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 포커스] 철권통치의 민낯이 드러난 정치국 확대회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9일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상황 등을 점검했다고 노동신문이 3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사건이 발생했다”면서 간부들을 질책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집권 초기에 나타났던 김정은의 광기가 재연되는 듯하다. 리영호를 필두로 장성택, 현영철, 자신의 친형인 김정남마저 잔인하게 처형했던 김정은은 집권 10년 차를 맞아 독재왕국 건설을 위해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누구든지 처벌하는 비정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 명분은 인민을 위한다는 것이지만 간부들의 지위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김정은의 통치행태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 간부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폭발하는 날엔 예기치 못한 사태가 터질 위험이 크다.

지난달 29일 북한에서는 조선노동당 제8기 제2차 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렸다. 6월에만 중앙당 차원의 주요회의가 다섯 번째(4일 정치국 회의, 7일 중앙위-지방당 책임간부 협의회, 11일 당중앙군사위, 15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로 열린 것이다. 이번에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는 북한의 식량문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비상뿐 아니라 김정은 철권통치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리였다.

문제의 본질은 ‘김정은 조선’의 안정적인 구축이었다. 김정은은 자신의 왕국을 건립하려면 인민들의 지지와 대내적인 안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인민들의 지지는 의식주 문제의 해결과 직결되는 것이고 대내적 안정은 현재 세계적으로 재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를 얼마 만큼 확실하게 차단해내느냐가 관건이 된다. 지난번 전원회의에서도 김정은은 비상 방역의 장기화가 인민들의 의식주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의 장기화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밖에 인민들이 독재에 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비사회주의와의 전쟁을 통해 사상 단속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인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김정은은 식량문제의 해결을 꺼내 들었다. 지난달에 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군량미를 풀어 주민들에게 공급하라는 내용의 특별명령서를 발령했다. 그런데 군 비축미인 ‘2호미’는 충분치 않았다. 군인들도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군량미로 해결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특별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군에서는 방역수칙을 위반하면서 특수무역 단위를 통해 해외에서 쌀을 들여왔다가 이 같은 사실이 적발되면서 문제는 일파만파로 번지게 됐다(“軍, 군량미 부족에 외부서 쌀 들여왔다…김정은 언급한 ‘중대사건’?”, 데일리 NK 2021년 7월 1일자 기사 참조).

김정은의 별도 지시나 승인 없이 외부에서 쌀이 유입되자 코로나 방역을 최우선적인 정책으로 내밀고 있는 당에서는 이를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한’ 중대한 문제로 보고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관련 일꾼들을 강하게 문책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북한에서는 군이 방역의 최전선 역할을 맡아 왔고, 당 과학교육부는 보건부문도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책임 간부들이 세계적 보건 위기에 대비한 국가비상방역전의 장기화 요구에 따라 조직기구적·물질적·과학기술적 대책을 세울 데 대한 당의 중요 결정 집행을 태공(태업)했다”며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번 확대회의에서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과 정치국 위원·후보위원, 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각각 소환·선거했으며, 정치국 상무위원(김정은, 최룡해, 조용원, 리병철, 김덕훈) 가운데 군 서열 1위인 리병철(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정치국 위원 중 군 서열 2위인 박정천(군 총참모장), 최상건(당 비서 겸 과학교육부장) 등이 경질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정은의 최측근들도 독재의 칼날을 비껴가진 못했다. 리병철은 북한 미사일 개발의 주역이고 박정천은 포병 전문가로 이름을 날려왔다. 지난해 5월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에서 리병철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또한 리병철은 지난 수년간 북한의 주요 무기실험 현장에서 김정은을 수행하는 모습이 목격돼 그만큼 김정은과의 권력 거리가 가까운 인물이며 박정천은 당시 현직 군 수뇌부 중에서 유일하게 군 차수(원수와 대장 사이 계급)로 전격 승진했다.

이렇게 핵심적인 지위에 있던 간부들도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북한 간부사회에서 항상적인 긴장감과 불만을 누적시키고 있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나 고대 로마 황제들이 엄지손가락 하나로 검투사들의 생사를 결정한 것과 유사한 절대권력을 김정은이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의 검투사들은 스파르타쿠스의 반란과 같은 항쟁을 일으켰다. 북한 간부들이 억눌려왔던 한을 집단적으로 분출하는 경우 북한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마오쩌둥은 혁명이라는 미명 아래 권력을 위해 옛 동지들을 차례로 제거했다. 류사오치, 천보다, 린바오 등은 모두 대역 죄인으로 몰려 마오에게 숙청됐다. 비정함을 권력의 본질로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독재자의 권력은 예외가 없었다. 하물며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 혈안이 된 독재자의 광기는 측근이나 친구도 가리지 않는다. 간부보다 인민들이 더 중요하다는 김정은의 언급은 변명에 불과하다. 그의 의중엔 독재왕국 건설을 위한 안정화 방안만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독재자들의 광기의 끝은 하나같이 불운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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