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금강산’에서 무엇을 보았던가?

▲ 금강산 호텔 2층 전경

7월 1일부터 15일까지 보름 동안 북한 땅을 밟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명지대학교에는 지난 해부터 금강산 자원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학과에 다니면서 북한에 관심이 많아져 지원했는데, 운 좋게 나에게도 기회가 돌아왔다.

총 20여명의 학생들이 선발되었고, 나는 북한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금강산 호텔에 배정되었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원래 호텔 쪽에는 배정되는 봉사자가 없었는데 북한학과인 나를 위해 급히 배정했다고 한다.

호텔에서 나는 여러 부서의 일을 실습했다. 그중 가장 오랫동안 실습 받은 곳은 로비 라운지였다. 로비 라운지는 손님들이 산행을 나가는 아침과 산행에서 돌아오는 저녁 때 바쁘고, 그 사이에는 그다지 바쁘지 않아 북한 접대원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12일간 호텔에 근무하며 많은 일들을 경험하였지만, 북한의 실상을 깨닫게 했던 두 가지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금강산 호텔에는 북한여성들이 접대원으로 근무를 한다. 접대원들은 20살~26살까지의 여성들이다. 처음에는 그들과 친해지지 않아 서먹서먹한 분위기였지만 남한으로 돌아올 때쯤 사진을 찍을 정도로 정이 많이 들었다.

사진을 찍자는 말은 내가 먼저 했다. 어떻게든 북한에서의 추억을 잊고 싶지 않아 말을 꺼냈는데, 북한 접대원들은 사진을 찍자는 내 말에 계속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루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北 아주머니들

나는 속으로 ‘사진을 찍기 싫은가 보구나…’라고 생각하며 내심 서운했다. 그러나 이틀 뒤, 갑자기 사무실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사진을 찍자고 로비로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챙겨 얼른 내려갔는데 로비에는 사진을 찍자고 했던 4명의 북한 접대원이 있었다.

곱게(예쁘게) 찍으려고 소품도 준비한 접대원들은 나보다 사진을 찍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은 시간에 쫓기듯 사진을 찍자마자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정문 쪽에서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금강산에 간 지 9일째 되던 날 객실 청소를 하게 되었다. 침대 커버를 씌우는 일을 배워보라는 것이었는데 청소를 담당하는 아주머니들을 보고 내가 온 곳이 ‘북한’이란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로비의 접대원들은 하나같이 건강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금강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굶주리지는 않는구나 생각하며 안도했었다. 그러나 접대원들은 북한당국이 ‘보여주는’ 사람일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 즉 남한 관광객들과 마주칠 일이 극히 드문, 방 청소를 담당하는 아주머니들은 바싹 말라버린 나뭇가지처럼 뼈만 앙상했다. 어떻게 저런 몸으로 집안일을 돌보고 직장까지 다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같이 일한 아주머니의 나이는 30대 초반. 접대원들과 약 5~10년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보면 족히 20년은 차이가 나 보였다.

청소를 마치고 프론트로 내려와 접대원들을 봤을 때 순간적으로 가슴이 탁 막혀왔다. 접대원들의 10년 후의 모습과 청소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중에도 한 3일간은 접대원들조차 밥을 먹지 못한 날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사소한 욕구조차도 감시당하는 사람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으로 한국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들.

금강산 자원봉사 활동은 단지 북한에 태어났다는 것 하나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남한에서의 이들에 대한 관심과 작은 활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 값진 경험이었다.

조미희/ 명지대학교 북한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