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김정은 목숨으로 사수’ 선전구호판을 보며

백령도 해안가에서 발견된 북한 목선 선전판.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지난주 백령도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북한과 인접한 서해5도 해안가에는 북한 생활 쓰레기가 떠밀려 옵니다. 안타깝게도 북한에 갈 수도 없고, 북한 상품을 자유롭게 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북한 상품 포장재는 북한을 연구하는 또 다른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실제 사용했던 흔적들이라는 점에서 최근 내부 상황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코로나19가 한참 유행할 때, 북한에서 떠밀려 온 쓰레기는 주로 소독약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2022년 방역대전 승리의 해를 선포한 이후부터 해안가에서 소독약 포장재는 아예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 상품 포장재를 보면 생산공장, 생산년도, 주원료 등의 일반적인 사항은 물론 산업디자인 차원에서 제품의 상표, 디자인 등을 분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아주 특이한 걸 하나 주울 수 있었습니다.

바로 북한 목선에 달려있는 선전판입니다.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빨간색 글귀가 선명히 쓰여 있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서해안과 동해안에서 북한 생활 쓰레기를 수천 점 주우면서 이번처럼 선전구호판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해안가에서 선전판을 발견했을 때의 신기함과 기쁨(?)도 잠시,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나무판은 제가 러시아 하산 해안가에서 발견했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바로 난파된 북한 목선에 부착되었던 것이지요. 북한에서 어로 활동은 반드시 허가받은 인원과 군인들이 주로 작업을 합니다. 열악한 목선을 타고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러시아 해안가에서 발견한 난파된 북한 목선의 선전판 흔적(빨간 원).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제가 방문했던 러시아 극동지역 해안가는 ‘북한 배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난파된 북한 목선의 흔적이 많았습니다. 김정은은 외화벌이를 위해 수산사업소의 어로 활동을 독려하며 그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습니다. 변변한 장비 하나 없이 열악한 목선에 의지하여 고기잡이에 나서는 북한 어민들의 사고 소식은 매년 겨울이면 멀리 일본해에 난파된 소식으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난파된 배는 아니지만 그 부속품 일부를 백령도 해안가에서 발견하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 목선에 올랐던 수많은 북한 어민들이 풍랑과 거센 바다에서 벌였을 사투가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목선을 타고 탈북을 시도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북한 어민의 흔적을 바라보면 오직 그 누군가 제발 살아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단의 바다는 한 길로 흐르지 못하고, 생사의 갈림길이 되어 오늘도 소용돌이칩니다. 언제가 되어야 저 바다를 하나로 이을 수 있을는지요. ‘위대한 김정은을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선전구호 속에 감춰진 북한 주민들의 절규가 들려옵니다. 악랄한 독재자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저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인권 개선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