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지방정부, 北 주민 맞춤형 기기 생산에 비공식 개입

서류 위조 방조하고 민간 투자자 연결해주며 사실상 생산·유통 관여…문화 콘텐츠 통한 '친중화' 전략

북한 청년층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중국산 미디어 재생 기기 ‘MP8’. /사진=데일리NK

북한과 인접한 중국 접경 지역에서 북한 주민 맞춤형 전자기기들이 대량 생산되고 있는 데에는 중국 지방정부의 비공식적인 개입이 한몫하고 있다고 소식통이 알려왔다.

20일 데일리NK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지린성과 랴오닝성 국경도시 곳곳에는 전자부품 조립업체로 등록된 소형 무(無)상표 전자기기 공장들이 활발히 운영 중이다. 이들 공장은 SD카드 재생기, 충전식 영상기기, MP형 기기 등 북한 주민들의 수요에 맞는 미디어 기기를 맞춤형으로 생산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정식 산업 코드에 따라 부품 및 주변기기 제조업체로 등록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 주민 맞춤형 사양의 기기를 제작하고 있는데, 거래하는 북한 측 업자들의 요구대로 ‘녹화 불가’, ‘문서 TXT만 가능, ‘로고 제거’ 등의 조건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中 국경에 北 주민 맞춤형 미디어기기 생산공장 확산)

기기의 등록 명세와 실제 사양이 다른 경우도 많고, 서류상 사용처도 ‘조선(북한)’이 아니라 내수용 등으로 처리되곤 한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는 서류 위조라는 불법 행위에 해당하지만, 중국 지방정부는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산업국이나 상무국 실무자들이 ‘서류 작성 요령’과 ‘통관 유의사항’을 비공식 면담 방식으로 알려주면서, 사실상 생산과 유통을 유도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현재 이 사업을 눈감아주는 게 관행이고, 오히려 실무자들이 나서서 ‘서류는 이렇게 쓰고’, ‘통관은 이 루트로 하라’고 조용히 알려주는 구조”라면서 “지방정부는 흔적이 남기지 않는 형태로 관여하면서 사업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도와주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중국 지방정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생산을 맡는 공장에 민간 투자자를 연결해 주기도 하고, 창고 등 실질적 인프라를 제공하기도 하고 있다고 한다.

소식통은 “중국식 꽌시(關係, 일종의 인맥문화)와 더불어 행정 네트워크가 얽혀 조선용 기기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지방정부는 지시보다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시장을 추동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자연스럽게 공장 운영자들 역시 중국 지방정부를 ‘보호자이자 조력자’로 인식하고 있다. 특별한 정세 변화 이슈가 없는 한 지방정부의 비호를 받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이러한 구조를 유지하는 이유로는 일단 내수 판로가 막힌 지방의 제조업 공장들을 살리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강 건너 조선은 최고의 시장”이라는 인식이 공장은 물론 지방정부에도 퍼져 있다는 것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또 중국의 문화 콘텐츠 확산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북한 청년들이 중국 드라마나 예능에 열광하고, 중국식 생활 방식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가 중개망을 통해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반찬에서도 세대 차이가?…‘중국식 조리법‘ 따르는 北 신세대)

소식통은 “겉으로는 단순한 기기 장사일 뿐이지만, 결국은 중국 콘텐츠가 조선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념이 아니라 상품으로 문화가 확산되는 것으로 다들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중앙 정부도 대외적으로는 유엔 제재 이행, 밀수 단속 강화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접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유통 구조에 대해선 직접 개입을 피하고 방관하는 분위기다. 대외적으로는 비공식 유통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형식적 제재 이행 성과만 강조하는 선에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더욱 격화하고 외부의 압력이 더 커지는 경우, 중국은 북한을 대상으로 한 문화 콘텐츠 확산 전략을 더욱 공세적으로 구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소식통은 “공식 구조는 숨기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은 계속 키워야 한다는 전략이 중국 내부에 존재한다”며 “중국은 지금 조용히 조선을 ‘친중화’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