(한반도) 정세를 격화시키는 군사적 적대행위와 반공화국 모략소동이 계속되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북남관계 개선의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보장할 데 대한 북남합의이행에 역행하고 있다”며 남북관계가 교착상태를 맞게 된 원인을 남측에 돌렸다.

더욱이 그는 “우리의 정정당당한 자주권에 속하는 각종 상용무기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도발’이라고 걸고 들면서 무력 현대화에 더욱 광분하고 있다”면서 “만약 남조선당국이 이를 시비하려면 집권자가 직접 한 발언들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고 계속되는 첨단 공격장비 반입 목적과 본심을 설득력 있게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북남관계가 회복되고 활성화되는가 못 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으며 대가는 지불한 것만큼, 노력한 것만큼 받게 돼 있다”며 “현시점에서 남조선 당국에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선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북남합의들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온 겨레의 염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며 관계 개선의 여지를 남겨뒀다.

전반적으로 남북관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면서도 관계 개선 가능성을 피력해 한국 정부에 공을 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통일부 대변인은 9일 논평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해 나간다는 정부의 입장은 일관하다”며 “이미 누차 밝혀왔듯 남북 합의를 이행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하며, 남북이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번영의 새 출발점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보고에서 해금강호텔을 비롯한 남측 시설물을 철거하고 금강산 관광지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북한의 계획이 다시금 언급돼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은 향후 5년간의 경제분야 투쟁전략에 관한 보고에서 “금강산지구를 우리 식의 현대적인 문화관광지로 전변시켜야 한다”며 “금강산관광지구총개발계획에 따라 고성항해안관광지구와 비로봉등산관광지구, 해금강해안공원지구와 체육문화지구들을 특색있게 꾸리기 위한 사업을 새로운 5개년계획 기간에 연차별로, 단계별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평양의 거리 풍경을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이밖에 김 위원장은 이날 보고에서 “새로운 조미(북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며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대미정책에서의 원론적인 견지를 밝혔다. 이는 새 행정부 출범을 앞둔 미국에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다만 김 위원장은 대내적으로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면서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 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새로운 북미관계 구축이라는 희망은 거의 포기한 것”이라며 “북한은 향후 상당 기간 대미관계에서는 강력한 핵전쟁 억제력 강화로 맞서면서 중국,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대외홍보 선전활동을 강화해나가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날 보고에서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단계에 있다”며 핵잠수함 개발이 추진되고 있음을 공개했다. 아울러 각종 전자무기, 무인타격 장비, 정찰탐지 수단, 군사 정찰위성 설계를 완성했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현실은 국가방위력을 순간도 정체함이 없이 강화해야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핵 선제 및 보복타격능력 고도화 ▲수중 및 지상고체발동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사업 추진 ▲핵잠수함 및 수중발사핵전략무기 보유 등 국방력 강화를 위한 여러 목표와 과업을 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