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석 칼럼] 뜨거웠던 평창의 열기, 차가웠던 평양의 냉대

한국과 북한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관중석이 텅 비어 있는 가운데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우리는 불과 1년여 전에 있었던 평창의 열기를 기억한다. 2018년 2월의 평창은 뜨거웠다. 남북 간 특사가 오갔고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김정은의 친동생 김여정이 얼굴을 드러냈다. TV와 신문은 연일 북한 방문단 소식으로 도배를 했다. 외신도 한반도에 불어온 새로운 바람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보도를 쏟아냈다. CNN, 뉴욕타임즈, ABC 뉴스 등은 김여정과 북한 응원단에 초점을 맞추어 남북역사상 처음으로 남한을 방문한 지도자의 여동생과 대규모 응원단에 호기심 어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2018년 2월의 평창은 남북 관계의 복원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 놓았다. 당시 분위기는 2017년 11월,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2017년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사에서 한 획을 그은 해였다. 김정은이 스스로 평가했듯이 수령의 유훈을 실현한 해였다. 북한 정권의 숙원사업인 핵무력 완성을 이룩했다고 선포했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 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사실을 ‘민족의 대경사’로 보도했다. 2017년 한 해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얼룩져 있었다. 중국에서도 그해 11월 숭타오(宋濤) 대외연락부장을 북한으로 보내 도발 중지를 설득하려 했으나 김정은은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11월 29일 드디어 목표를 달성했다고 선포했다. 그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를 통해 파격적인 대남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참가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후 우리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북한 대표단을 위해 만반의 준비가 진행했고 남북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평화의 염원을 담아 그야말로 극진히 대접했다.

2018년 2월의 뜨거웠던 평창의 열기는 그대로 남북 특사교환으로 이어졌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왔다갔고 우리 측에서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한 특사단이 방북하여 김정은과 면담을 했다. 그렇게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2018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언급한 대로 남북관계는 평창을 시작으로 다시 완전 복원을 눈앞에 둔 듯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북한의 도발중지 및 핵폐기를 통한 ‘평화’를 얻으려 했고 북한은 2017년 ‘국가핵무력 완성’ 이후 진정한 핵보유국으로 대우받으며 국제사회에 데뷔하는 것을 원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봐선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 평창올림픽 참가는 핵무력완성 이후 김정은 체제의 첫 번째 대외 행보였다. 북한에게도 매우 중요한 ‘이벤트’였던 셈이다. 국제사회는 관심을 두고 지켜봤고 우리 정부는 그런 북한을 기대 어린 마음으로 환대했다.

그로부터 1년하고 반이 흐른 2019년 10월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조별리그 3차전이 열렸다. 2018년 2월의 뜨거운 분위기는 사라졌다. 우리 사회에는 남북축구가 2018년 2월의 분위기를 다시 살릴 기폭제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흘렀다. 그만큼 10월 15일 남북 축구대결은 국내외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남북 축구대표 간 평양경기는 1990년 10월 통일축구 이후 29년 만에 첫 개최이기 때문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 ‘무관중’, ‘무중계’ ‘응원단 방북 금지’는 차지하고 선수단 55명의 식재료마저 공항에서 압수당했다. 2018년 2월 평창의 분위기에 대한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기대하고 방북했으나 크게 실망한 채 평양을 떠났다. 축구결과를 궁금해하는 팬들은 문자를 통해 전달되는 소식으로 경기내용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따름이었다. 요아킴 주북 스웨덴 대사의 트위터를 통해 전달된 텅 빈 축구장과 관중석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휑하게 만들었다. 북한의 이러한 몽니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에서 중계되는 스포츠 행사 등에 해외 취재진에게 허가되는 경우도 드물고 예전부터 생중계는 거의 하지 않았다. 대부분 녹화방송으로 내보냈다.

남북 평양 월드컵 예선전 ‘참사’가 발생한 이후 정부는 최대한 북한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대응했다. 통일부 장관은 현 남북관계 국면을 반영한 측면이 있고 북한이 우리 측 응원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무관중 경기가 진행되었다는 의견이 있다는 ‘북한식’ 답변을 내놨다. 스포츠는 분명히 정치와 구분되어야만 한다. 특히 건강한 남북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역설적이게도 남북 당국의 ‘동상이몽’으로 2018년의 평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모든 남북스포츠 행사에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담겨있다. 스포츠 행사를 정치의 종속적인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북한 당국의 셈법은 우리와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평양 월드컵예선전에서 드러났듯이 말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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