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당국이 식량 공급과 곡물 가격 안정을 위해 운영하는 양곡판매소 가운데 상당수가 ‘돈주’에 의해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주가 운영에 참여하면서 곡물의 질이 다소 개선됐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판매 가격이 시장 시세를 따라 움직여 주민들 사이에서는 양곡판매소가 사실상 개인 곡물판매점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7일 데일리NK 평안북도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신의주시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운영되는 양곡판매소는 대형 쌀 도매상으로 활동해 온 돈주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고 있다. 이 돈주는 해당 지역 인민위원회 양정과의 지시와 관리를 받으면서 곡물을 확보해 판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양곡판매소를 운영하는 사람 중에는 원래 시장에서 크게 쌀 장사를 하던 돈주들이 많다”며 “인민위원회 양정과의 지시를 받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돈주가 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형식상 국가의 관리체계 안에 있지만 실제 곡물 조달과 판매 등 일상적인 운영은 돈주가 맡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북한 당국이 기존 대형 쌀 도매상들을 양곡판매소 운영에 끌어들인 것은 국가의 취약한 양곡 수매 역량을 보완하기 위한 측면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양곡판매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상당한 규모의 곡물을 지속해서 확보해야 하지만 국가기관이 보유한 자금과 유통망만으로 충분한 물량을 수매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쌀 도매상들은 오랜 기간 장사를 하면서 농장이나 생산자, 중간상인 등과 연결된 곡물 매입망을 구축해 놓고 있어 국가기관보다 빠르게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당국으로서는 이들을 양곡판매소 운영에 참여시켜 부족한 수매 역량을 보완하면서 별도의 유통망을 구축하지 않고도 일정한 판매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돈주들의 곡물 선별 및 관리 경험이 판매되는 곡물의 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을 활용하는 배경으로 보인다. 실제로 돈주가 양곡판매소 운영에 참여한 이후 판매되는 쌀의 질이 이전보다 다소 나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곡물 장사 경험이 많고 자체 유통망을 가진 돈주들이 물량 확보와 품질 관리에 관여하면서 상품성이 개선됐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 시장에서 활동하던 대형 곡물상들을 국가 양정체계 안으로 끌어들여 관리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돈주들이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곡물을 거래하도록 두기보다 양곡판매소라는 공식 판매망 안에서 활동하게 함으로써 당국은 곡물 유통량과 가격 흐름을 일정 부분 파악할 수 있고, 판매 과정에서 수수료나 납부금 등을 확보할 여지도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 당국은 시장의 자본과 유통망을 활용해 국가의 취약한 양곡 수매·유통 역량을 보완하는 동시에 민간 곡물 거래를 공식 관리체계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돈주들이 양곡판매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주민들이 체감하는 가격 안정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주민들 사이에서는 국가가 양곡판매소를 통해 시장에서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곡물이 거래되는 것을 견제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시장가격이 오르면 양곡판매소의 판매 가격도 함께 오르는 경우가 많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오히려 일부 시기에는 양곡판매소가 시장보다 먼저 판매 가격을 올리고 이후 시장가격이 이를 따라가는 모습도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처음에는 국가가 양곡판매소를 두는 것이 쌀값을 너무 비싸게 받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시장가격이 오르면 판매소 가격도 같이 오른다”며 “어떤 때는 판매소에서 먼저 가격을 올릴 때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양곡판매소의 곡물 가격은 통상 시장보다 다소 저렴하지만 가격 차이는 점차 좁혀지고 있다. 양곡판매소 출범 초기에는 시장과 양곡판매소의 곡물 가격이 약 30%의 차이를 보였지만 현재는 그 격차가 5% 이하로 좁혀진 것으로 파악된다.
쌀의 경우 대체로 1㎏당 500~1000원 정도 시장보다 싼 편이지만 최근처럼 곡물 가격이 크게 오르는 시기에는 오히려 양곡판매소 가격이 시장보다 비싼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소식통은 “주민들은 양곡판매소도 그냥 개인 장사꾼이 쌀을 파는 곳처럼 생각한다”며 “국가가 주민들에게 쌀을 공급한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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