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납북 이후, 내 어머니는 미쳐갔다”

“제 나이 두 살 때인 1969년, 김포를 향하던 KAL기 YS-11기에 탑승해 계시던 아버지께서 납북되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편집성 인격 장애를 겪게 됐습니다. 그 후 나와 내 어머니는 ‘미쳐가는 어머니와 그의 아들’로 분류됐습니다.”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 /김봉섭 기자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는 19일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주최한 ‘민간인 납북자 문제의 국제공론화 방향과 전략’ 학술토론회 자리에서 아버지의 납북으로 인해 겪었던 고통스런 유년 시절의 기억을 털어놨다.


황 대표는 “어린 시절, 밖에서는 항상 시끄러운 싸움소리가 있었고, 어머니가 그 싸움의 주체였다”라면서 “나로서도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저곳 울며불며 호소하는 어머니를 사람들은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나도 이 같은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머니가 느끼는 두려움, 상실감, 박탈감은 아들에 대한 집착으로 변해갔다. 내가 때때로 어머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어머니의 ‘사랑의 매’는 엄청난 폭력으로 변했고, 이 폭력으로 병원에 실려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어머니의 집착으로 나는 사람으로서 배워야 할 기초적인 것들조차 익히지 못했다”라면서 “친구들을 사귀는 것, 자전거 타기, 수영, 등산, 여행 등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조차 어머니 눈에는 위험하게 보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누군가가 나를 잡아갈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고 계셨다”고 밝혔다.


1969년 12월 11일 강릉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YS-11기 북한으로 납치당했을 당시 기내에는 승무원 4명과 승객 46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국제사회는 이 같은 북한의 납치 행위를 비난하며 납북자 전원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북한은 납치 66일 만인 1970년 2월 14일 승객 39명을 송환했다. 그러나 나머지 11명의 귀환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KAL기 납치 사건을 비롯해 6·25 정전협정 이후 미귀환 납북자를 517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족들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납북자 송환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노력은 아직까지도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같이 미귀환 납북자들을 생환시키기 위한 정책적·법제도적 논의가 이어졌다. 박정원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는 납북자 송환문제를 대북 민간무상지원과 연계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박 교수는 “납북자를 이산가족의 범위에 포함해 이산가족 교류 시 납북자의 생사확인 및 상봉을 추진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한다”면서 “조건 없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면서도 북한에 대해 납북 자문제에 대하여 성의 있는 조치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박 교수는 “‘납북피해보상 및 지원심의위원회’의 활동시한이 끝난 뒤라도 납북자문제가 종료될 수 없다는 상황을 고려해 위원회의 활동연장 내지 대체문제를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납북피해자 범위에 제3국에서 납북된 경우와 납북·귀환과정에서 사망한 경우를 포함시켜야한다”면서 “이와 함께 납북피해자 지원 신청기한을 3년 이내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사)북한인권시민연합이 주최한 학술토론회 ‘민간인 납북자 문제의 국제공론화 방향과 전략’이 19일 오후 서울 사랑의열매회관에서 열렸다. /김봉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