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데일리NK는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보도하고자 합니다. 현재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파견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이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수단이 된 주민들이 해외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억압된 채 인권을 유린 당하는 사례들을 수집·취재해 국제사회에 전함으로써 그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상황이 변화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

북한 당국이 해외 노동자를 파견하려는 기관에 현지 거래 상대방이 실제 날인한 계약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토대로 해외 인력 파견 자격인 이른바 ‘공인’을 부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만이 아니라 실제 일감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계약서로 증명한 기관에 파견 자격을 주고 있다는 것으로, 북한 당국이 계약서와 현지 거래 상대방, 사업 내용을 직접 들여다본 뒤 어떤 기관에 사업을 맡길 것인지까지 구체적으로 선별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앞서 데일리NK 취재에서는 북한이 기존 해외 노동자 파견 계약의 수익성을 재심사하고, 러시아와 중국 등 국가별 여건에 맞춰 해외 인력 송출을 다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파악됐다. 그리고 이번에 취재된 내용은 이러한 정책이 실제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집행되는지를 보여준다.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해외 파견 자격을 받으려는 기관은 여러 건의 사업 계약서를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다만 계약서가 많다고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소식통은 “계약서를 7~8개 정도 낸다고 하면 그중 최소 한두 개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 대방이 직접 도장을 찍어온 계약서가 있어야 공인이 다시 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인’은 해당 기관이 해외 노동자를 조직·파견할 수 있도록 국가가 부여하는 일정한 자격 또는 승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북한 측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계획서나 향후 계약 가능성을 담은 문건만으로는 부족하고, 현지 거래 상대방이 실제로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확인한 계약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 당국이 확인하려는 핵심은 ‘실제로 노동자를 투입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일감을 확보했느냐’에 있는 셈이다.
무슨 일 하고 무엇을 만들어내는지까지 본다…계약서는 ‘파견 자격 심사표’
소식통은 “사람을 몇 명 쓴다는 것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면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수단으로 작업해서 어떤 결과를 내겠다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계약서에는 노동자를 몇 명 고용한다는 내용에 더해 노동자들이 현지에서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지, 어떤 설비나 수단을 이용하는지, 작업을 통해 어떤 제품이나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인지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가령 봉제업이라면 어떤 제품을 생산하고 어떤 공정을 맡는지, 수산물 가공업이라면 어떤 원료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고 무엇을 납품하는지를 담는 식이다. 이는 해외 노동자를 하나의 인력 단위로만 관리하지 않고 해당 노동력이 실제 사업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어떤 경제적 결과로 이어지는지까지 국가가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해외 사업에서 계약서를 제출하는 것은 새로운 절차가 아니다. 과거에도 파견 기관들은 해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근거로 와크나 노동자 파견을 신청해 왔다. 그러나 최근 눈에 띄는 부분은 실제 계약을 확보했는지를 토대로 해당 기관이 앞으로 해외 노동자를 파견할 자격이 있는지를 꼼꼼히 검토한다는 점이다. 계약서가 단순 증빙을 넘어 파견단체의 자격을 평가하는 심사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실체가 분명한 계약을 확보하고 사업 수행 능력을 인정받은 기관에는 공인과 인력을 내주고, 그렇지 못한 기관에는 사업을 맡기지 않는 구조가 자리 잡는 흐름으로 보인다. 이 같은 구조가 굳어진다면 해외 노동자 파견권은 특정 기관이 한번 확보한 뒤 계속 유지하는 권한이라기보다, 실제 사업 실적에 따라 국가가 다시 배분하는 자격에 가까워질 수 있다.
다만 2025년 데일리NK AND센터의 중국 내 수산물 가공공장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의 80%는 계약서에 서명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으며, 서명을 했더라도 조건을 구두로만 전달받은 경우도 있었다.
“조선(북한)에서는 계약서 같은 것 모르며 중국 공장에 들어와서 모두 계약서에 수표했지만 내용은 자세히 설명되지 않았고 서류본도 받지 못했습니다. 계약 조건은 주로 구두로 전달받았습니다.”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 증언)
계약서가 북한 당국에는 공인과 인력 배정의 심사자료로 기능하지만, 정작 노동자에게는 임금과 근로조건을 확인하고 이의를 제기할 권리의 근거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코로나 후 무역에서 쓰던 방식과 닮아…골라서 확대하는 통제
이 같은 해외 노동자 파견 사업 관리 방식은 북한이 코로나 이후 무역 부문에서 강화해 온 관리 방식과도 닮아있다.
북한은 국경 봉쇄 이후 무역을 다시 열면서 과거처럼 개별 무역회사에 자율성을 폭넓게 주기보다는 거래 상대, 품목, 수입·수출 계획 등을 확인한 뒤 와크를 부여하는 방식을 유지해 왔다. 무역을 허가하면서 ‘누가 누구와 무엇을 거래해 얼마를 벌 것인지’를 확인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특히 거래 상대의 실체와 거래 능력을 확인하고 북한 내 무역회사의 지출과 수익 구조를 들여다보면서 국가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사업인지 판단하는 움직임이 지속돼 왔다.
최근의 해외 노동자 파견 관리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상품을 거래하는 무역회사에 거래 상대방과의 사업계획을 증명하도록 했다면, 이제는 노동 인력을 보내려는 기관에도 실제 고용업체와 일감, 작업 내용과 결과를 계약서로 입증하도록 하는 것이다. 통제의 대상이 상품과 외화에서 해외에 내보낼 노동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통제가 해외 노동자 파견을 줄이려는 조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은 해외 노동자 송출을 다시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면서도 실제 일감과 계약 조건이 검증된 기관에 노동력을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파견 규모는 확대하되 어느 기관이, 어느 회사와, 어떤 사업을 하는데 사람을 보낼지 국가가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결정하는 방식이다.
외화벌이 강화 필요성이 생겼다고 해서 국가 통제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허가받은 기관과 검증된 거래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다시 말해 해외 노동자 파견에서도 ‘통제된 확대’가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식통은 “지금은 어느 회사가 사람을 쥐고 있다가 자기 마음대로 외국에 내보내는 게 아니다”면서 “대방이 확실한지, 무슨 일을 하는지, 국가에 얼마만 한 이득이 생기는지를 다 보고 위에서 노력을 내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사람도 하나의 국가 자원처럼 다루는 것”이라면서 “돈이 안 되는 데는 사람을 안 주고, 실리가 있고 국가적으로 필요한 사업에는 노력을 몰아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예지 Global Rights Compliance(네덜란드 헤이그 국제법재단, 이하 GRC) 북한 자문은 데일리NK에 “노동력을 국가가 실적과 수익성에 따라 선별·배분하는 구조는 노동자가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수익 자산으로 취급된다는 의미”라며 “노동 당사자가 계약 협상에서 배제돼 계약 단가가 올라도 그 이익이 임금이나 처우 개선으로 이어질 통로가 없다”고 지적했다.
앞으로는 ‘공인받은 기관’뿐만 아니라 계약 수행 과정 및 결과도 주목해야
이런 변화는 해외 북한 노동자 실태를 파악하는 방법에도 시사점을 준다. 전문가들은 북한 어느 기관이 해외 파견 공인을 받았는지, 공인을 받기 위해 해외 어느 업체와 계약했는지, 계약서에는 어떤 사업과 작업이 명시돼 있는지 등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계약을 근거로 파견기관이 실제 몇 명의 노동자를 배정받았는지, 이들이 현지에서 어떤 제품을 만들거나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지를 추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계약서상 작업과 실제 현장 업무가 같은지, 생산된 제품이나 작업 결과가 어디로 이어지는지까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자문은 “핵심은 북한 당국 외에 실제로 누가 수익을 얻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면서 “중개업체와 하청, 위장법인, 자금 경유 계좌까지 기관–계약 상대방–중개·하청–자금 흐름을 하나의 회로로 추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위구르 강제노동 대응에서 확립된 공급망 추적과 수입 차단 모델을 북한 노동자 문제에도 적극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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