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군단 파병 소식 화두되자 ‘옛 기억’ 떠올리는 국경 주민들

코로나 봉쇄 당시 악랄하게 굴었던 폭풍군단 상기…일부는 “국가가 살인마 만든 것” 비난하기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월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1일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무력훈련기지를 현지 시찰하고 전투원들의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폭풍군단(11군단)의 러시아 파병 소식을 전해 들은 북한 국경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미묘하게 엇갈린다. 젊은 군인들이 사지로 끌려간 데 안타까워 하면서도 코로나 봉쇄 때 국경에 투입돼 악랄하게 굴었던 모습을 상기하면서 냉정함을 보이기도 하고 있다.

4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북중 국경 지역에서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소식이 화두가 되고 있다. 국가 밀수를 주도하는 무역 관련 간부나 국경경비대를 중심으로 ‘폭풍군단이 로씨야(러시아)로 싸우러 갔다’, ‘전장에 투입돼서 많이 죽었다더라’라는 등의 소문이 퍼진 상태다.

이런 가운데 함경북도, 양강도, 자강도, 평안북도 국경 지역에 폭풍군단 병력이 파견됐던 코로나 봉쇄 때를 회고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바이러스 차단을 명목으로 국경 봉쇄를 강화하며 실탄 사격까지 서슴지 않았던 그들로 인해 큰 공포를 느낀 국경 주민들은 ‘가차 없이 사람도 죽이는 살인마 군대’, ‘감정이 없는 기계’라며 폭풍군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2022년 겨울 함경북도 회령에서는 잠시 외출 나온 폭풍군단 군인이 젊은이들에게 끌려가 모두매(뭇매)를 맞은 사건도 있었다”면서 “엄격한 통제를 담당했던 폭풍군단과 국경 주민들 간의 갈등의 골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말로는 ‘군민(軍民) 일치’를 외치는 북한 당국이 실제로는 군민 갈등을 부추기는 주범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경 봉쇄 임무를 주고 실탄 사격을 지시한 게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북한 당국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2022년 8월 중순 양강도에서는 주민들에게 무자비하게 실탄을 쏘아 댔던 폭풍군단 군인을 치하하는 행사도 열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주민 겨냥해 주자비한 총격 가한 폭풍군단 군인들이 포상을?)

현재도 일부 국경 주민들은 “정부가 인두겁을 쓴 살인마를 만든 것”이라며 국가를 비난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한다.

소식통은 “폭풍군단을 경험한 국경 연선 주민들은 그들이 철저히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안다”면서 “이번에 로씨야 전쟁에 투입됐다는 소식에도 ‘총알받이 아니겠냐’며 혀를 차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몇몇 주민들은 “로씨야 전장에서도 약탈을 하는 것 아니냐”는 뼈 있는 농담을 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풍군단이 코로나 봉쇄 때 국경 지역 주민들의 살림집에 대문에 못을 박아 놓고 창고를 털어갔던 사건들을 기억하고 하는 말이다.

소식통은 “창고 김치는 물론 외부 우리에 있던 돼지, 개, 닭까지 훔쳐 간 부대에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 있다”면서 “혁명군대가 인민을 약탈하는 군대가 된 지 오래니, 밖에서까지 못된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비꼬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폭풍군단이 주민들을 못살게 굴어도 국가에서는 사건을 축소하거나 해당 병력을 은밀히 교체하는 방식으로만 대처했다”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됐기 때문에 폭풍군단에 좋은 인식이 만들어질 리가 없다”고 꼬집었다.

한편, 북한 국경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에 파견된 폭풍군단 군인들이 탈영이나 탈북 등 이탈 행위를 선택할 가능성도 높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소식통은 “국경 봉쇄 때 주민들과 함께 밀수 작업을 하는 폭풍군단 군인들도 적지 않았다”면서 “이를 기억하고 있는 주민들은 ‘그들의 기강이 그렇게 높지 않다’, ‘전쟁의 현실을 좀 깨달으면 어떤 게 더 이득이 될지 고민이 커지게 될 것’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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