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을 그렇게도 모르나요?”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을 위해 외교문제까지 감안하고 애썼는데 북한이 취한 행동을 두고 화가 났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런 노무현대통령의 행동을 놓고 참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이제야 북한에 눈뜨고 있는가 하는 기대감이고, 또 한편으로는 도대체 뭘 말하자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아마추어적인 대북인식이다.

김대중정권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햇볕론자들은 남북화해와 교류만이 남북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결국 북한을 변화시켜 인권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에 매몰돼 있다.

하지만 ‘교류’라는 용어가 혼돈될 만큼 북한의 전략에 말려든 일방적인 퍼주기가 교류로 둔갑돼 흘러간 수년을 돌이켜 보면 북한은 불안하고, 위험하기 그지없으며, 가장 위험한 수단인 핵무기까지 개발해 분단된 이래 가장 위험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권에 코드화된 미디어는 북한의 실상은 외면한 채 표면적으로 드러난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등 남북교류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은 마치 미국이 북한을 압박해 남북한의 긴장이 조성되고 북한에 퍼주지 않으면 김정일이 도발이라도 일으켜 전쟁이라도 일어날 듯이 착각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2천3백만의 우리형제가 독재정권하에서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초보적인 인식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에서 제출한 인권법안에 우리정부가 기권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분노는 고사하고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은 남북관계를 고려한 적절한 조치였다는 망발까지 늘어놓는 사태에 이르게 됐다.

햇볕정책이 김정일 만행 부추겨

김정일의 만행을 남한국민들이 외면하게 만든 것은 햇볕정책이 낳은 최대의 ‘결실’ 인 셈이다. 김정일은 한국정부의 절대적인 비호아래 국제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수용소를 더 잔인하게 운영하고 있으며, 탈북자들을 포함 북한주민에 대한 고문, 학살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굶주림으로 수백만이 아사한 후 김정일에 대한 북한주민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이젠 그 화살이 김정일을 살려준 남한정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교류와 인권문제는 전혀 상관없는 일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바로 오늘의 현실인 셈이다.

김정일은 북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치 않은 반항조짐과 권력이완 등 외부의 압력과는 비할 바 없는 인민들의 원망을 잠재우기 위해 ‘핵보유’ 선언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내부통제를 효과적으로 하기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외적으로 막대한 경제 원조를 받아내기 위해 미국을 상대로 도박을 걸었다고도 인정할 수 있다.

김정일의 핵보유 선언 의도는 체제보장과 경제적 지원인데, 그 핵심은 김정일과 그 일당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하지 않아도 체제를 지탱시킬 수 있는 달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6자회담이니 뭐니 하는 것도 김정일에겐 매우 하찮은 것이다. 동맹국을 포함해 모여앉아 핵을 없애는 논의를 해봐야 달러는 생길리 만무하고 김정일에 대한 국제적 압박만이 가증되기 때문이다. 달러박스가 담겨있지 않는 그 어떤 회담에 김정일이 나가겠는가?

정권의 운명과도 관련된 핵과 달러는 김정일이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수단인 셈이다.

이는 노무현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부시대통령에게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고 부탁한다든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핵은 자위적 수단으로 이해된다는 식의 논리에 맞지 않는 발언으로 김정일을 안심시킨다고 해서 달라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김정일을 아는 사람들은 직감할 수 있는 문제다.

개성공단, 김정일 달러박스 된다

지금까지 김대중정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인권문제를 덮어두고 김정일의 외화벌이 수단인 남북교류에만 열을 올려 얻은 성과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늦추고, 수용소가 폐쇄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인권탄압은 더 가중된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김정일의 입장에선 철조망을 둘러친 금강산을 빌려주고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됐고, 그런 연장선에서 개성공단까지 달러박스로서의 효과를 보게된다면 체제변화 없이 안전하게 수입원을 확보하는 전략적 승리가 된다. 아무리 남쪽에서 관광객이 몰려가도 그들은 단한명도 북한주민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준비된 요원들이 감시의 눈초리를 받았을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변화는 바로 민심의 변화인데 그것은 김정일정권이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이런 남북교류야 말로 눈감고 김정일의 호주머니를 불려주고, 독재정권의 변화를 막아준 방패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이 북한인권법안을 제출하면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고, 눈먼 달러를 수없이 퍼주며 김정일을 안정시키면 남북관계가 호전된다는 해괴한 논리로 계속 국민을 기만한다면 곪은 대로 곪은 독재 권력으로부터 오는 재앙은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어째서 김정일을 그렇게도 모르는가

아무리 잘해줘도 북한이 나오는 태도에 화가 났다는 노무현대통령의 대북인식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실망 그 자체다. 아직도 김정일을 그렇게 모르고 무슨 평화협력정책을 쓰겠다는 것인지 암담할 뿐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 고 하지만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현 정부의 대북관은 국민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김정일 독재정권하에서 죽어가는 북한인민인데, 이들을 방치한 죄는 현 정부는 물론 김대중정부가 역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도 용서받기 힘든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참모들부터 북한을 제대로 아는 전문가들로 바뀌어져야 한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허무맹랑한 대북정책으로 더 이상 국민이 불행에 빠뜨리는 누를 범하지 않도록 대통령의 대북인식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강철환 /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