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개정과 북한 주민의 삶③] 생계 보장 못하면서 출근은 강요

<편집자주>
최근의 헌법 개정은 북한 사회 전반에 새로운 변수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내부 취재를 통해 당국의 제도적 선언이 실제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그 실태를 연속 추적해 보도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7일 “자기 단위에 깃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불멸의 영도업적’을 되새겨보는 평성합성가죽공장 종업원들”이라고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 국영기업소 노동자 A씨는 한 달에 약 25일 직장에 나간다. 하지만 실제 정상적으로 일을 하는 날은 17~20일 정도다. 전기가 끊기거나 자재가 공급되지 않아 출근하고도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날이 적지 않다. 하루 실제 작업시간도 평균 4~5시간 수준이다.

A씨가 한 달 일하고 받는 월급은 북한 돈 7만 원이다. 과거보다 크게 오른 액수이고 카드로 지급되지만, 생산이 제대로 되지 않는 달에는 한두 달씩 밀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면 노동자 B씨가 근무하는 기업소는 비교적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B씨는 교대근무를 하며 매달 5만 원의 월급을 카드로 받는다. 직장에서 간혹 옥수수나 감자 약 10㎏을 주고 한 끼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직장의 가동 상황도, 근무 방식도 서로 다르지만 A씨와 B씨가 내린 결론은 같았다. 직장 월급만으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월급으로는 요즘 쌀 1~2㎏도 사기 어렵다.”
“노임만 가지고 가족이 며칠을 버티는 것도 어렵다.”

데일리NK의 북한 시장 물가 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16일 기준 주요 도시의 쌀 1㎏ 가격은 북한 돈 4만 6800~4만 7200원이었다. 월급 5만 원이면 쌀 약 1.1㎏, 7만 원이면 약 1.5㎏을 살 수 있는 셈이다.

북한 노동자의 월급은 과거와 비교하면 대략 10~20배까지 올랐다. 명목상으로만 보면 상당한 임금 인상이다. 하지만 실제 시장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한 달 노동의 대가가 쌀 한두 에 그친다.

A씨의 가족도 직장 월급만으로 생활하지 않는다. 가족의 실제 생계는 장사나 다른 부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B씨 역시 주변에서 공식 월급만으로 생활하는 가정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결국 두 사람의 사례가 보여주는 현실은 단순하다. 북한 노동자에게 직장은 여전히 반드시 다녀야 하는 곳이지만, 가족을 먹여 살려주는 곳은 아니라는 점이다.

월급 10~20배 올랐는데 쌀 1~2㎏만 살 수 있다?…국정가격의 함정

북한은 2023년 10월부터 기관·기업소 노동자의 법정 노임을 대폭 인상했다. 데일리NK가 지난해 취재한 노동자도 기본 월급이 6만 원 수준으로 올랐다고 증언했지만, 당시에도 물가와 환율 상승 때문에 “직장에서 받는 것만으로는 살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야심차게 단행한 월급 인상…그로부터 2년, 北 노동자 체감은?)

북한의 이러한 임금 인상은 국정가격 조정과 함께 진행됐다. 2025년 9월 KDI 북한경제리뷰에 소개된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2023~2024년 국정가격과 임금을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20여 년 만에 대폭 조정했다. 식량 국정가격과 노동자 임금을 동시에 현실화함으로써 국가 유통망과 노동 체계를 적극 관리하려는 성격이 강한 조치로 분석됐다.

문제는 국가가 정하는 가격과 주민이 실제 물건을 사는 가격 사이의 간격이다.

북한에서 국정가격은 국가가 상품이나 공급물자의 가격을 정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국가 장부상으로는 월급을 올리고 국정가격에 맞춰 상품을 공급하면 노동자의 구매력이 개선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주민이 필요한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그 가격에 충분히 살 수 없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부족한 물량은 결국 시장이나 다른 유통망에서 구해야 하고, 이때 적용되는 것은 국정가격이 아니라 사실상의 시장가격이다.

최근에는 국가 유통망인 양곡판매소조차 이러한 시장 현실을 따라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데일리NK가 이달 7일 취재한 일부 지역의 경우 양곡판매소의 곡물 판매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이가 5% 이하로 좁혀진 것으로 전해졌다. 형식상 국가 공급망이지만 실제 가격은 시장 시세에 가깝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일부 양곡판매소 돈주가 실질 운영…“개인 쌀장사와 다를 게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른바 ‘국정가격의 함정’이 생긴다.

국가가 월급을 몇 배 올렸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월급으로 실제 시장에서 무엇을 얼마나 살 수 있느냐다. 월급이 기존보다 10~20배 올랐다고 하더라도 쌀값과 생활필수품 가격, 환율이 그보다 빠르게 상승한다면 노동자의 실질소득이 늘었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의 5~7만 원 월급을 시장 쌀값으로 환산하면 한 달 노동의 가치가 쌀 1~2에 불과하다는 계산은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 당국의 임금 개선 조치는 ‘노임 액수의 현실화’는 이뤘으나 ‘노임 구매력의 현실화’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소식통은 “국가에서는 노임을 많이 올려줬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기 때문에 체감이 전혀 다르다”면서 “노임이 몇 배 올랐는지가 아니라 그 돈으로 쌀을 몇 키로() 살 수 있느냐가 주민들에게는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챗GPT, 정리=데일리NK AND센터

생계 보장은 안되는 데 출근 의무는 그대로…현실을 뒤늦게 헌법에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헌법의 변화다.

북한은 올해 3월 헌법을 개정하면서 구 헌법 제29조에 있던 ‘실업을 모르는’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100% 완전고용을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근로할 권리와 노동에 따른 보수 원칙을 없앤 것은 아니다. 근로권·노동보수 원칙은 개정 헌법 제69조에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

이는 북한 당국이 ‘국가가 생계를 완전히 보장한다’는 과거의 약속에서는 한발 물러서면서도 노동자를 국가 직장 체계 안에 묶어두는 원칙은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통일연구원은 지난 5월 발간한 「2026 북한 헌법 개정 분석(2): 경제 분야」에서 이번 개정으로 국가소유와 개인소유의 범위, 국가의 경제적 역할, 노동권 등 경제 관련 조항이 조정됐다며, 북한이 ‘새로운 발전단계’에 맞게 경제관리 방법을 재조정한 것으로 평가했다.

황주희 통일연구원 연구기획부장은 본보에 “구 헌법의 ‘실업을 모르는’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은 북한의 실업과 노동력 관리·조정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노동권과 노동 의무 조항이 유지된 것은 이와 대치되는 변화가 아니라며, 향후 북한이 실업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노동권을 어떤 방식으로 조정하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이런 이중성이 나타났다.

A씨에 따르면 직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날에도 출근 자체는 해야 한다. 일부 노동자들은 출근 확인을 한 뒤 다른 일을 보기도 하지만 장기간 출근하지 않을 경우 처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별도의 돈을 내고 직장에 나가지 않는 이른바 ‘8·3’ 방식도 과거보다 허가받기가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B씨 역시 최근에는 8·3 방식으로 직장에 나오지 않는 노동자들이 과거보다 줄었으며, 비용도 이전보다 올라가고 승인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해부터 나타난 북한 당국의 8·3 노동 통제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데일리NK는 지난해 3월 북한 당국이 기업소 노동자의 8·3 행위를 줄이도록 지시하면서 기업소와 노동자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국가나 기업소가 충분한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면서도 개인 돈벌이를 위해 직장을 이탈하는 것은 막으려는 모순이 나타난다는 지적이었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8·3 노동자’ 점점 줄어…재정 부담 커진 기업소들도 한숨)

결국 노동자들은 ‘직장’과 ‘생계’라는 두 개의 경제생활을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 직장은 국가 조직에 소속돼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사회·정치적 의무를 수행하는 공간인 반면, 실제 먹고사는 문제는 가족의 장사나 부업, 소규모 거래 등 직장 밖 경제활동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A씨도 가족 생활비의 대부분은 시장 장사와 부업에서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주변에는 상품을 운반하거나 도매로 넘기는 등의 일을 통해 직장 월급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버는 주민들이 있다고 했다. 직장과 부업 수입의 비중을 체감상 ‘2 대 98’ 정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B씨 역시 주변에서 공식 월급만으로 생활하는 가정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비공식 유통이나 소규모 거래 등 여러 방식으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조직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직장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앞서 데일리NK가 지난달 북한 주민들의 소득 구조를 조사했을 때도 비슷한 양상이 확인됐다. 당시 취재에서는 공식 월급보다 시장에서 며칠 동안 벌어들이는 수입이 더 많은 사례들이 나타났고, 월급은 생계비라기보다 ‘국가 직장에 소속돼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소득’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월급 받아도 장사·부업한다…北 경제 떠받치는 ‘관리된 시장’)

북한 당국도 이런 현실을 모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2025년 초에는 기관·기업소의 월급을 카드로 지급하도록 해 국가은행을 통한 화폐 유통을 확대하려 했지만,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생활비로 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단 며칠뿐”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번에 취재한 두 노동자 역시 모두 월급을 카드로 받고 있다고 답해 해당 정책이 현장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올해 헌법에서 ‘실업을 모르는’이라는 표현이 사라진 것은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라기보다 이미 오래전에 바뀐 북한 주민의 삶을 뒤늦게 법에 반영한 것에 가깝다.

국가의 책임이 줄어든 만큼 주민의 선택권이 확대됐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직장 월급으로 생계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니 주민들은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가 정해준 직장에 출근하고 조직생활을 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생계의 책임은 점점 개인에게 넘어가고 있지만, 개인을 직장에 묶어두는 국가의 통제는 여전하다. 북한 노동자에게 이제 직장은 ‘먹여 살려주는 곳’이라기보다 ‘소속돼 있어야만 하는 곳’에 가까워지고 있다.

소식통은 “국가는 직장에 매어놓을 뿐, 생활은 개인이 책임 진지 오래됐다”면서 “이번에 헌법을 고친 것도 결국 나라가 이미 그렇게 된 현실을 뒤늦게 문서에 반영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황주희 부장은 북한이 월급 현실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기업소 경영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와 독립채산제가 확대될수록 돈을 잘 버는 기업소와 그렇지 못한 기업소의 격차가 커질 수 있다”며 “월급 현실화도 경영 여건이 좋은 기업소부터 점진적으로 이뤄질 수 있고, 향후 주민들 사이에서도 선호하는 직장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취재원 보호를 위해 지역과 소속 직장명은 언급하지 않았으며, 장사·부업 등 비공식 경제활동은 개인의 직접 행위 여부가 특정되지 않도록 가족 또는 주변 사례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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