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천국’이 개혁개방 열차를 못타는 까닭은?

▲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과 김 전 대통령

이종석 통일부장관에 대한 국회청문회의 주요 관심사는 그가 과연 그 자리에 적절한 인물인지 여부에 있었겠지만, 김대중 정권 이후 햇볕정책이라는 ‘유화정책(appeasement)’으로 시작된 남북관계에 그 어떤 인물이 통일부장관이 되더라도 국정의 최고 결정자인 대통령의 사고가 제대로 바뀌지 않는 한 지금의 대북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대북정책의 기본입장들이 명시적으로 천명되어 찬반논쟁이 더 분명한 바탕 위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는 점이 약간의 수확이라면 수확일 듯하다.

그렇다면 이종석 청문회를 통해 분명해진 대북정책의 기본입장들은 무엇일까? 필자가 볼 때 북한의 개혁개방, 평화체제 구축, 통일에 관한 것이며, 이들 간의 내적 관계가 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北 개혁개방

우선 햇볕정책이 그 명칭에서 불러일으킨 상상이자, 공식적으로 천명된 목표인 ‘북한의 개혁개방’이 뒷전으로 물러섰거나 초점이 흐려졌다.

김대중 정권이 제시한 햇볕정책의 목표는 “북한을 고립, 봉쇄하려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고 협력함으로써 북한 스스로가 변화하고 개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려는 것(국정원)”이다. 그러나 이후 근 8년이 지난 지금,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의 실무 책임자는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해 어떠한 확신도 갖고 있지 않는 듯하다.

“이 내정자는 이날 북한의 개혁개방 문제와 관련, ‘북한이 개혁개방 하려면 수령제가 개선돼야 한다’면서도 ‘개혁개방이 북한체제 보장을 상정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수령제 하에서 개혁개방 사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개혁개방 자체가 많은 사례를 갖고 있지 못하다’며 정확한 답변을 피해갔다.”(DailyNK)

이종석 내정자의 이 발언만을 갖고는 현 정권의 대북정책이 아직도 북한의 개혁개방을 목표로 하고는 있지만 그 실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개혁개방을 대북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제외했다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필자의 짐작에는 아마도 둘 모두가 아닐까 생각된다. 즉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에서 그들 스스로가 국민에게 끝없이 불어넣은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환상이나 희망이 너무나 커서 이제 공식적으로는 부정하기 어려워도, 내부적으로는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가능성을 낮추었거나 사실상 포기했다고 생각된다.

햇볕정책과 개혁개방은 애초에 무관

원래 북한은 햇볕정책의 초창기부터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나섰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은 2000년 3월 “남조선 통치배들의 대화니, 화해니 하는 것들이 북남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를 와해하고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반공화국 대결책동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했고, 당기관지 로동신문은 “포용정책으로 북의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은 ‘허망한 개꿈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포용정책이라는 것은 본질에 있어서 가짜 대화와 독 발린 교류를 통해 북을 사상적으로 와해시키고 정신적으로 무장해제시킴으로써 저들의 골수에 박힌 북침통일 야망을 기어이 이루어 보려는 총포성 없는 북침전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0년 3월이라면 바로 김대중, 김정일의 평양회담이 있었던 그 해가 아닌가? 그렇다면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한 북한의 거친 반응은 단지 평양회담을 위해 뭔가 밀고 당기기 위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이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는 6.15선언 이후 5년 반이 지난 바로 작년 12월,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북한이 베트남 식으로 개혁개방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였다가, 바로 조평통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은 적이 있다.

즉 햇볕정책의 목표인 북한의 개혁개방은 사실상 유야무야된 상태이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부터 흐지부지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김정일은 이들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햇볕정책은 그 화려한 외피에도 불구하고 출발부터 북한이 요구한 연북정책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수령제가 포기되기 전에는 개혁개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종석 장관이 김정일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 정권의 대북정책의 목표에서 내부적으로 개혁개방을 포기했다고 보는 것은 결코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니다.

그것은 또 이 장관이 “실사구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남북 교류가 철두철미하게 한국은 돈과 물자를 퍼주고, 북한은 ‘남북한 교류의 상징’만을 던져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명백하다.

개혁개방 불가, 김정일이 잘 알아

그렇다면 수령제가 개혁개방과 같이 갈 수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북한이 이미 ‘천국’이고 천국은 개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북한에서 개혁개방은 북한인민에게 북한이 결코 ‘우리의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이 ‘주체의 천국’을 창조한 수령 덕분에 먹고 입고 살 수 있었던 것도 아니며, 따라서 앞으로도 ‘수령의 천국’이 의식주 해결에 그렇게 기여할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수밖에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개혁개방이 아니다.

‘수령천국의 해체’는 수령천국의 필요성이 사라지면 시작될 수밖에 없고, 설사 운이 좋아 김정일이 한평생 수령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개혁개방 하에서 왕위 계승은 ‘정말’ 불가능하다.

바로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 김정일이며, 그런 점에서 김정일은 결정이론적으로 완전히 옳게 행동해 왔다. 즉 그는 ‘수령주의의 영생 곧 봉건세습파시즘의 존속’을 위해서는 개혁개방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정확히 보았다. 김정일은 이런 ‘탁월한 식견’으로 동구권의 몰락을 15년 이상이나 견뎌낼 수 있었고, 북한주민 300만을 아사(餓死)시킨 ‘고난의 행군’을 강요하더라도 수령독재를 포기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수령천국과 개혁개방이 ‘얼음과 숯의 관계’라는 필자의 주장에서 외세의 위협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음에 주목해야 한다. 즉 ‘미제국주의’나 남반부의 몇몇 수구보수의 ‘흡수통일위협’ 때문에 개혁개방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수령주의 자체가 개혁개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그 원인인 것이다.

따라서 현 정권의 대북정책의 주 목표는 공식적으로 표방된 북한의 개혁개방이라기 보다는 이종석 장관의 강조처럼 “평화체제 구축”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나, 이와 같은 대북유화정책의 중점 이동은 심각한 내적 모순을 야기시키고 있다.

문제는 평화체제 구축 노력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 정권의 평화체제 구축이란 일종의 블랙홀로써, 다른 모든 가치를 빨아들여 무화(無化)시키는 데에 있으며, 불행히도 이 밀려난 가치들에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려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북한의 핵보유와 북한인권문제다.

핵보유 선언과 ‘평화체제 환상 구축’

작년 2월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이른바 ‘소극적 평화’ 혹은 ‘냉전체제’라고 폄하되고 있는 한반도의 무력균형을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물론 한국정부의 평화체제 구축정책 자체가 북한의 핵보유 선언의 직접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김대중의 햇볕정책 하에서도 김정일은 핵무기 제조를 시도해 왔고, 현 정권 하에서도 핵무기는 계속 개발되어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문제는 현 정부의 평화체제론은 북한이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사실상 도와주는 한편, 국민으로 하여금 그 위험성에 눈 멀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러한가?

북한이 핵보유 선언을 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이종석 NSC사무차장의 해임을 고려했으나 정동영 전장관이 막았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무력의 균형에 바탕을 둔 소극적 평화를 선린관계에 의한 적극적 평화 구축론이 전혀 보장하지 못하거나, 차라리 훼손을 방조하고 있다는 점 (2) 이런 심각한 사태에 직면해서도 현 정권은 대북유화정책의 실무자인 일개 NSC 사무차장조차도 북한에 대한 경고등으로 해임할 수 없을 만큼 평화체제론을 자신들의 정치적 정체성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정동영 전장관은 북한 핵문제는 커녕 공격적인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에 조금도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체제 구축을 마치 이미 확보된 담보인양 군비절감을 위해 한국군의 감축을 제안했다. 그 동기는 일개 당의 대표에 당선되기 위한 정치적 야망에서였다.

즉 김대중의 햇볕정책에 이어, 노무현정권의 평화체제 구축론은 정책이라기보다는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도 전술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덫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바로 이 덫은 어떠한 긍정적 가치의 훼손도, 또 북한의 어떤 물리적 위협도 감수할 수밖에 없을 만큼 이미 현 정권의 골수를 파고들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 평화체제 구축이란, ‘평화에 대한 환상체제 구축’ 이외에 무엇을 말하겠는가?

나찌-김정일 정권-남한 親파시즘 세력

둘째는 북한인권문제다. 이종석 장관은 청문회에서 “김정일 정권이 독재정권이 맞느냐”는 질문에 “맞다. 인권탄압이 심하다”고 대답했다. 또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세 번 연속 기권한 배경에 대해 “북한에 심각한 (인권)문제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지적하고 있다”면서도 “북한인권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야기하는 평화번영정책의 입장에 앞설 수 없다”고 답했다. (DailyNK)

위 인용에서, 또 지난 1월 박경서 인권대사의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에는 심각한 인권문제가 있지만 제기해서는 안된다”는 맥락 하에서만 북한인권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할 수 있을 만큼 노무현정부 하에서 이 문제는 금기가 되었다.

즉 한반도 전체의 평화체제 구축이 한반도 절반의 암흑 같은 인권상황보다 -어차피 한국의 통치력이 미치지도 않는 마당에- 더 우선권이 있으며, 이런 공식적 입장 뒤에 숨어있는 가정(假定)은 ‘우리 남한에 사는 사람들은 북한인권 상황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현 정부, 국가인권위원회, 자칭 타칭 인권대사들, 그리고 친김정일 시민단체들의 변명과 호도는 결코 북한주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민의 미래 상황이다. 왜 그러한가?

인권유린 정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윤리적으로 항상 착잡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정권들은 암세포와 같아서 외교, 경제적 압력이라는 항암제를 아주 넉넉히 쓰면 박멸시킬 수도 있으나, 그 정권 밑에서 고통을 받는 인민들, 즉 정상조직 역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부드러운 처방으로 정권의 체질을 바꾸고자 하면, 대부분 이들 암세포적 정권들은 기고만장하여 인민들을 마음 놓고 유린, 고혈을 짜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나라들이 인권유린 독재정권에 대해 강압적인 수단보다 부드러운 처방을 내리는 것은 후자가 더 효과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며, 이른바 부드러운 처방이라는 “경제교류”도 실은 자국에 뭔가 떨어지는 게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버마의 군사정권에 대한 한국 및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의 접근이 그러하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북한인민은 헌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에 포함된다는 현재의 법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이른바 평화체제 구축론자들이 그렇게도 즐겨 찾는 주제, 바로 미래의 통일의 대상이다. 2정부 2체제 연합이든 연방이든, 1국가로 통일이 되면 남북의 인민들은 한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어느 누구도, 열린우리당, 민노당의 어떤 인사도,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의 어느 누구도, 이러한 통일을 인권탄압의 주범인 김정일 봉건세습파시즘이 사라진 상태로 그린 적은 없다. 차라리 그 반대로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 이들의 태도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내릴 수밖에 없는 결론은, 이들이 꿈에도 그리는 “우리민족끼리의 자주통일”은 적어도 한반도의 북녘에서는 히틀러나 스탈린의, 어쩌면 김정일 고유수준의 인권탄압이 계속 존재하는, 아마도 한반도 전체에 인권개념이 극도로 약화될 수밖에 없는 통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반대의 근거는 밥그릇이나 정치적 야망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존재조건이라는 정의(正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의를 불의가 정당하게 이길 수는 없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민족끼리의] 평화가 [매국노들의] 인권에 우선 한다”는 궤변들이 동원될 수밖에 없으며, 구체적으로 남북의 파시즘 세력들은 노예적 평화에 저항하는 세력을 반드시 핵공갈이든, 재래식 군사력이든, 아니면 테러든 무력으로 제압하려 들 것이다.

“남조선에서 반보수대련합을 이룩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조선의 친미보수세력은 지금 6.15통일시대를 과거의 대결시대로 되돌려 세우고 저들의 집권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최후발악을 하고 있다. (…) 독초는 제때에 뿌리 뽑아 제거해버려야 한다.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신보수》의 결탁과 도전을 진보의 대련합으로 짓부셔버리고 매국반역집단에 종국적 파멸을 안겨야 한다.(2006년 북한 신년공동사설)”

일독(一讀)을 권하고 싶은 북한의 2006년 신년공동사설에서 “종국적 파멸”은 놀랍게도 히틀러와 그의 친위대장 히믈러가 즐겨 쓴 “종국적 해결(Endlösung)”과 표현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 매우 유사하다. 참고로 나찌의 경우 “종국적 해결”이란 절멸수용소의 가스실행(行)을 의미했다. 여기에 친북단체 <전국연합>은 「2006년 정세분석 및 투쟁방향」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민족화해, 단합의 과정을 촉진시키고 조국통일의 장애물, 반통일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이 적극화되는 가운데 반통일보수세력은 북의 체제, 인권 문제를 들고 나오며 민족대단결의 흐름을 차단하려 각방으로 책동할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 기치 아래 민족공조를 더욱 강화해 전 민족적인 자주권을 실현해나가야 한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친미보수세력의 반통일, 반민족책동을 분쇄하고 완전 매장해버려야 한다.”

한반도 북쪽의 인권상황에 대한 묵인을 전제하는 현 정권의 평화체제 구축론이 북한식 인권상황을 한반도 전체에 감수하더라도 “우리민족끼리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음은 분명하다. 둘 다 타락한 민족주의라는 완전 닮은꼴의 가치 전도이며, 파시스트의 언어폭력은 반드시 실제 폭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위의 <전국연합>의 투쟁지침은 그 한 예일 뿐이다.

김정일의 ‘한 방’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북한의 개혁개방과 수령제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앞에서 우리는 이종석 장관도 인정했듯이 개혁개방과 수령제가 빙탄지간(氷炭之間)에 있으며, 김정일이 개혁개방보다 수령제를 선택하고 있음을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의문점들, 즉 김정일 본인도 그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개혁개방을 왜 안하고 있는지, 현 정권의 해석에 의하면 경제원조와 바꾸려고 만들었다는 핵무기를 김정일은 왜 계속 ‘판매거부’를 하고 있는지, 남북한 간의 인적교류가 자유화된다면 몇 달도 못 버티고 무너질 지금의 북한체제가, 체제변화를 극력 거부하면서도 왜 남북연방제 통일을 ‘당장’ 주장하는지, 그 답이 보인다.

김정일 스스로 측근에게 말했다고 전해지는 것처럼, 그는 한국을 북한의 한 도(道)로 보고 있으며, 김정일은 그의 봉건세습파시즘이 계속 존속할 수 있는 통일을, 즉 그의 수령천국의 골치 아픈 모든 문제를 한 방에 “광폭(廣幅)하게” 털어버릴 수 있는 묘수, 바로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블랙홀적 평화체제 구축론이, 그리고 이를 위해 김정일이 용인하지 않는 모든 것을 스스로 불허하는 자기검열적 사고방식이, 한국사회 곳곳에서 때로는 “냉전체제의 해체”, 때로는 “진보”, 때로는 “평화통일”이라는 이름하에 대한민국의 가치와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가치를 그 뿌리에서 흔들고 갉아먹는 풍조를 만연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의 전도(顚倒)가 김정일에게 이제는 이 “한 방”이 정말로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한편, 북한의 개혁개방을 근본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홍성기/ 아주대 특임교수(철학박사)

홍성기(洪聖基)
-서울출생(1956)
-경기고, 서울대 독문과 졸업
-뮌헨대 철학석사
-자르브뤼켄대 철학박사(논리학, 동서비교철학)
-아주대 특임교수(현)
-주요논문 : <용수의 연기설><괴델의 불완정성 정리 비판>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