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합] 탈북민을 통일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

통일부가 14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제3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사진=통일부 제공

Ⅰ. 서론: 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을 놓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은 오랫동안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남북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 왔다. 통일교육, 북한인권, 남북교류, 정착지원 등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면서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제도 역시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실제로 초기 정착지원, 취업지원, 교육지원, 의료지원 등은 과거에 비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고, 많은 탈북민이 대한민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책은 대부분 하나의 전제를 두고 있었다. 탈북민은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대상이라는 인식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지금도 필요하다. 북한을 떠나 낯선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으며, 국가가 일정 기간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대한민국에서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을 살아온 탈북민까지 여전히 ‘지원 대상’이라는 틀 안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며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탈북민을 언제까지 정책의 수혜자로만 인식할 것인가.

최근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공식화하고 헌법 개정을 통해 통일 관련 표현을 삭제하는 등 남북관계를 설명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 역시 통일정책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통일정책을 재설계하는 과정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자산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바로 북한을 직접 경험했고, 동시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아가고 있는 탈북민들이다.

통일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통일정책 역시 사람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이제는 탈북민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정책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이 가진 가장 중요한 통일역량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Ⅱ. 본론

1. 탈북민은 대한민국이 가진 가장 현실적인 북한 연구 자산이다

북한을 이해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위성사진을 분석하고, 북한의 공개매체를 연구하며, 국제기구와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검토하는 일은 모두 중요한 연구 방법이다. 정부와 학계 역시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북한의 정치·경제·사회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사회를 직접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을 대신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탈북민은 북한의 정치체제뿐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문화, 시장화의 확산, 지방과 평양의 차이, 주민 의식의 변화 등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다. 특히 최근 북한 내부 분위기 변화나 주민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도 탈북민의 경험은 중요한 정책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와 국책연구기관도 탈북민 면담과 증언을 북한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탈북민 개인의 경험을 북한 전체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출신 지역과 사회적 배경, 탈북 시기, 생활환경에 따라 경험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탈북민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현재 탈북민의 경험은 대부분 ‘증언’이나 ‘강연’ 수준에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을 설명하는 강사로는 활용하지만, 정책을 설계하는 전문가로는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탈북민이 정착해 살아가는 국가다. 이는 단순히 정착지원의 대상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북한을 가장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산을 단순한 복지정책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면 국가적 손실이다. 이제는 탈북민을 대한민국의 중요한 정책 자산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 이제는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공동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탈북민을 정책 자산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히 토론회에 탈북민을 초청하거나 간담회를 여는 수준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구조 자체에 탈북민의 경험과 전문성을 반영하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탈북민 정책참여의 제도화’이다. 현재 통일부와 북한 관련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에는 통일교육, 북한인권, 사회통합, 정착지원 등을 논의하는 다양한 위원회와 자문기구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탈북민의 참여는 기관장의 판단이나 필요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위원회에는 참여하지만, 어떤 위원회에는 전혀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는 이러한 방식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탈북민과 직접 관련된 정책을 논의하는 위원회라면 운영지침 등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탈북민 참여를 원칙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특정 집단에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 정책에 장애인이 참여하고, 청년 정책에 청년이 참여하는 것처럼 정책 당사자의 경험을 제도적으로 반영하자는 것이다.

정책은 결국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당사자의 경험이 빠진 정책은 현장과 괴리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다양한 경험이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반영된다면 정책의 현실성과 실행력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무엇보다 탈북민을 정책의 공동 설계자로 인정하는 것은 단순한 참여 확대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탈북민을 더 이상 ‘지원받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동등한 국민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갖는다.

통일부가 14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제3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사진=통일부 제공

3. 이제는 ‘강사’가 아니라 ‘정책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탈북민을 단순한 경험 전달자가 아니라 정책을 설계하는 전문가로 육성하는 것이다. 현재 정부와 공공기관은 탈북민을 통일교육 강사나 북한 이해 교육 강사로 양성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고 통일교육의 현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제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정책이 ‘북한을 설명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북한 정책을 설계하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예를 들어 통일부와 하나재단, 국책연구기관, 대학이 협력하여 ‘탈북민 정책전문가 과정’을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단순한 강의 기법이 아니라 정책분석, 입법과정, 행정절차, 예산 이해, 정책평가, 연구방법론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교육을 이수한 탈북민은 정부위원회 위원, 국회 정책자문, 연구기관 연구원, 지방자치단체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탈북민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차원이 아니다. 북한을 가장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정책을 함께 설계할 때 대한민국의 대북정책과 통일정책 역시 현실성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탈북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탈북민과 함께 만드는 정책’으로 발전해야 한다.

4. 권리와 책임을 함께하는 시민모델이 필요하다

탈북민을 정책의 공동 설계자로 세우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권리와 책임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탈북민에게 정착지원과 교육, 의료, 취업 등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헌법적 가치와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정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역할도 자연스럽게 확대될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법적 의무를 새롭게 부과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탈북민에게 또 다른 부담을 지우자는 주장도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탈북민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예를 들어 일정한 교육을 이수한 탈북민이 후배 탈북민의 멘토로 활동하거나,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통일교육에 참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사회통합 사업이나 북한인권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활동을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공공활동 경력이나 사회공헌 실적으로 인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탈북민은 더 이상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적극적인 시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나아가 정부는 새로운 북한 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 ‘탈북민 정책검토 절차’를 운영할 필요도 있다.

환경영향평가나 규제영향분석처럼 제도를 새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육이나 북한인권 정책, 정착지원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다양한 배경의 탈북민 전문가들이 정책의 현실성과 실행 가능성을 검토하는 절차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북한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의견이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반영된다면 시행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정책의 실효성도 높일 수 있다. 정책은 전문가만의 영역도 아니고, 당사자만의 영역도 아니다. 전문성과 경험이 함께 만날 때 비로소 좋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Ⅲ. 결론 : 이제는 탈북민과 함께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오랜 과정이며, 결국 사람을 준비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통일정책 역시 사람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탈북민을 얼마나 잘 지원할 것인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탈북민을 얼마나 지원할 것인가를 넘어 탈북민과 함께 대한민국의 통일역량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탈북민은 북한을 가장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들의 경험은 단순한 개인의 이력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보유한 중요한 정책 자산이며 통일 자산이다.

이제는 탈북민을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공동 설계자로 세우는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 정책 참여를 제도화하고, 정책전문가를 육성하며,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참여 모델을 확대하는 것은 특정 집단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 대한민국 통일정책의 현실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다.

최근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공식화하고 헌법까지 개정하며 남북관계를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한반도의 현실이 변화하고 있다면 대한민국의 통일정책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

그 변화의 출발점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탈북민을 더 이상 보호와 지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대한민국 통일정책을 함께 만들어갈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변화하는 한반도 시대에 대한민국 통일정책이 새롭게 시작해야 할 첫걸음일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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