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 포커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북한 당국 ‘내로남불’의 진수

본지가 입수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설명자료에는 “많은 양의 남조선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를 유입 및 유포할 경우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진=데일리NK

최근 북한에서는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 체제가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지난해 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하 배격법)을 제정하여 주민들의 사상을 통제하고 체제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배격법의 적용 대상에서 북한 엘리트들은 예외로 인정되면서 북한 당국의 모순적 행태가 주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지는 의문이다.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Richard Overy)는 The Dictators 라는 책에서 스탈린,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은 국가가 저지르는 테러행위를 ‘국민의 적에 맞서 국가를 보호하는 행위’로 간주했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국가가 행하는 대규모의 폭력적 억압도 국민들에겐 테러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재체제에서 독재를 유지, 강화하는 하나의 기술이라고 하겠다.

북한 당국 역시 이 같은 독재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체제 유지와 정권 안보를 위해 배격법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배격법을 적용하는 데에도 대상이 있다. 배격법 적용에는 ‘인민대중 제일주의’가 가장 먼저 해당된다. 지난해 10월 중순경 함북 청진시에 사는 중앙당 39호실 산하 수산기지 소속 최모(40) 선장이 자유아시아방송(RFA)을 듣다 북한 당국에 걸려 총살됐다는 보도를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 후 12월 4일 북한 당국은 배격법을 본격 제정하면서 주민들을 옥죄기 시작했다. 배격법의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군대 역시 배격법의 광풍을 비켜가진 못했다. 최근에 제3군단 지휘부 후방부장인 김 모(50대 초반) 씨가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 보관했다는 이유로 공개 총살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뿐만아니라 김 씨의 아내와 두 아들은 정치범수용소로 호송됐고, 재산은 모두 당국에서 몰수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배격법을 전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하면서 외부 사상과 문화의 철저한 차단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외래문화에 감염되기 쉬운 청년층에 대한 단속도 시행됐다. 지난 3일 북한에서는 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제9기 제13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인 현상을 없애기 위한 강도 높은 투쟁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북한 당국은 청년들에 대한 사상통제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이 같은 ‘열정’은 북한식 ‘내로남불’에 다름 아니다. 권력층에 위치한 엘리트들은 외부 사상과 문화를 마음껏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이버 보안업체 리코디드 퓨처의 프리실라 모리우치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북한의 정치·군사 지도층 엘리트들은 인터넷에 무제한 접근권한을 보유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하고,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에서도 마음껏 쇼핑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인 암호화도 하지 않고 서방의 소셜미디어(SNS)를 많이 사용하고, 비디오 게임을 하는가 하면 서양 영화도 보고, 영어와 일본어 웹사이트에서 뉴스를 읽는다는 것이다. 모리우치 연구위원의 주장은 2017년 북한의 인터넷 통신량 분석에서 얻은 자료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북한 당국이 지배 엘리트들의 특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김씨 일가가 절대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엘리트들에게 특혜를 부여하며 이너서클(inner circle)을 형성했기에 독재체제를 70년간 유지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북한식 후원-수혜(patron-client) 관계는 첨예한 위기와 주민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저항세력의 조직화를 막고 정권 안보와 체제유지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기제(mechanism)가 되고 있다.

문제는 배격법 적용의 형평성이다. 앞서 언급된 김 씨의 경우, ‘제국주의 반동들에게 동조하는 이적행위를 한 역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공개 총살당했다. 일반 주민들이나 군인들이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면 반당 반혁명분자이고, 엘리트들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고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 것은 애국적인 행위인가. 북한 엘리트들은 어떤 면역체계가 형성돼 있어 김정은이 ‘악성 종양’이라고까지 표현한 자본주의 문화와 콘텐츠들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것일까. 김정은 자신도 지난날 할리우드 스타인 장 끌로드 반담의 영화에 심취하지 않았던가.

김정은은 ‘내로남불’식의 배격법 시행을 당장 멈춰야 한다.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구현한다면서 배격법 시행에만 인민들이 제일 우선이라는 비판을 듣기보다는 외부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인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폭력과 억압으론 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막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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