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하고 한심한 지미 카터 ‘북한 방문기’

미국 39대 대통령이며 노벨 평화상에 빛나는 지미 카터가 북한을 3번째 방문했다. 이번 카터의 방북을 지켜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기대하기는 커녕 시작부터 끝까지 냉담, 냉소, 비난으로 일관했다. 방북 결과에 대해 카터는 자의적인 의미를 부여했지만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모욕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런 결과가 나온 데는 다른 원인이 있다기 보다는 카터 스스로가 원인 제공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카터는 스스로 자신이 한반도 평화의 수호자라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카터가 말하는 평화는 ‘굴종’과 동의어라는 사실에 문제가 있다. 그는 대통령 재직 시절부터 평화와 굴종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소련이 하자는 대로 해주면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고 믿은 그는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얼굴을 비비는 키스를 했다. 베를린 장벽의 미래에 대해 질문하는 베를린 시민에게, 소련이 분노할 것이 두려워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다’고 대답한 비겁한 인물이었다.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편파적으로 적용한 정신없는 대통령이기도 했다. 오로지 ‘인권’ 을 외교정책의 잣대로 삼는 카터에게 소련, 중국, 북한 국민들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미국 동맹국들인 나라들의 인권만을 문제 삼았다. 박정희의 독재체제를 지켜줄 수 없다는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국가안보문제의 절박성을 자극함으로써 인권 문제를 오히려 뒷전으로 밀어내는 역설을 초래하기도 했다.


대통령 시절 원하던 바를 못 이룬 카터는 대통령 퇴임 이후 더 바쁘게 활동 했지만 그의 활동이 미국이나, 세계, 특히 대한민국을 위해 도움이 된 것은 거의 없다. 도움이 아니라 대부분 훼방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물론 카터는 북한을 위해서는 많은 기여를 했다. 북한의 연명에 기여 했고, 북한의 심부름꾼 노릇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카터는 1994년 6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면담했고, 그럼으로써 클린턴 대통령의 ‘폭격을 통해서라도 북한핵을 제거 할 수밖에 없다’던 계획을 종식시켰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카터의 비(非)전략적 행동은 결국 북한을 살게 해주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냉전 종식 이후 도저히 생존 가능성이 없던, 더욱이 미국의 군사공격 앞에 국가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던 북한에게 카터는 은인(恩人)이었다.


앞에서 2011년 4월 하순 카터의 방북이 이처럼 비참하게 종료된 이유는 사실 카터 그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카터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날지는 정해진 바가 없다. 북한은 절대 미리 누구를 만날지 알려주지 않고 항상 자기들이 결정해 왔기 때문에 현재로는 알 수가 없는 상태”라고 말해 카터의 이번 방북이 북한에 의해 주도 된 것임을 말했다. 카터의 이 같은 언급은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스스로 ‘북한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중’ 이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카터도 신경을 안 쓴 것은 아니다.  김정일 혹은 자신보다 60살이나 어린 김정은을 알현하기 위해 디 엘더스(The Elders) 라는 모임 소속인 전직 국가 수반 몇 명을 이번 북한 방문에 동행했다. 디 엘더스 방북단에는 카터 전 대통령 이외에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 그로 브룬트란드 전 노르웨이 총리,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이 포함됐다. 이들은 북한 방문 목적이 ‘북한 핵문제와 인권 문제를 다루기 위해’라고 말했지만 핀란드, 노르웨이, 아일랜드가 그동안 북한 핵문제 혹은 인권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써온 나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카터는 물론 북한의 비위를 상하게 할 것이 두려워서인지 혹은 김정일을 알현 하고 싶다는 일념 때문인지 “한국이 현재 북한에 식량지원을 중단한 상태에서 아동, 임산부 등 식량 부족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는 북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북한의 식량난 책임을 한국에 돌렸다. 


기가 막힌 비(非)논리가 아닐 수 없다. 도둑이 아니라 도둑을 맞은 집 주인에게 왜 문단속을 잘 못 했느냐며 비난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강간당한 여성에게 왜 밤길에 짧은 치마를 입고 걸어 다녔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카터가 바로 세상을 그렇게 보는 사람이다. 북한이 굶는 것이 한국 책임이라고 본다는 카터는 카다피가 자기 국민에게 폭격을 하는 것은 누구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 카터는 북한이 지난 2년 동안 핵 실험, 미사일 발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UEP) 시설 공개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도발한 것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4월 28일, 2박3일의 북한 방문 일정을 마치고 서울에 온 후 카터의 언급이다. 인권 문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카터는 이날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서방세계가) 북한 인권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런 사람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사실과 이런 자의 행동이 언론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카터의 대한민국 훼방, 북한 두둔 행각은 이번 방북으로 그 종식을 고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북한을 찾은 카터는 김정일을 만나지 못했다. 작년 방북의 경우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 중이었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커터에게 더욱 비참했다. 방북 직전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정은 부자를 만나고 싶다”고 한 카터는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메신저였던 카터의 임무를 종식시킨 것은 카터 그 자신이었다. 카터 일행이 북한을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중 ‘중요한 일이 있으니 다시 초대소로 와달라’는 북한 당국자의 요청과 이 요청에 흥분, 초대소로 발길을 황급히 되돌렸던 카터, 그리고 카터에게  김정일의 개인 메시지를 읽어주며 ‘이를 한국 지도자들에게도 전달해 달라’고 한 북한 당국자의 모습이 상상 된다.  


카터 같은 개인적 공명심에 사로잡힌 편파적인 인간에게 기대할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사실, 우리 정부의 원칙 있고 일관성 있는 태도야 말로 북한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점, 그리고 북한이 궁극적으로 상대해야 할 대상은 카터도 미국정부도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임을 알려 주었다는 사실은 카터 방북이 가져다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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