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Out NK] 막무가내 연락소 폭파서 드러난 北 진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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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6일 청년 학생들과 각 계층 근로자들의 항의 군중 집회와 거리 시위행진 소식을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은 최근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對敵) 사업으로 전환’하는 한편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이라는 것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제 시달리게 해주려고 한다”라고 위협했다. 이후 16일에는 인민군 총참모부를 내세워 남북합의로 비무장화된 지역에 다시 진출하고 남쪽을 향해 삐라(전단)를 살포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사실 북한은 분단 이래 한국을 점령 대상으로 간주하고, 이에 따른 대적 사업으로 일관해 왔다. 70년 전, 수많은 인명 피해와 함께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든 6·25를 비롯해 1·21사태와 미얀마 아웅산묘소 폭파사건과 같은 요인(要人) 위해 기도, 그리고 천안함 폭침과 백령도 포격 사건 등 75년간의 분단 역사는 북한의 도발사였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시기에 남침 땅굴을 굴착하였으며, 「비핵화공동선언」 (1992. 2. 19부터 발효)에도 불구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1993. 3. 12)하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 보유하기에 이르는 등 외형적으로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시기에도 그 이면에서는 무력 도발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더욱이 북한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과 같은 통일 3대 원칙 등 남북 간의 모든 합의 사항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한국의 발목을 잡는 올무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이 이번에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 사업으로 전환’했다고 새삼스러운 듯이 공표했지만, 이는 전단살포를 빌미로 하여 그동안 감춰왔던 그들의 진면목(眞面目)을 드러냈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공언한 단계별 대적 사업은 어느 수준에서 진행될 것인가?

앞서 김여정은 담화를 통해 ‘(전단살포와 관련)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연락사무소 폐지와 함께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언급한 바 있다. 일단 북한은 16일 오후 2시 49분쯤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진보정권이 대북 화해 정책의 성과사업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결과물의 폐기를 단행하고 또 예고함으로써, 심리적 압박을 가한 것이다. 또한 이미 대적 사업의 첫 단계로서 남북 간의 모든 통신선을 차단했었다. 다만, 북한은 한국 정부가 ‘대북 전단살포 금지법’을 제정하는 등 성의를 보여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면 이 수준에서 상황을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함정은 그다음에 있다. 북한은 막무가내식의 대남 협박이 성공한 것을 계기로 해서 ‘대남 길들이기’ 전략을 끊임없이 구사할 것이다. 대일·대미 관계 재정립, 주한미군 문제, 국방전력 강화 등 시비를 걸 소재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세현 전(前) 장관이 “삐라를 법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해나가고,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그런 행동을 강행할 때는 군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은 그야말로 대증적 조치에 불과하다.

또 한 가지 고려할 문제가 있다. 만일 우리 정부의 조치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북한이 과연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거나 상황을 ‘치킨게임’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무력시위나 신형 전략무기 공개 등으로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이버 공격으로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류(類)의 간접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분노를 촉발하고 군사적 충돌로 발전할 수 있는 직접적인 도발은 극도로 조심하고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겉으로는 대단히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코뿔소(무소)와 유사한 행태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코뿔소는 초원에서 다른 코뿔소와 만나게 되면, 서로가 상대방을 노려보면서 뒷걸음을 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는 순간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된 관객들은 ‘이제 전속력으로 맞부딪혀 가겠구나’하고 긴장한 눈으로 지켜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두 마리가 동시에 등을 돌려 달아난다고 한다. 과거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1976년)과 목함지뢰 사건(2015)이 발생했을 때, 한·미가 단호한 태세를 취하자 북한이 보여준 모습이기도 하다.

북한이 이런 행태를 보인 것은 다름 아니다. 1950년, 김일성은 기습적인 전면 공격으로 한국 전역을 점령하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자강도 오지까지 쫓겨간 쓰라린 경험이 있다. 이런 트라우마는 백두혈통의 DNA가 되었으며, 이후 북한의 모든 대남·대미 정책은 주한미군 철수에 집중되었다. 핵과 ICBM으로 미국을 위협하고 이를 발판으로 북미회담을 진행한 것이나, ‘반미자주화’(직접적인 미군 철수 요구), ‘반파쇼 민주화’(간접적인 미군 철수 기도) 등의 대남 선동 구호와 연방제 통일 방안까지, 이 모두가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주한미군 철수를 노린 저의에서 비롯된 통일전선 전략의 일환이다. 그리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순간, 북한은 ‘남반부 인민들이 혁명기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강변하면서 전면 남침을 감행할 것이다. 이른바 「통일대전(統一大戰)」이다. 그런데 아직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결정적 시기’가 조성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 어쭙잖은 행동을 취했다가 군사적 충돌로 이어진다면, 주한미군 철수 및 감축설이 나오는 등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한미 연합방위 태세가 다시 공고해지고, 더욱이 그동안 느슨했던 한국 국민의 안보 의식까지 재무장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노력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이 충격적인 도발은 자제하리라는 판단의 근거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권에서는 –북한의 저의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생략한 채- 앞장서서 국민의 불안을 조성하고 이를 전단살포를 제지하는 근거로 삼으려 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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