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같은 말, 다른 의미의 첫 충격
북한이탈주민이 남한 사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맞닥뜨리는 충격적인 언어 경험 중 하나는 ‘오징어’라는 단어다. 북한에서는 ‘오징어’가 ‘낙지’로, ‘낙지’는 ‘오징어’를 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북한이탈주민이 남한 직장 동료들에게 “오늘 오징어에 소주 한잔 하자”며 낙지집으로 향할 때 동료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처럼 의미가 전혀 다른 단어가 일상에서 오해를 만들며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예상치 못한 언어 장벽으로 다가온다.
다수의 남한 사람들은 남북이 같은 한글을 사용하니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를 넘어 한 사회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담아낸다. 1945년 남북 분단 이후 각기 다른 이념이 도입되면서 교류가 단절되었고, 이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남한은 서울에서 사용하는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하였고, 북한은 평양말을 기초로 한 ‘문화어’를 정했다. 이후 남북의 언어는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많은 차이를 낳았다. 특히 북한이탈주민이 적응해야 할 언어는 단순한 발음 차이를 넘어서, 뜻이 완전히 다른 동음이의어, 발음은 다르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 이형어, 급변하는 남한의 외래어와 신조어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러한 언어 차이는 단순히 소통의 불편을 넘어서,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체성과 심리적 안정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본 칼럼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면서 경험하는 언어 차이의 구체적인 사례와 그로 인한 정착 과정의 어려움을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 언어의 미로 속에 갇힌 북한이탈주민의 일상
동음이의어, 첫 번째 함정
북한이탈주민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부분 중 하나는 ‘동음이의어’다. ‘봉사’라는 단어는 남한에서는 ‘자원봉사’를 의미하는데 북한은 ‘서비스’를 뜻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탈주민이 “우리 가게는 봉사가 좋아요”라고 말하면 남한 사람들은 “그 가게에서 자원봉사를 하냐?”라며 오해하기 쉽다.
‘동지’라는 단어도 북한에서는 투쟁의 대오에서 같은 뜻을 가진 싸우는 혁명가라는 뜻하지만, 남한에서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해 때때로 오해를 일으킨다. 이처럼 발음은 같지만, 의미가 다른 단어들은 북한이탈주민과 남한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의 장벽을 만든다.
이형어, 발음은 다르지만 같은 의미
발음과 표현이 다르지만 의미가 같은 단어들도 북한이탈주민 적응의 큰 걸림돌이다. 북한에서 ‘강냉이’라 부르는 옥수수는 남한에서 ‘옥수수’로 불린다. ‘사탕가루’는 ‘설탕’, ‘랭동기’는 ‘냉장고’, ‘손전화’는 ‘핸드폰’이라는 식이다. 이처럼 같은 물건을 두고 전혀 다른 이름이 붙어 있으면, 북한이탈주민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게 무슨 말이지?’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대화에 소극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외래어와 신조어, 이해의 벽
북한과 달리 남한 사회는 IT, 금융, 문화 전반에 걸쳐 외래어가 일상화되어 있다. ‘컴퓨터’, ‘카페’, ‘인터넷’ 같은 단어는 북한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에 처음 접하는 북한이탈주민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특히 젊은 세대가 즐겨 쓰는 ‘갓생’(부지런하고 계획적인 삶), ‘플렉스’(과시적 소비), ‘당근하다’(중고거래 앱 이용) 같은 신조어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이런 단어들은 단순히 어휘 차이를 넘어서, 소속감과 문화적 일체감을 결정짓는 ‘사회적 코드’가 된다. 북한이탈주민은 이러한 코드를 몰라 소외감을 느끼고, 대화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심리적 부담과 사회적 영향
이 모든 언어 차이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 때문에 말수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말 한마디 때문에 자신이 ‘다르다’는 인식을 강화하며, 자존감 저하와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진다.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에서 오랜 시간 익숙했던 말투와 단어를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도 받는다. 남한 사회에서 자신의 언어가 ‘틀렸다’고 여겨지는 경험은 정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동시에 남한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이 이 문제를 악화키는 경우가 다소 발생한다.
결론: 실질적 지원과 상호 이해가 필요한 언어 적응과 통합의 길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한 사회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이 남한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언어 차이를 좁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동음이의어와 이형어, 외래어 등 남북 언어 차이를 반영한 맞춤형 언어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생활 속 자주 쓰이는 단어와 표현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 실생활 대화 훈련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이 남한 사회에 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둘째, 남한 사회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북한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학교, 직장, 지역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과의 소통과 협력을 촉진하는 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도입해 서로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남북 언어 차이 문제는 통일을 대비하는 중요한 사회 통합 과제로 인식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일 언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 언어를 비교·연구하는 전문 기관을 확대하고, 표준어 개선과 함께 통일 시대에 대비한 언어 통합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언어 적응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 개인의 심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상담과 지원 프로그램도 병행해야 한다. 언어 차이로 인한 소외감과 자존감 저하를 예방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는 맞춤형 지원이 뒷받침될 때,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 정착과 더불어 남북한 사회 통합도 현실에 가까워질 것이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집필 작업을 시작한 겨레말큰사전은 현재까지 남북 집필 원고 12만 5000여 개 단어에 대해 1차 합의를 진행했지만, 현재 2016년 남북 관계 악화 이후로 편찬 작업이 중단된 상황이다.
그나마 언어는 남북이 가진 가장 큰 공통점이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문화의 다리다. 남과 북이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통합의 길이 열릴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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