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서론: 평화라는 좋은 말이 현실을 가려서는 안 된다
오는 9월 11일부터 통일부가 처음으로 ‘평화바람주간’을 연다. “내가 바라는 평화, 한반도의 평화 바람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DMZ 평화걷기를 비롯해 국민 참여와 소통, 학술행사 등이 11일간 이어진다. 정부는 그동안 각 기관과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해 온 평화 관련 행사를 한 기간에 집중해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평화는 좋은 말이다. 누구도 전쟁보다 평화를 반대하지 않는다. 남북이 충돌하는 것보다 공존하는 것이 낫고, 군사적 긴장보다 대화가 낫다. 국민이 한반도의 평화를 생각하고 청년들이 남북관계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 듣기 좋은 말은 때때로 불편한 현실을 가리는 가장 편리한 언어가 되기 때문이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2026 평화·통일·민주시민교육 기본방향」은 기존 통일교육의 패러다임을 ‘평화·통일·민주시민교육’으로 전환했다. 핵심 목표로 평화의식과 민주시민의식의 함양을 제시했고, ‘통일의 출발점은 평화’라고 강조했다. 특히 학습자의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토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방향 자체는 의미가 있다. 과거처럼 통일의 당위성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의 북한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비판적 사고를 가르칠 수 있는가.
북한은 이미 남북관계를 설명하는 언어를 바꾸고 있다. 올해 공개된 개정 헌법에서는 기존에 존재했던 ‘북반부’, ‘조국통일’,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 등의 표현이 삭제됐다. 대한민국을 자신과 경계를 맞댄 별도의 국가로 표현하는 영토 규정도 등장했다. 김정은이 앞서 언급했던 ‘제1 적대국’과 같은 직접적인 표현까지 헌법에 담긴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기존의 민족·통일 중심 남북관계 서술에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북한은 통일을 설명하는 언어를 지우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통일교육이 평화라는 말만 더 크게 외친다면 학생들은 당연히 묻게 된다. “북한은 이제 우리와의 통일을 말하지 않는데, 우리는 왜 아직 통일을 배우는가.” 통일교육은 이 질문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질문을 피하는 순간 교육은 설득력을 잃는다. 북한의 변화를 말하지 않고 평화를 가르치는 것도, 북한의 위협만 강조하면서 통일을 말하는 것도 현실의 절반만 보여주는 교육이다. 평화바람이 불어야 한다면 더더욱 현실 위에서 불어야 한다.
Ⅱ. 본론: 통일교육이 현실의 질문을 따라가야 한다
- 보고 싶은 북한이 아니라 ‘실제 북한’을 가르쳐야 한다
통일교육에서 위험한 것은 틀린 사실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다. 보고 싶은 현실만 골라서 보여주는 것 역시 위험하다. 그동안 통일교육의 강조점은 정권과 시대에 따라 적지 않게 달라져 왔다. 어느 시기에는 북한의 위협과 안보가 앞에 놓였고, 어느 시기에는 화해와 협력이 강조됐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교류와 공동체가 부각되고, 관계가 악화되면 안보와 북한의 위협이 강조됐다.
그러나 북한은 대한민국의 정권교체 주기에 맞춰 다르게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북한은 어느 한쪽의 시각으로 재단된 북한이 아니라 지금 실제로 존재하는 북한이어야 한다. 핵무력을 강화하고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북한도 현실이고, 주민의 정보 접근을 통제하며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는 체제도 현실이다. 동시에 장마당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를 버티는 사람,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청년 역시 북한의 현실이다.
어느 한쪽만 선택하면 교육이 아니라 메시지가 된다. 북한을 현실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북한을 적으로 만드는 교육도, 북한을 이해하자며 문제를 덮는 교육도 아니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구분하고, 군사적 위협과 주민의 삶을 동시에 바라보며, 북한 당국의 주장과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원칙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인권 문제도 여기서 빠질 수 없다.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북한 주민의 삶과 자유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평화는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남북 사이에 총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한반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군사적 충돌을 막는 평화와 북한 주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문제는 서로 경쟁하는 가치가 아니다. 평화와 인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두 가지를 동시에 이야기할 수 있어야 현실적인 통일교육이다.
평화를 강조한다고 해서 북한인권을 뒤로 미룰 필요도 없고, 북한인권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남북대화를 포기할 이유도 없다. 통일교육이 정말 민주시민교육을 지향한다면, 불편한 현실일수록 더 정확하게 다뤄야 한다.
- 청년이 통일을 외면한 것인가, 우리가 설명하지 못한 것인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통일에 대한 국민의 생각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연구원의 「KINU 통일의식조사 2025」에서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9.0%였다. 2014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며 처음으로 절반 아래로 내려갔다. 같은 조사에서 평화적 공존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63.2%로 조사 이래 가장 높았고, 북한에 대한 무관심 역시 2015년 50.8%에서 2025년 68.1%까지 증가했다.
세대별 차이는 더욱 눈에 띈다. 통일 필요성에 동의한 비율은 전쟁세대에서 62.1%, 산업화세대에서 54.9%였지만 밀레니얼세대에서는 38.0%에 그쳤다. 이 숫자를 놓고 “젊은 세대가 통일에 무관심해졌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교육의 입장에서는 훨씬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 청년들이 통일을 외면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통일을 설명하지 못한 것인가.
오늘의 청년들에게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통일하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지, 북한이 두 국가를 주장하는데 왜 우리가 통일해야 하는지, 통일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면 안 되는지 묻는다.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은 통일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라는 대한민국 헌법의 원칙은 지금의 북한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도 묻는다. 어느 하나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런 질문이 통일교육의 한가운데 있어야 한다.
통일교육의 목적이 ‘통일에 찬성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면 이런 질문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미래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시민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피해서는 안 된다. 통일에 반대하는 의견도 교실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장기간의 평화공존이 더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통일비용이 너무 크다는 주장과 분단을 유지하는 데에도 비용이 발생한다는 반론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그런 토론의 끝에서 통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주입된 결론이 아니라 자신의 결론이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원칙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헌법 조항을 외우게 하는 것과 그 의미를 이해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왜 대한민국은 여전히 평화통일을 국가적 목표로 두고 있는지, 북한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이 원칙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평화공존은 통일을 대체하는 것인지 아니면 통일로 가는 과정이 될 수 있는지까지 질문해야 한다. 정답을 반복하는 교육보다 질문을 견디는 교육이 더 강하다. 지금 통일교육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힘이다.
- 정부는 모범 답안보다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통일교육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첫째, 북한의 변화를 단순한 ‘최신 동향’이 아니라 통일교육의 핵심 질문으로 다뤄야 한다. 북한 헌법에서 통일 관련 표현이 삭제됐다는 사실을 교재 한쪽에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은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가, 이것이 남북관계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한민국도 북한의 두 국가 주장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이 말하는 평화통일은 앞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까지 이어져야 한다. 현실을 교재에 ‘추가’하는 것과 현실에 맞춰 교육의 ‘질문’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둘째, 교육자료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공식 문헌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국내외 연구기관의 분석, 국제기구 자료, 북한 주민의 생활을 보여주는 객관적 자료 등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여기서 탈북민의 경험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북한에서 직접 생활한 사람의 경험은 어떤 문헌도 완전히 대신하기 어려운 자료다. 그러나 한 사람의 경험을 북한 전체의 모습으로 일반화해서도 안 된다. 평양과 지방, 계층과 세대, 성별과 탈북 시기에 따라 경험은 다르다. 그래서 오히려 여러 목소리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 탈북민의 경험과 통계, 연구자료를 교차해 보여주고 학생들이 개인적 경험과 구조적 현상을 구분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토론의 문을 더 넓혀야 한다. 정부는 올해 기본방향에서 학습자의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토론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 원칙을 실제로 시험해 볼 필요가 있다. “통일은 반드시 필요한가”, “남북이 장기간 두 국가로 공존하는 것은 가능한가”,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남북관계 개선에 방해가 되는가”,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을 어떻게 구분해서 바라봐야 하는가”, “평화공존은 통일로 가는 과정인가, 사실상 분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전략인가” 같은 질문을 실제 교실에서 자유롭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만들어야 할 것은 모범 답안이 아니다. 판단할 수 있는 자료와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것이 없다면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새로운 이름 역시 결국 또 하나의 포장에 머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평화바람주간’도 평화를 홍보하는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번 행사의 취지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확산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평화’를 묻는다면 동시에 더 어려운 질문도 던져야 한다. 북한이 두 국가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그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지, 북한의 핵무력과 평화공존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북한인권과 평화는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지, 평화공존 이후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한반도의 모습은 무엇인지까지 물어야 한다.
평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과 평화의 조건을 이해하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평화바람주간’이라는 이름에 진짜 의미가 생기려면 좋은 말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 이런 불편한 질문까지 국민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Ⅲ. 결론: 현실을 외면한 통일교육은 현실의 세대에게 외면받는다
통일교육은 오랫동안 시대마다 강조점을 달리해 왔다. 과거에는 반공과 안보가 앞섰고, 이후에는 민족공동체와 통일의 당위성이 강조됐다. 이제는 평화와 공존이라는 새로운 언어가 앞에 놓이고 있다. 시대가 달라지면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원칙만큼은 바뀌지 않아야 한다. 교육은 현실보다 먼저 결론을 정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무기와 군사적 위협을 말한다고 평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이야기한다고 남북대화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평화와 대화를 강조한다고 안보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서로 대립시키는 순간 통일교육은 다시 정치의 언어에 갇힌다. 통일교육은 오히려 그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현실을 보여줘야 한다.
통일 필요성에 동의하는 국민이 절반 아래로 내려갔고, 젊은 세대일수록 그 비율은 더 낮다. 북한에 대한 무관심은 커지고 있다. 동시에 북한은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과거와 다른 언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교육이 해야 할 일은 더 큰 목소리로 “통일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변화한 북한과 달라진 국민 인식 속에서 통일의 의미를 다시 설명하고, 국민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통일에 무관심하다고 쉽게 탓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탓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의 북한을 제대로 보여주었는가. 북한의 불편한 현실도 설명했는가. 평화와 안보를 함께 가르쳤는가.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구분했는가. 통일의 비용뿐 아니라 분단을 유지하는 비용도 생각하게 했는가. 무엇보다 “통일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했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문제는 청년의 무관심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의 통일교육이 그들의 질문보다 오래된 것일 수 있다.
평화바람은 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바람이 현실을 덮어서는 안 된다. 평화를 이야기하되 북한의 현실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통일의 가치를 설명하되 통일에 대한 의문도 허용해야 한다. 북한이 ‘통일’이라는 말을 지우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은 통일이라는 단어를 더 크게 쓰는 것이 아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통일을 이야기하는지 더 치열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 설명을 피하는 통일교육은 아무리 새로운 이름을 붙여도 오래가지 못한다. 현실을 외면한 통일교육은 결국 현실을 살아가는 세대에게 외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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