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2024년 신년경축대공연’ 특징과 의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일 ‘2024년 신년경축대공연’이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성대히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은 매년 12월 마지막 날이면 신년경축공연을 개최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2024년 신년경축대공연을 개최했다. 2023년 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5월1일경기장에 특설무대를 설치하고 수많은 인원을 동원했다. 작년과 올해 모두 형식은 같지만 유독 이번 공연에서 주목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김정은의 권력 공고화를 위한 다양한 연출이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며 합창한 ‘세상에 부럼없어라’ 노래의 가사가 주목된다. 바로 노래 가사 중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 원수님’을 ‘우리의 아버진 김정은 원수님’으로 바꾸었다. 이 곡은 북한에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나 ‘애국가’만큼이나 비중이 크다. 60년 전에 창작된 이 곡은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곡으로, 2016년 5월 5일 ‘노동당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 사회주의의 영원한 주제가’로서 김일성상과 김정일상을 받을 정도였다. 수령과 당과 대중이 하나가 되는 대가정을 찬양하는 곡인데, 이번에 김일성이 아닌 김정은을 어버이로 공식화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즉, 단순히 아버지라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북한에서 말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하는 수령의 절대적 권위자로서 김정은을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김정은이 자신의 딸 김주애를 대동하고 다닌 이유가 후계구도보다는 아버지라는 이미지 정치를 통해 인민의 어버이라는 인식을 각인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많은 대목이다. 이 곡이 연주될 때 김정은, 리설주, 김주애 모두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한 공연이 끝나고 김정은이 관람객을 향해 인사하는 장면에서 리춘히 아나운서의 발언도 주목된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당대한 김정은 조선의 영광을 무궁토록 떨쳐가렵니다”라고 언급함으로써 김일성 조선이 아닌 김정은 조선을 공식화했다. 김정은이 당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밝힌 ‘두 개의 조선’ 발언은 김정은 조선이라는 권위를 강조하며 내부적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 있다. 남북관계 극한 대치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성해 김정은 조선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한의 극단적 대립을 통해 내부 위기 요인과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를 다지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1일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진행된 1일 ‘2024년 신년경축대공연’의 한 장면.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노래 가사에 김일성 대신 김정은을 넣었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캡처

두 번째 특징은 이번 공연에서 모란봉악단 공훈배우인 류진아의 등장이다. 조국향, 김유경 등 모란봉악단 소속 가수들이 중창으로 부른 ‘추억’이라는 노래는 지금까지 신년축하공연을 비롯해 주요 음악공연에서는 처음으로 연주된 곡이다. 현재 북한 음악공연을 대표하는 김류경, 정홍란, 현예원이 중창조로 노래를 부르면서, 이들과 하나로 합쳐지는 무대는 마치 신, 구의 조화를 이루는 듯한 장면으로 해석된다. 자연스럽게 대를 이어 간다는 이미지 정치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 번째 특징은 관행적으로 기존 신년경축공연의 서곡은 언제나 ‘설눈아 내려라’로 시작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다른 곡으로 진행되었다. ‘당을 노래하노라’라는 제목의 곡인데, 전체 14곡의 선곡 중 당과 관련한 내용은 10곡이나 된다. 특히 ‘로동당의 정책은 좋다’라는 곡은 기존 공연에서 한 번도 연주되지 않은 곡으로 당의 성과를 자랑하는 곡이 주를 이루었다.

네 번째 특징은 유독 김주애가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많았다. 김류경이 ‘우리는 당기를 사랑하네’라는 곡을 부를 때 김주애가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이때, 김정은이 김주애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후에도 김주애가 세 곡의 노래를 직접 따라 부르는 장면이 집중적으로 조명되었다.

전반적으로 이번 공연은 정찰위성 발사 성과를 자랑하고 당의 영도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작년 신년경축공연이 방역대전, 미사일 발사 등의 성과를 축하하는 무대였는데, 올해 역시 당의 성과를 찬양하는 내용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2024년 첫날 자정에 평양 하늘에 쏘아 올린 축포와 화려한 공연은 결코 북한 주민의 현재를 반영하지 않는다. 최악의 식량 위기와 국경통제의 여파로 물자 부족이 극심한 상황에서 주민들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신년경축공연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지 다시 한번 생각할 대목이다. 김정은과 나란히 앉은 김주애의 어린 웃음이 그저 씁쓸하게 보이는 건, 그들만의 독재가 바로 북한 주민의 신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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