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서 4월 15일은 태양절로 기념하는 국가 명절이다. 김일성이 태어난 날을 기념한다며 4월은 그야말로 떠들썩한 날들로 채워진다. 그런데 유독 2025년 4월 15일은 예년과는 좀 다르게 기록될 것 같다. 이날 주인공은 김일성이 아닌 바로 김정은과 김주애였기 때문이다. 4월 15일 저녁 7시 30분, 평양에서 화성지구 3단계 1만 세대 살림집 준공식이 열렸다. 김정은과 김주애가 참석한 이날 행사는 분명 태양절로 기념하는 4월 15일이었고, 시간은 저녁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태양절로 기념하는 날의 해는 저물었고,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연출된 축하 무대의 주인공은 김정은이었다. 혁명의 수도라 불리는 평양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변모시키고’,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살림집을 완성했다는 김정은의 치적을 부각하기 위한 연출이 이어졌다. 김정은 시대 음악공연을 대표하는 김옥주의 독무대는 물론, 화려한 축포와 건물에 설치된 조명은 축제 분위기를 고조했다.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의 구호는 김일성이 아닌 김정은을 찬양했다.
태양절이라는 명칭 대신 4월의 명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등 일명 김정은의 선대 지우기가 이루어졌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이러한 북한 당국의 의도를 선대 지우기로만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축하공연에서 김옥주의 독창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를 부를 때 놀랍게도 김정은은 뒷짐을 졌다. 카메라의 초점은 의도적으로 김정은이 뒷짐을 쥔 모습을 비추기라도 하듯, 김정은의 정면이 아닌 뒷모습을 비추었다. 국가(國歌)를 부를 때 뒷짐을 쥔다는 것은 국가의 권위를 넘어서는 김정은의 절대적 권력을 보여주는 행위다. 만약 한국에서 애국가를 부를 때 대통령이 뒷짐을 쥔 모습을 상상해 보면, 김정은의 이러한 행동이 얼마나 권위의 상징성을 나타내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바로 뒷짐을 쥔 김정은의 모습에서 김일성이 오버랩된다는 점이다. 누가 보더라도 그 모습은 김정은이 아닌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포즈였다. 김정은의 절대적 권력을 내보이면서도, 동시에 김일성의 권위를 계승하는 이미지를 연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평양은 혁명 1세대, 2세대의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무엇보다 김일성의 흔적을 애써 지우면서까지 김정은의 권력을 돋우어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항일혁명정신과 조국해방전쟁(6·25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김일성의 혁명과업을 김정은이 그대로 이어감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자리에 김주애가 함께 등장한 점도 주목된다. 김일성의 권위가 김정은에게 그리고 김정은의 다음 세대에까지 승계됨을 자연스럽게 각인시키는 장면이었다.
이날 준공식장에서 열린 축하 무대에서는 ‘나의 정든 수도 평양’이라는 신곡이 연주되었다. 이 노래의 가사 중 ‘어머니의 품’이라는 부분에서 카메라는 김주애를 집중 조명한다. 4대 세습의 후계자로 김주애를 보기보다는 김정은의 절대적 권위와 권력의 승계를 부각하면서 오히려 김정은의 절대적 권위를 강조하는 무대에서 김주애의 배역은 조연으로 충분하다.
북한에서 최대 명절로 꼽는 태양절 행사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개최했다는 점은 분명 북한 내부의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선대 지우기와 김일성의 후광 사이에서 속도 조절을 하는 김정은의 다음 행보가 어떤 기획과 연출로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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