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말 북한 압록강 유역에서 60년 만이라고 하는 대홍수가 나서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등지에서 수천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주거지 및 농경지와 철도, 도로 등이 침수되고 유실되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수풍댐 수문을 전면 개방하고 여러 날 방류한 게 홍수 피해를 키웠고, 나아가 북한 특유의 민둥산도 산사태와 함께 피해를 가중시켰다는 분석이 있었다.
신의주를 위시한 평안북도 못지않게 양강도와 자강도에서도 지난해 피해가 컸다. 산골짝마다 사태가 난 듯 산이 무너지고 토사가 덮쳐서 마을이 통째로 휩쓸려 떠내려가는 등 피해가 심했던 것으로 보도됐었다. 이후 수해복구를 위해 신의주시 위화도 일대에 십수만 명 청년돌격대원들이 동원돼서 반년 동안 밤샘 작업 끝에 수백여 동 살림집 아파트를 4곳 섬 압록강 변에 건설했다. 올해 2월부터는 위화도·다지도에 중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에 보란 듯이 북한 최대 규모의 온실농장까지 건설하고 있다.
지난해 압록강 대홍수 이후 1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고해상 위성사진으로 수해 지역을 되돌아봤다. 신의주시 속도전 수해복구 때와는 달리 양강도 산간 오지에는 여전히 수백여 동 살림집과 마을이 사라진 채 폐허로 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오지 중 오지에 해당하는 양강도 산간지대 재난 구역은 지도자 관심에서 한참 밀려나 있는 것으로 파악된 것이다.

양강도 김형직군 압록강변 죽전리에는 지난해 여름 압록강 대홍수로 마을 60여 채 중 30여 채가 흔적 없이 사라졌고, 남은 집들도 1년 가까이 파손된 채 방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마을이 있던 자리는 모래로 뒤덮여 있고, 지붕이 사라진 채 벽체만 남은 집들도 여럿 식별된다. 김형직군의 원래 이름은 후창군이었다, 1988년 김일성 우상화 정책에 따라서 수령의 부친 이름을 따서 ‘김형직’군으로 바뀐 것이다.

김형직군 장파리에는 압록강 변에 살림집 30여 채의 아담한 마을이 있었는데, 모두 사라져 흔적도 없고 모래만 덮여 있다. 인근 밭 경작지도 유실돼 모래만 남았으며, 일대가 온통 황량한 폐허가 됐다.

김형직군 금창리에도 살림집 40~50여 채의 마을이 있었는데, 집들이 죄다 사라지고 빈터만 남았다. 대형 신축건물(40m×12m) 1동이 들어섰고 작은 건물 몇 개 동만 남았다. 특이한 것은 마을 좌측에 밭이 있는데, 땅을 갈아서 밭고랑을 만들어 놓은 것이 위성사진에서 식별된다. 수재민들은 어디로 이주시켰는지 보이진 않지만, 이곳에서 밭농사 영농 활동은 지속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수재민들을 위해 주변에 쉼터나 보호소를 조성한 시설이나 흔적 따위는 일절 보이질 않는다. 위성사진을 봤을 때, 금창리 수재민들은 대형 신축건물 1동에 임시 거주, 집단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죽전리에는 30여 호 미만의 살림집들이 대홍수로 파손된 채 방치돼 있다. 지붕이 사라지고 벽체만 남은 건물도 여러 채 식별된다. 창고로 보이는 대형 건물(28m×12m) 1동이 세워졌고, 마을 앞 경작지에는 길게 밭고랑이 그어져 있다. 밭에는 작물로 보이는 식생이 짙은 녹색으로 자라고 있다. 이러한 영농 활동 흔적으로 미루어 볼 때, 주민들이 밭농사를 지으면서 폐허가 된 집에 들어가 살거나, 일부는 신축 대형 건물에서 집단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홍수 복구에 도농격차 커
위성사진으로 살펴본 바로는 압록강 대홍수 피해를 복구하는 데에 북한의 지원과 배려가 도농 간에 격차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도시와 산골 농촌 간 지도자와 중앙당 관심과 대책이 하늘 땅만큼이나 격차가 큰 것으로 파악된 것이다. 북한은 신의주시 수해복구에 김정은의 지대한 관심과 독려 속에 수십만 명 청년돌격대원을 동원해서 수백여 동 고층 아파트를 속도전식으로 급하게 서둘러 지었다. 반면, 양강도 산골 오지는 대홍수로 사라진 마을이 1년이 지나도록 당시 피해 모습 그대로 여전히 방치돼 있고, 아직도 복구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신의주는 북-중 무역의 80%를 차지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도시이며, 북한 내에서 평양 다음으로 2~3위 정도로 잘 사는 곳으로 평가받는다. 다른 어느 도시보다 신의주는 시장화가 잘돼 있고, 주민 대부분이 중국과의 무역과 이와 관련된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산다. 반면, 양강도는 산이 높고 험준해서 북한에서 지금도 추방이나 유배지로 이용된다고 한다. 양강도는 압록강과 두만강, 2개의 강을 백두산을 경계로 양쪽에 끼고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한반도 최악의 혹한 지대로 유명하며. 오지 중의 오지인 양강도에서 압록강 대홍수 사태 구역은 지도자와 중앙당 관심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고해상 위성사진에서 재해 지역 일대에 수재민 보호시설은커녕 복구 기미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잘사는 도시 신의주와는 천지 차이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