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개정과 북한 주민의 삶②] 시장과 개인 재산에 ‘국가 몫’ 매긴다

<편집자주>
최근의 헌법 개정은 북한 사회 전반에 새로운 변수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내부 취재를 통해 당국의 제도적 선언이 실제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그 실태를 연속 추적해 보도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4년 2월 10일 여맹일꾼들과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 참가자들이 평양 전위거리 건설장과 화성지구 2단계 1만세대 살림집 건설장에 지원물자를 제공한 사실을 조명하며 애국심을 독려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의 한 시장에서 매대 두 칸을 사용하는 상인 A씨는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달 내야 할 돈부터 계산한다”고 털어놨다. 매대 한 칸당 하루 3000~5000원의 시장관리세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즉, A씨가 한 달에 25일 동안 매대 두 칸에서 장사한다면 내야 하는 시장관리세만 15만~25만 원에 달하는 셈이다.

시장관리세는 시장 상인들이 공식적으로 내야 하는 돈이다. 하지만 이것만 낸다고 마음 놓고 장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취급 품목과 장사 규모에 따라 시장 담당 안전원에게 매달 15~20달러 정도의 뇌물을 건네야 단속을 피할 수 있다. 시장관리세와 뇌물은 성격이 다르지만 상인들에게는 모두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다.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은 “과거에는 ‘세금 없는 나라’라고 노래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주민들은 자신들이 내는 돈을 각종 부담금으로 생각하고 국가가 강제로 가져가는 돈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헌법서 ‘세금 없는 나라’ 삭제…무세금 원칙 사실상 폐기

북한은 1974년 세금 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고 선포한 뒤 ‘세계에서 유일한 세금 없는 나라’를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제도로 선전해 왔다.

그러나 2026년 3월 개정된 북한 헌법에서는 기존 제25조에 있던 ‘세금이 없어진 우리나라’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또 국가가 모든 근로자에게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준다는 문구도 사라졌다. 대신 개정 헌법에는 국가가 주민들에게 유복하고 문명한 생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가가 주민 생활을 직접 보장한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것이 구시대적인 표현을 정비하는 차원을 넘어, 주민을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에 적극적으로 동원하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세금 없는 나라라는 표현을 삭제한 데는 구시대적이고 실효성이 없어진 문구를 정비한 측면도 있다”면서도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이 강화되면서 이용료와 사용료 등의 명목으로 주민과 경제주체에게 더 많은 납부를 요구하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헌법에서 ‘세금 없는 나라’를 삭제한 것을 현실과 맞지 않는 선전 문구의 정리로만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 이상 무세금 국가라는 원칙을 유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일반적인 의미의 소득세나 재산세를 전면 도입했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시장과 개인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소득과 재산에 국가가 공개적이고 정기적으로 부담금을 부과할 수 있는 정치적·제도적 길을 열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앞으로 납부 의무자·부과 대상·산정기준·징수 절차 등을 규정한 후속 법령이 마련될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정작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헌법 개정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세금 없는 나라’라는 말이 주민들에게 통하지 않게 된 지도 오래됐다”며 “헌법에서 표현이 삭제됐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미 실제 생활에서 국가에 정기적으로 돈과 물자를 내고 있어, 현실에 뒤따른 헌법 개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세대 월 3~6만 원…곳곳에서 내려오는 부담금

데일리NK AND센터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서는 인민반과 직장, 학교, 근로단체를 통해 다양한 부담금이 부과되고 있다. 인민반에서는 개인부담금을 걷고, 직장에서는 작업반이나 당·근로단체 조직별로 돈과 물자를 요구한다. 가족 중 학생이 있으면 학교 지원금도 내야 한다. 이 밖에도 군부대 위문금, 농촌 모내기 지원금, 수해복구 지원금, 건설돌격대 지원금 등 특정 사업이 제기될 때마다 캠페인성 과제가 내려온다.

특정 지역의 한 세대가 정기적으로 내는 부담금은 월평균 3~6만 원 정도로 알려졌다. 적게 내는 세대는 1만 원 안팎이지만 많게는 10만 원까지 낸다고 한다. 건설이나 인민군, 수해복구 지원 과제가 추가되면 실제 부담은 더 커진다. 그러나 국가가 주는 월급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주민들은 장사, 개인 생산, 운송 등 별도의 경제활동을 통해 생활비와 부담금을 동시에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부담금은 특히 피하기 어렵다. 학생이 해마다 내야 하는 ‘꼬마계획’ 자금 2만 원과 토끼가죽 세 장을 마련하지 못하면 생활총화나 연말총화에서 공개적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겨울철에는 난로 설치비와 연료비 명목으로 한 사람당 약 10만 원을 부담시키기도 한다. 파비닐과 파지, 파동, 파알루미늄 등 유휴자재 과제를 현금으로 대신 내려면 한 달에 약 3만 원이 든다고 한다. 주민에게는 부담금이지만 국가기관에는 운영비와 자재 구입비를 확보하는 재정 수단인 셈이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북한은 이러한 납부 체계를 자본주의 세금과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주장할 것”이라면서 “국가가 개인과 단체를 보호하고 배려하기 때문에 그 대가를 가져간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이다”고 말했다.

노동자는 8·3돈, 동원 면제하려면 돈을 따로 내야

직장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다른 경제활동을 하려면 직장에 이른바 ‘8·3돈’을 내고 출근과 노동에서 사실상 제외돼야 한다. 8·3노동자가 직장에 내는 돈은 매달 약 30달러다.

하지만 8·3돈을 내더라도 모든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매달 한 사람당 공공 파철 10㎏을 바쳐야 하며, 사금이나 피마자씨, 개가죽, 토끼가죽 등 ‘충성의 외화벌이 과제’도 수행해야 한다. 이를 마련하지 못하면 현금으로 약 10만 원을 내야 한다.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여맹)원들도 각종 사회동원에서 빠지려면 돈을 내야 한다.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약 50달러를 내면 여맹 생활과 사회동원에서 일정 부분 제외될 수 있다. 돈을 내지 못하면 도로공사와 자갈 채취, 농촌지원, 건설장 지원 등에 참가해야 한다. 조기 작업에 빠지려면 한 번에 약 1만 5000원, 하루 사회동원에 불참하려면 약 5000원을 내야 한다.

결국 북한에서 돈은 국가가 요구하는 노동을 면제받는 수단이다. 돈이 없는 주민은 부담금을 자신의 노동력으로 대신해야 한다. 이 구조는 동일한 국가 과제가 주민의 경제력에 따라 금전 납부 또는 노동 제공으로 전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원 불참에 비판·제재 등 불이익이 따르고 주민이 실질적으로 거부하기 어렵다면, 그 노동이 법률에 근거한 통상적 시민 의무에 해당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러한 범위를 벗어난 동원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8조가 금지하는 강제노동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시장과 개인 재산을 새로운 ‘세원’으로

북한에서 개인 사업은 법적으로 완전하게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식당과 상점, 재봉, 운송, 부동산 중개, 건설 등 다양한 개인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개인 사업자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힘 있는 기관이나 기업소를 소속체로 둔다. 사실상 개인이 운영하는 공장이나 상점, 주유소, 세차장, 건설업체는 국가기관의 명의를 빌리고 수입 일부를 바친다.

개인 사업체를 독립된 사기업으로 공식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국가기관이나 기업소에 소속시키는 방식으로 개인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 일부를 국가와 기관의 수입원으로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 소속기관에 내는 돈은 월수입의 약 20%로, 예컨대 개인택시 운전자는 택시사업소나 자동차사업소에 매달 약 500달러를 내고, 부동산 건설업자는 아파트를 건설할 때마다 소속기관에 1000~2000달러를 바친다고 한다.

최근 개인 명의 자가용에 부과되는 부담금도 이러한 변화가 공식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개인 명의로 등록된 자가용에 차량 보유와 도로 이용에 따른 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차량 한 대당 분기별 부담금은 2025년 상반기 20달러에서 하반기 50달러로 올랐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세금도 올랐는데 때마다 뒷돈도 내야…北 자가용 보유자들 불만)

개인의 차량 소유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면서 차량 보유와 도로 이용에 국가 몫을 매기는 방식이다. 다만 차주들은 정식 부담금을 내고도 검문과 주차, 기관 출입 과정에서 교통안전원과 관리 인력에게 별도의 뒷돈을 줘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자의적인 단속과 뇌물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공식, 비공식 부담금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챗GPT, 정리=데일리NK AND센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이후 주민들에게 돈과 물자를 걷는 ‘세외부담’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3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세외부담과 불만을 조장시키는 현상을 근절하기 위한 강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했다. 또 앞서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 당시 결론에서도 “세도, 관료주의, 부정부패, 세외부담 행위와 온갖 범죄행위들을 견결히 억제하고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주민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앙은 건설 과제를 내려보내면서도 필요한 자금과 자재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다. 결국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지방 간부들은 ‘자발적 지원’, ‘개인부담금’, ‘충성의 지원물자’ 등의 이름으로 주민들에게 돈과 물자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 데일리NK는 지방공업공장 건설 과정에서 조경용 잔디와 목재 구입비 등이 주민들에게 전가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소식통은 “주민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지 말라는 1호 명령문은 휴지 조각이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지방공장 건설 완공 기한 다가올수록 주민 세외부담 가중)

이는 김정은 정권이 주민에게서 돈을 걷는 행위 자체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중앙의 통제와 회계 밖에서 지방 간부들이 자의적으로 걷는 돈을 문제 삼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2020년 제정된 북한 ‘세외부담방지법’은 사회적 과제·지원사업 등의 명목으로 주민에게 돈과 물자를 내라고 지시하거나 걷는 행위를 ‘세외부담 행위’로 규정하고, 인민반 세대별 할당 및 교육·근로단체의 비법 징수를 금지했다.

비공식 세외부담은 통제하되 시장관리세와 차량 보유세와 같은 공식 부담금은 확대하려는 것으로, 헌법에서 ‘세금 없는 나라’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시장과 개인 재산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대신 일정 비용을 징수해 국가 재정에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는 셈이다.

임 교수는 이러한 부담 체계가 앞으로 법·제도적으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현재 북한은 무역과 상업을 국가가 주도하고, 여기서 발생한 이익을 국가가 확보해 분배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내각의 통제권과 경제사업의 통일성을 강화하고 국가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관련 법제도를 계속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임 교수는 “북한은 중국식 제도를 참고해 이용료나 사용료 등의 명목으로 사실상 세금과 유사한 부담 체계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자본주의 국가의 세금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더라도, 결국 그와 유사한 제도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Previous article원료 수출에서 부가가치 가공품 수출로 전환…외화벌이 체질 개선
Next article세대별 ‘가시방망이’ 준비 지시하자 “도둑 때려잡으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