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자유와 평화, 그리고 통일은 한몸(一體)이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9일 “통일을 하지 말자. 서로 간섭없이 평화를 구축하는 데 힘쓰자. 북한을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한 헌법 3조를 개정하자. 국가보안법과 통일부를 폐지하자”는 골자의 주장을 펼친 이후 그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학 시절 전대협 의장으로서 이른바 ‘통일의 꽃’ 임수경을 평양에 밀입북(1989년)시켰으며, 공직 및 정치활동 시기에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 등의 직함을 가지고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 분야의 선봉장 역할을 수행했고, 특히 2019년 정치은퇴를 선언할 때는 앞으로 통일운동에 더욱 매진해 나갈 것임을 천명한 인물이기에 과연 그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놀라운 변신이 아닐 수 없다. 순진한 것일까, 전략전술적 변화일까? 아니면 친북 본색을 여실히 드러낸 것일까? 임종석의 메시지는 단순명료하다. “김정은이 서로 간섭없이 따로 살기를 원하니(시대 환경이 변했으니 먼 미래인 통일은 유보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별개 국가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게 현실적인 방도다”라는 것인데, 과연 그런 세상이 동화 속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가능할까?

주목해야 할 점은 발언의 시기·방식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석한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광주)에서의 기조연설이기 때문이다. 단순 해프닝으로 볼 수가 없으며,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게 합리적 추론일 것이다. 여당과 우파 인사들은 물론 자신의 소속 정당 인사들조차도 비판대열에 가세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련 주장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올해 초 김정은이 민족과 통일을 전면 부정하는 ‘적대적 2개국가론’을 주창한 이후 거의 멘붕에 가까운 혼미상을 보여왔던 세력들의 출구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북한이 핵·미사일을 비롯해 온갖 도발을 해도 입만 열면 ‘교류협력, 통일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치며 평생을 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은 ▲김정은의 전략전술 변화 ▲우리 사회 내 청년층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통일에 대한 무관심 분위기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8·15 통일독트린》(자유의 확산을 기조로 한 원코리아 전략) 등의 국면에서 초극약 처방을 내놓는 방식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며 여론을 이끌어나가려는 고도의 복합전략전술(적의 적은 곧 나의 친구, 괴벨스식 단순·반복 선전선동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10월 7일 헌법에 새로운 영토 규정을 삽입하고 민족, 통일 관련 용어를 삭제하기 위해 최고인민회의(우리의 국회 格)를 소집한다. 이로써 김정은의 최초 발언 이후 9개월여 만에 ‘적대적 2개국가론’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 국내외 친북세력들의 파상적인 공세가 예상되므로 김정은의 신노선에 동조하는 《투 코리아》 논리의 3가지 핵심 모순점을 짚어보며 대비하고자 한다.

헌법정신 무시

먼저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제3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제4조)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에게는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제66조)를 부여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 헌법은 분단 현실로 인해 북한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 접근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이며 ▲북한 주민들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원 코리아》는 단순한 소망이나 전략전술이 아니라, 헌법이 명령하고 있고 민족의 얼과 소망이 녹아 있는 지고의 가치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강조했듯이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민주 통일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과 소명이 이럴진대, 이른바 “남과 북이 일정 기간 동안 서로 간섭하지 말고 발전해 나가자”는 주장이 과연 현실에서 가능할까? 5000년 역사의 한민족, 세계를 리더하는 글로벌 세계인으로서 통일을 유보하면서 북녘 동포의 비참한 삶을 애써 외면하는 게 옳은 태도일까? 1000만 이산가족과 3만 4000 탈북민들의 고통은 어쩌라는 말인가? 필자는 단언한다. 이 같은 논법은 단연코 궤변이다. 얼핏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의 정치 선동 논리이다.

우리가 북한 주민들의 피폐한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내정간섭불가론’의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한민족-국가 성원으로서 당연한 관심이자 인류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투 코리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북한 주민이 아닌 독재자 편에 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70~80년대 우리 사회와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유와 진리, 시민의 권리 증진을 위한 민주화 투쟁과 언론·국제사회의 유무형적 지원을 조금이라도 곱씹어 보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발상이다.

이들은 단기적 곤궁 입장 모면과 선동을 넘어 구조(frame)를 근원적으로 변경하기 위해 현행 헌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것도 위와 같은 연장선에서 비판적으로 봐야 할 것이다.

김정은건군절맞아주애와국방성방문…임전태세유지상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건군절(조선인민군 창건일)인 지난 2월 8일 국방성을 축하 방문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의 이면 전략전술 간과

또 다른 대표적인 레토릭인 ‘평화유지 공생발전론’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국가 안전-국민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적대적 2개국가론’(투 코리아)은 단기적으로는 수세적인 분단관리 노선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핵을 기반으로 전 한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편입시키려는 노선이다. 통일이라는 단어를 ‘평정, 편입’이라는 단어로 변경하였을 뿐 《전 한반도 공산화》 대전략은 전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을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영토평정’을 국시로 정한 것은 ‘국가의 영원한 안전과 장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천만지당한 조치’이다.”(2024.2.8 김정은의 국방성 방문 연설)

“우리는 핵무기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에 대한 핵무력 건설 정책을 드팀없이 관철해 나가고 있다”.(2024.9.9 김정은의 정권 수립 기념일 연설)

이 같은 김정은의 전략전술은 바둑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먼저 3집을 지어 안정을 취한 후 상대를 공격) 계략에 비유할 수 있다. “내부가 흔들리면 핵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경제가 숨통을 트여도 전혀 소용이 없다. 일단 내부 단도리가 우선이다는 인식이다.

즉 김정은은 ▲1단계 국경 및 주민 생활 통제강화 조치에 이어 ▲2단계 조치로 한국 영상물 유포 시 최고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악법 3종 세트(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까지 제정하여 단속을 해도 외부 자유사조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자 ▲3단계 초극약처방으로 대한민국을 제1주적, 교전국화 함으로써 주민들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리려는 카드(대한민국 동경=간첩=처형)를 꺼내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같은 김정은의 태도만 봐서는 안 된다. 한편에서는 ‘핵무기의 기하급수적 확대’, ‘핵선제공격’, ‘영토완정’ 등을 강조하며 벌크업(bulk-up)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김정은과 사이좋게 지내자고 설파하는 것은 상대와 냉혹한 현실을 전혀 고려치 않은 감상주의적 접근일 뿐이다. 이 같은 주장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역대 정부의 대응처럼 무책임한 아전인수식 낙관론·구두선(口頭禪)을 넘어, 상대에게 북한 주민들을 더욱 탄압하고 우리 국민들을 다각도로 위협할 수 있는 시간과 힘을 길러줄 뿐이다. 상대는 떡 줄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는데 계속 입만 벌리고 살아가는 우둔한 행동에 비유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발언이다.

그런데 감상적 평화지상주의자들은 대화와 평화라는 구실 하에 ▲우리의 가드(guard)를 완전히 내리고 ▲북한 주민의 아픔을 방기(放棄)한 채 ▲우리 정부와 민간의 글로벌 차원에서의 온·오프라인 활동을 ‘대결 및 흡수통일 정책’로 낙인찍고 비난하는 데만 진력하고 있어 큰 문제이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억지 논리

세 번째 문제는 우리 사회 내부를 분열시키는 행위이다. 김정은의 ‘투 코리아’ 노선을 지지하는 부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북핵이나 오물풍선테러 등으로 촉발된 한반도 긴장고조의 책임을 김정은(‘핵개발과 다양한 도발’)이 아닌 윤석열 정부(‘힘에 기반을 둔 평화정책’)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8·15 통일독트린》 비난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그야말로 주객(主客)과 본말(本末)이 전도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물론 자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제기하고 있는 ‘전쟁이냐 평화냐’의 대국민 불안감 조성 논리의 허구성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홍보를 통해 국민 공감대를 확보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필자가 생각하는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다.

“평화는 개인 및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국가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이다. 평화는 대화교류협력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평상시 국방력을 강화하고 유사시에는 전쟁도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있어야 누리고 지켜나갈 수 있다. 영국의 전략가 리델 하트가 말한 것처럼 “전쟁의 목적은 전후에 보다 나은 평화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전쟁 의지를 포기한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굴종과 항복뿐이다. 비겁한 굴종이 평화는 아니다.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레토릭은 완전 허구이다. 평화는 전쟁보다 상위개념이자 지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하위개념이자 수단인 전쟁과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없다. 수단은 수단끼리 비교되어야 한다. 따라서 수단인 전쟁과 비교되는 것은 굴종과 항복이라는 수단이지 목적인 평화는 절대 아니다. 나쁜 평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사즉생 생즉사’의 정신으로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평화를 찾고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세계 곳곳의 시민들도 대결주의자-전쟁광일 뿐이다. 오히려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과 같은 인물이 이상적 평화주의자일 것이다.”(동 논리는 필자가 2024.9.27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하는 NK포럼 발제문에 포함한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김정은의 ‘적대적 2개국가론’에 동조하는 《투 코리아》 주장은 인류보편적 가치 구현, 대한민국 국익, 바람직한 한반도 미래상 등의 관점에서 수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①대한민국 헌법정신을 무시하고 ②김정은 이면 전략전술을 간과하고 ③현 정부 대북정책을 매도함으로써 의도했든 안 했든 이적(利敵)·매국(賣國) 행위로 연결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맹점이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통일은 한몸(一體)이다. 절대로 분리할 수 없으며, 실현 과정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가는 동반자이다. “평화를 위해 잠시 통일을 유보하자”는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마치 마술처럼 국민들의 눈을 잠시 속이는 것이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접근법이다. 오히려 ▲독재자 김정은에게 체제를 정비할 시간을 주는 반면에 ▲우리 사회 여론을 분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통일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을 막는 심대한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한반도는 《투 코리아》가 아닌 《원 코리아》가 정답이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그리고 그 이후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 지원 노력도 분단 고착화가 아니라 통일로 가기 위한 길이다. 개인이나 조직 생활도 결과(result)보다 중요한 게 과정(process)이다.

국가는 더하다.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야 할 길은 꼭 가야 한다. 대한민국이 북한을 상대하며 쉬운 길을 선택하여 바른 과정을 포기한다면, 독재자 김정은에게 주민 희생을 볼모로 체력을 보강할 기회를 주게 된다. 김정은의 심기와 정책 노선에 구애받지 말고 비핵화와 교류협력 호응을 계속 촉구하면서 인도적 지원, 대북 압박 등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하여 북한과의 접촉면을 계속 넓혀 나가야 한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 언젠가는 열린다.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자칫 오판하거나 실기하면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핵 인질로 삼는 것을 넘어 ‘점령·편입’까지 노릴 것이라는 점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와 국민은 ▲북한의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이 당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 대해 무한한 동경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금이 통일로 가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는 신념을 가지고 ▲튼튼한 안보와 자유, 평화, 통일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와 함께 자유와 통일의 열기를 북녘땅으로 확산시켜 나가는 노력을 더욱 치열하게 전개해 나가야 한다. ‘시불가실’(時不可失: 좋은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격언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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