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후계 확정 핵심지표는 ‘유일관리제’ 확립 여부다

김정일 총서기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북한 정권의 대외 강경노선과 한국에 대한 ‘압박 공격’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이것과 함께 북한의 ‘후계자문제’가 일본의 미디어를 떠들석하게 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오는 정보와도 합쳐져 무엇이 진실인가마저 알지 못하게 하는 혼란스러운 상태다.

그 전형적인 예가 아사히 신문의 정보다. 6월 16일자 아사히 조간 일면 톱에 ‘김정운 방중’이라고 보도하고 김정운이 김정일 총서기의 특사로서 후진타오 주석 등과 회담했다고 전했다.

이런 정보에 대해 중국외무성의 친강 대변인은 16일의 정례회견에서 ‘중국쪽은 이 건(김정운 방중)에 대해 알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그것과 동시에 한국 KBS의 ‘김정남에 대한 암살 계획이 중국쪽에 의해 저지당했다’라는 보도도 사실이 아니다며 부정했다.

거기에 반론하는 형식을 취해 아사히 신문은 또다시 18일자에서 ‘김총서기의 3남 정운씨가(26) 이번달 10일 전후에 베이징을 방문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갖고 그 자리에는 장남인 정남 씨(38)도 동석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평양, 베이징, 광저우, 선전, 상하이, 다롄, 평양으로 이어지는 정운의 이동 경로를 상세히 기록한 지도까지 게재했다.

18일 이날 보도를 접한 중국정부의 반응은 16일과는 완전히 달랐다. 친강 대변인은 2일 전의 설명에 대해 언급하며 ‘일본 기자는 내가 말한 동양식의 함축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혹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오늘 한층 더 깊게 언급하고 싶다. 보도된 것 같은 상황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한 다음, ‘최근의 미디어 보도는 마치 007소설을 읽고 있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또 우다웨이 중국 외무 차관도 6월 25일 방중한 카토 코이치 자민당 전 간사장에게 김정일의 삼남 정운이 방중했다라고 한 일부 미디어의 보도에 대해 ‘정운씨는 중국에 한번도 온적이 없다’고 재차 부정했다. 중국 정부 고관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일본의 대기업 언론의 보도를 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던 중에 영국 파이낸셜 타임지는 29일 아사히 신문의 보도를 원호(援護) 사격하는 것처럼 김정운이 ‘이번달 10-17일까지 극비리에 방중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런 보도는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동행자 중에 병상에 누워있는 조명록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사를 쓴 기자가 북한 전문가라면 누구나가 알 수 있는 수준의 정보마저 갖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중국 외무성의 친강 보도관은 6월 30일 정례기자회견에서 아사히 신문에 이어 파인내셜 타임지가 정운의 방중설을 보도한 것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무중생유’(없는 사실을 꾸며낸 것)인 전혀 근거가 없다’고 대답했다.

1. 아직 확증이 보이지 않는 ‘김정운 후계결정설’

일본에서 확실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정운 후계결정’은 1월 15일 한국 ‘연합뉴스보도’가 계기이나,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6월1일 한국 국가정보원의 이른바 ‘북한 재외 공관 통보’ 정보다.

이 정보 이후 TV, 신문, 잡지,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일제히 ‘김정일 후계자 결정’을 논했다. 전술한 아사히 신문의 오보나 ‘김정남 망명설’, ‘김정남 암살설’ 등이 활개를 치며 일본과 한국에 확산됐다.

김정일이 작년 8월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북한의 후계체제가 급해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김정운이 후계자에 내정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한층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과 ‘전문(傳聞)정보’를 마치 ‘진위를 확인한 정보’처럼 흘려 내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각각의 정보를 처음부터 부정할 필요는 없으나, 어떠한 물적 근거를 나타낼 수 없는 정보는 어디까지나 미확인정보로서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특히 조중 국경이나 중국관계 정보통으로부터의 정보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북한이 정보공작원을 중점 배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북한 정보를 ‘비즈니스’로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것뿐만 아니라 북한의 일부 군이나 당 조직마저도 자금 마련을 위해 ‘내부문서’를 위조해 팔아치우고 있다.

‘김정운 후계자 결정’이라는 언론 보도를 이끌어 낸 한국 국가정보원의 발표도 (정보원이 밝혀지기 때문에 일부러 제시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물적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정보에 대해 한국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단순한 소문에 지나지 않았던 ‘김정운 후계설’이 표면화 된 것은 이번달 1일에 국정원이 국회의 정보위원회에 전화를 통해 ‘북한이 김정운을 후계자에 결정했다는 것은 사실을 포함한 전문(電文)을 (지난달 25일의) 핵실험 직후에 복수의 재외공관에 보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달한 것이 계기다. 그러나 국정원의 판단의 근거가 된 ‘전문’의 내용이나 실체에 대해서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정부의 간부들은 ‘문제의 (전문) 그것을 입수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문’의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당시 국정원도 ‘(전문) 그것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8일)

영국의 피터 휴즈 북한 주재 대사도 3일, 평양의 영국대사관과 영국 외무성을 연결한 TV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의 후계자 문제에 대해 ‘(후계자가)확정 됐다라는 것에는 거리가 멀다, (후계자 문제는) 확실히 초기 단계에 있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휴즈 대사는 ‘보도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는 국민 대부분은 후계자 관련 된 것이 문제되고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혹시 그가(김정일) 뇌졸증을 일으켰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후계자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산케이 신문 2009년 7월 4일)

2. 후계자 결정을 나타내는 핵심적인 지표는 무엇인가?

북한이 후계자를 공식 발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후계자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우선 김정일이 후계 지명을 받은 과정과 거기에서부터 만들어진 ‘후계자론’이 어떤한 것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북한의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는 ‘원류(源流)’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후계자 결정 프로세스도 이런 ‘후계자론’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김정일 때와 같은 시간과 (세습) 과정은 간략화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것뿐 아니라, 그를 반대하는 세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국제공산주의 운동도 쇠퇴되어 중러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후계자의 결정은 김정일의 결단에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핵심은 후계자 권력의 확립을 어떻게 진행하는 것인가에 있다.

1) 후계자 결정의 핵심은 ‘후계자의 유일 관리제’의 확립

수령독재 제도 아래에서의 ‘후계자론’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후계자의 유일관리제’ 문제다. 이 ‘유일 관리제’는 ‘후계자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지도체계는 수령(김정일)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라고 하는 규정부터 나왔으나 이것은 수령에서 후계자에게 권력 이동을 의미한다.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추대되게 된 것은 이 ‘유일관리제’가 확립된 결과이다. 또 ‘곁가지’라고 말하는 김정일의 이복동생이나 거기에 얽혀있는 권력을 제거한 것도 ‘유일관리제’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후계자가 결정됐는지 어떤지는 이 ‘유일관리제’, 즉 북한에 있어서 모든 문제가 후계자를 통해 수령(김정일)에게보고되어 결제되는 시스템이 확립되었는가에 달려있다.

후계자의 지표인 수령에 대한 충실성, 인물의 위대성 등은 어떻게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후계자가 권력을 장악하는 이 ‘유일관리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자칫 잘못되면 김정일의 권력까지 위협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난무하는 ‘후계자 정보’와 북한에서 발신된 각종의 정보로부터 ‘유일 관리제’가 확립됐다라는 징조는 없다. 이에 따라 김정운이 후계자에 지명됐다는 정보가 옳다고 해도, 그것이 ‘내정’ 단계인 것으로 추정된다.

내정단계에서는 유일관리제라고하는 권력이양은 실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변화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일 시대도 당초 후계자는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김영주는 마르크스 레닌 주의를 고집했기 떄문에 ‘주체사상’을 이용해 김일성을 절대화 시켜 그를 매우 기쁘게 한 김정일에게 그 지위를 빼았겼다.

김정일 시대인 2000년대 초 김정일의 아내이며, 김정철, 김정운의 모친인 고영희가 노동당 서기였던 정하철을 전면에 내세워, 정철을 후계자로 세울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일시적 ‘존경하는 어머니’라고 불린 고영희는 사망해(2004년), 정하철은 북한의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 ‘사건’이후 김정일은 후계자 문제에 대해 언급을 금시시켰다고 한다. 그것은 간부사이에서의 권력 투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뒤집고 이번에 김정일이 김정운을 후계자로 결정했다고 한다면, 적어도 김정운의 후계결정을 받아 들이는 ‘권력 중추에서의 의사통일’(합의가 아니다)이 되지 않으면 않되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관리’ 확립의 제 일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의사통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현 시점에서 분명하지 않다.

2) ‘유일관리제’확립에는 정권 안정이 불가결

후계자의 권력인 ‘유일관리’ 확립에는 정권의 안정이 불가결이다. 김정일이 후계자가 된 1970년대는 북한의 정치가 안정됐었고 경제가 전성기였다. 남북간의 체제경쟁에서도 사회주의진영을 뒤축으로 한 비동맹외교 등 대외 활동에서도 북한이 한국을 앞서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일성이라는 절대적 카리스마가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건강악화가 분명해졌고 경제도 최악이다. 이번 북한이 강행한 핵실험에 의해 최대 동맹국인 중국까지도 불쾌감을 나타내는 등 대외적인 조건이 악화되고 있다.

또한 당시 김정일은 ‘후계자의 유일관리’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정적인 숙부 김영주나 계모인 김성애, 이복동생 김평일, 김영일 등을 배제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김정남, 정철, 정운 등은 전부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들이다. 이중 아들 한사람에게 권력을 이양해, 그 아들이 유일관리를 확립한 경우, 다른 아들들은 배제된다는 것을 김정일은 잘 알고 있다. 아들들이 싸우는 경우, 정권이 안정될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또한 아들 한명을 후계자에 임명한 순간부터, 자신은 권력을 잃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주변 모두는 ‘떠오르는 태양’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는 태양’에는 관심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권력 분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김정일과 그 후계자의 공동통치가 김일성 시대처럼 잘 굴러갈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혹시 김정일의 건강이 장기간 유지돼 미북관계가 북한이 희망하는 것처럼 잘 해결되고 거기에서부터 북한 경제가 회복되고 정치체제가 안정된다면 후계자의 유일관리도 부드럽게(연착륙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누가 후계자에 지명되더라도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형식적인 과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후계 결정의 핵심은 ‘후계자의 유일관리’에 있으나 그것을 보장하는 것은 정권의 안정이다.

김정일 정권이 국제사회를 적으로 돌려세워서라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서둘러 미국 본토에 핵탄도미사일을 겨냥하려고 하는 것도 정권 안정을 우선시킨 결과다. 김정일은 핵무장이 완성되면 미국이 교섭에 응할 수밖에 없게된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또한 150일 운동으로 경제 재건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김정일 건강악화로 흔들리고 있는 정권을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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