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국경에서 압록강, 두만강 건너 북한의 모습을 촬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이 되었지요. 더구나 중국이 반간첩법을 시행하면서 북중 국경에서의 사진 촬영은 더욱 어려운 길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반쪽 조국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조차 쉬이 허락되지 않는 분단의 길입니다.
마침 기온이 갑자기 영하권으로 뚝 떨어지면서 시야가 탁 트인 날을 맞았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망원렌즈를 꺼내 들고 통일전망대로 향했습니다. 그나마 북한을 볼 수 있는 접경 지역에 전망대를 세워놓은 것이 큰 위안입니다. 하지만 통일전망대는 어느새 평화전망대라는 이름으로 뒤바꼈지요.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도 그 중 하나입니다. 남북한 주민들 모두 평화로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통일 없이 평화가 올 리 만무한데 지난 정권 때 통일전망대라는 명칭은 대부분 평화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달았지요. 씁쓸한 마음 한 켠에 접어두고 얼어붙은 한강 건너 북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한겨울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그렇지않아도 얼어붙은 동토의 땅을 더욱 시리게 합니다. 멀리 개성 송악산까지 한눈에 내려 보이지만 정작 한 걸음도 갈 수 없는 조국의 반쪽입니다.
선전마을로 알려진 곳에는 허름한 주택 몇 채와 논에서 일하는 북한 주민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추수가 다 끝난 황망한 벌판이 마치 지금의 황폐한 북한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마을 어귀에는 영생탑과 선전구호판 그리고 모자이크벽화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진을 확대해 보니 <위대한 김정은동지 혁명사상 만세>, <쌀로서 우리혁명을 보위하라>라는 구호가 뚜렷이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쌀로서 당을 받들자>라는 구호였는데, 당이 우리혁명으로 바뀌었네요. 김정은동지 혁명사상은 이제 북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구호인 것 같습니다. 북한의 모든 마을마다 다 있다는 문화회관 건물에는 <주체조선의 태양 김정은장군 만세>라는 구호가 붙어 있습니다.
시야가 탁 트여 산 뒤편 또 다른 마을까지 또렷이 보입니다. 마을 가운데에 학교가 있습니다. 학교 옆 산자락에는 <미래를 사랑하라>는 대형 선전구호판을 세워놓았습니다. 미래를 사랑하라…는 구호가 너무나 생뚱맞게 다가옵니다. 이제 16살밖에 되지 않은 중학생 두 명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한 북한 정권이 내세울 구호는 아닌 듯합니다. 남한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 유포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시키는 곳이지 않습니까? 그런 곳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요? 그러면서 겨우 10살이 채 넘은 자신의 딸을 미사일 발사장에 데리고 다니는 그곳에 과연 미래를 운운할 수 있을 런지요?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저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분명한 각오를 다시금 새겨 봅니다. 통일 대한민국,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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