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문제에 있어 가해자를 국제법으로든 국내법으로든 법적으로 처벌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현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침해 상황을 조사하고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행위를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최근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겸 이사로 취임한 최기식(사법연수원 27기) 법무법인 산지 파트너 변호사는 이 같은 신념을 드러냈다. 19년 4개월간 검사 생활을 한 최 변호사는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를 시작으로 대검찰청 연구관과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장, 대구지검 1차장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최 변호사는 법무부 통일법무과장과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을 역임하며 검찰 내 흔치않은 ‘북한·통일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는데, 국가 행정기관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을 맡았던 그가 이번에는 민간 단체에서 소장직을 맡게 되면서 민과 관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직을 모두 경험하는 독특한 이력이 추가됐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법인 사무실에서 만난 최 변호사는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을 할 때부터 민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나 연구원들과 연(緣)을 이어왔다”며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민간 부문에서도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국가기관에 있으면서 조사한 북한인권 상황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 어려웠다”면서 “민간기구에서는 북한인권 상황을 외부에 알리는 일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기관이든 민간단체든 북한인권 침해의 가해자를 직접 법적으로 처벌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북한인권기록 또한 한계가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더욱이 정부기관이 주도하는 북한인권 관련 업무는 정권에 따라 적극적으로 다뤄지기도 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이유로 인권 관련 기구가 축소되거나 업무가 폐지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 박근혜 정부가 2016년 법무부 내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한 이후 처음으로 검사 출신이 아닌 일반직 공무원을 소장으로 임명했다. 안팍에선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느랴 북한 당국이 부담스러워하는 인권 관련 기관의 힘을 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최 변호사는 “인권 문제는 보편적 가치로 다뤄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독일 통일 전 동독의 인권 침해 사례를 기록하는 법무부 산하 중앙범죄기록소가 서독 잘츠기터에 세워졌을 때도 동독 지도부는 물론 동독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서독 사회민주당(SPD)은 기관 설립을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서독 정부는 잘츠기터 중앙범죄기록소를 비판 속에서도 유지해 나갔고 기록소의 자료들은 통일 후 인권 침해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근거가 됐다.
최근 발생한 연평도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서도 최 변호사는 “법률적으로는 우리 주권이 미치는 곳이지만 실질적으로 법률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명확한 진상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보해 놓는 것이 최선”이라며 “그 조사 기록들이 어느 순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최 변호사가 20년 가까이 검사 생활을 하면서도 북한과 관련된 업무도 병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즉 바쁜 공직 생활 중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과정까지 수료하면서 북한에 대한 소명을 놓지 않은 배경에는 잔인하리만큼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그의 부모는 가난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했고, 누나와 형들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각각 철공소로, 식모로 취업 전선에 뛰어 들었단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공부를 해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 최 변호사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입신양명을 꿈꿨지만 1차 시험만 연거푸 4번 떨어졌다.
군입대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5차 시험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매형이 사망하고 둘째 형까지 경운기 사고를 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험 1주일 전엔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했다. 견디기 힘든 하루 하루를 수면제로 버텼다. ‘하나님, 시험만 보게 해 주세요’ 기도하며 응시한 1차 시험에서 기적적으로 합격했고 이듬해 2차 시험까지 붙었다.
최 변호사는 “신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그 때 출세와 입신양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는 삶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사법연수원에서 통일법학회를 접하고 ‘통일’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차오르는 것을 느낀 후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법조인으로 살고 있는 그는 지난 9월 검사직을 내려놓으면서 검철 내부망에 “퇴직 후 변호사로 일하면서 이 땅에 와 있는, 그리고 중국 등 제3국에 유리(流離)하는 탈북민의 삶을 보듬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 변호사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한 번 공직에서 공무원, 학자, 연구자들과 함께 통일에 대한 법률적 마스터 플랜을 설계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면서 “갑자기 다가올 통일 시대에 긴하게 사용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