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응 않겠다’ 천명하면 다른 응징도 못한다

아직 공식 발표는 없지만, 민군합동 국제조사단은 천안함의 침몰원인이 ‘어뢰공격’이며 그 소행주체는 북한의 정찰총국이라고 판단을 내린 듯하다.


다른 한편 북한의 소행이 거의 분명하다는 확신이 한국에 팽배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김정일의 방문을 허용하였다. 장위 중국 외무부 대변인은 김정일의 초청은 중국의 내정문제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정부의 항의를 일축했다.  


또한 미국은 천안함 사건의 원인규명 이후로 6자회담을 미루고 있지만,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인 보즈워스는 ‘외교와 대화’에 중점을 두겠다는 점을 밝혔다고 한다. 현재 정치학자 대부분도 미국은 한국의 군사적 대응을 반대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일종의 패배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수차례 약속한 ‘단호한 대응’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만일 이 약속이 유엔과 판문점 사이 그 어디에서인가 방황하다 표류할 경우,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제1의 요소는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에 의해 해이해지고 ‘매너리즘’에 빠진 군대가 아니라 바로 한국정부의 위기대응방식이 한낱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전 세계에 알린 한국정부 자신이라는 점이 분명해질 것이다.


우선 중국정부에 항의한 것도 실수다. 형식논리적으로 한국정부는 아직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한국정부의 이런 ‘깊은 속마음’을 배려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면, 그것은 ‘남의 환심을 사겠다’는 식의 외교술에 불과하다. 북한의 ‘혈맹’ 중국을 너무 쉽게 본 것이다.


북한과 같은 하류집단을 버퍼존이라고 껴안고 있는 중국의 대북정책은 미래의 조화를 내다보는 대인이 아니라 현재의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소인배적 발상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가 없는 김정일을 남보라는 듯이 껴안는 중국에게 유엔에서의 협조도 기대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중국에게 단기적으로 반응할 것도 없고, 중요한 점은 천안함 사건에 대하여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든 주권국가 한국의 ‘내정문제’라는 점에서, 중국의 항의나 협박을 일축할 수 있는 차분한 자세가 필요하다.  


다른 한편 국내외의 전략전문가, 외교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정부가 북한의 소행에 대하여 군사적 대응을 포기하는 것이 성숙한 한국의 국격에 걸맞다는 충고들에도 정부는 솔깃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자국 정부가 현재 한국과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런 충고를 했을까?


이런 사람들의 발언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더 집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보즈워스와 같이 ‘파트타임’ 외교관의 말은 신중하게 판단하되 그렇게 큰 비중을 둘 필요가 없다.


천안함이 피격되고 한 달이 넘는 동안 한국정부의 향후 대응책에 대하여 각종 제안이 쏟아졌다. 그 가닥은 간단하다. 군사적 대응은 보복의 악순환과 전면전의 가능성으로 인해 겁이 나고, 그냥 넘어가자니 한국 국민의 감정의 응어리는 물론, 북한에게 새로운 도발을 친절하게 권유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이다.


이런 딜레마에서 헤어 나오지 않는 한 한국정부의 대응은 그냥 ‘한국도 대응하고 있소!’를 강조하는 의례에 불과하다. 가장 아끼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결기가 있어야 그것을 살릴 수 있는 법이다.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은 “반드시 무엇인가를 안겨주겠다”고 말했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경우에도 해서는 안 될 일은 바로 이 무신의 약속을 문신이 뭉게는 것을 허용하는 일이다. 설사 당장 군사적 대응을 실행에 옮길 생각이 없더라도 이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군사적 대응의 방법과 시기는 한국정부가 갖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과 미국이 한국정부에게 부탁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할 수 있음은 물론,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 정부의 군사적 대응을 기다리게 만들 수 있다. 설사 북한이 한국 정부가 군사적 대응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하여 또 다른 무력으로 반응하겠다고 공언하거나 이를 실행에 옮기더라도 한국 정부의 위치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한번 군사적 대응을 포기한 후 북한이 또 다른 도발로 판돈을 올릴 경우, 한국 정부는 좌우에서 협공당하여 공황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 우리는 ‘만일 다시 한번 도발하면 절대 용서하지 않고 철저하게 응징하겠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중요한 점은 북한이 다시 한 번 도발하여 한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한다면 그때는 전면전의 위험은 없나? 지금상황과 또 다른 도발이 발생한 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심지어 북한을 주적으로 다시 부르는 것에 김정일은 전쟁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오고 있다. 한국정부의 운신의 폭을 계속 좁혀 나가겠다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북한은 일단 핵개발을 한 후, 2012년 강성대국의 문패를 달기위해 한국을 협박하여 경제원조를 뜯어내겠다는 것이 원래의 복안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갖고 있다고 강성대국 운운 하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국내정치적 이전투구보다 국외에서 정상외교를 통해 ‘스마트’한 결과를 내는 것을 더 선호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바로 이런 스마트한 정상외교가 2008년 4월 한미 쇠고기 협정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해 촛불시위의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미국이나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군사적 대응을 안 하겠다고 천명하는 것은 어느 때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격을 존중하는 나라로서 한번 포기한 것을 다시 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다.


한국은 군사적 대응을 포기하지 않아야 유엔을 통한 외교나 아니면 독자적인 비군사적 응징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정부의 대응책이란 현재 북한인권 시민단체들이 풍선으로 열심히 날려 보내는 대북전단지 살포만한 효과도 얻지 못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