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제와 오늘] 외국에서 차용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 호칭

북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령(首領)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수령’은 북한의 지도자, 특히 초대 지도자인 김일성의 호칭이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 이 단어는 확실히 북한과 연상되어 다른 맥락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 칼럼에서는 ‘수령’이라는 단어의 어원과 김일성은 왜 그리고, 언제 ‘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북한 정치 용어는 출처가 2개 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일반 한국어이다. 두 번째는 1940년대 중기 당시 러시아어이다. 북한은 소련이 만든 정권이기 때문이다.

1945년에 생긴 북한 정권은 몸에 주입한 이물(異物)과 비교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명확하게 조선왕국, 대한제국, 식민지 조선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국가로 설립되었지만, 1940년대 후반기 북한에서 과거를 ‘봉건, 퇴진 유물’로 보았다. 대신에 당시 소련 문화를 매우 진보적이라고 여겼고 소련을 ‘전 세계를 위한 모범국가’라고 보았다. 그래서 북한 정권은 소련을 모범으로 설립되었고 언어까지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어에 큰 영향을 받았다. 예컨대, 북한 법칙 중에 ‘XXX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사용하는 것은 적지 않다. 이는 러시아어 문장의 직역이다. 또는, 1950년대 북한군에서는 ‘동지들, 건강하십니까?’라는 매우 이상한 인사말을 사용하였다. 러시아어 ‘즈드라브스부이테, 타바리쉬’(Здравствуйте, товарищи)의 직역이었다.

마찬가지로, 북한 ‘수령’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인식하려면 이의 어원을 한국어와 러시아어에 찾아야 한다.

‘수령’이라는 단어는 역사가 매우 깊다. 발해 시대에 처음에 등장한 이 단어는 현재까지 사용해 왔고 1465년 ‘원각경언해’ 등 사료에 나타났다. 물론, 북한 정권 설립 전 ‘수령’이라는 단어는 공산주의 냄새가 전혀 없었던 일반 단어였다. ‘지도자’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1945년 전 신문을 보면,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를 영국 자유당의 ‘수령’ 또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를 나치의 ‘수령’이라고 부르는 기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 분단 이후에 ‘수령’이라는 단어 자체는 ‘공산화’되었다.

이 단어의 공산화의 이유는 물론 소련이었다. 소련에서 출판한 한국어 도서에 지도자 레닌과 스탈린을 ‘수령’이라고 불렀다. 그런 책들에 사용한 이 단어는 러시아어의 ‘보지디’(вождь)의 번역이었다. 즉, 러시아어 책은 스탈린을 ‘보지디’라고 불렀다면 한글 번역판에 이 단어를 ‘수령’이라도 번역하였다.

‘보지디’라는 단어의 역사는 소련체제보다 깊었다. 예컨대, 러시아 제국에서 황제를 ‘국가 보지디’ (державный вождь)라고 호칭하였고 제1차세계대전 러시아군 총사령관인 니콜라이 대공을 ‘최고 보지디’(верховный вождь)라고 불렀다. 1917년 초 러시아 제국은 망해 공화제 정권은 생겨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수상 또는 라브르 코르닐로프 대장을 ‘보지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측, ‘공산주의’가 아니라 ‘군사 용어’ 냄새가 있었던 단어였다.

1905년 도서 ‘러시아 국토의 국가 보지디 표트르 대제’. /사진=이휘성 국민대 책임연구원 제공

혁명 조직들은 성원들을 동원하기 위하여 ‘투쟁’, ‘전투’, ‘정권과 전쟁’ 등 군사용어를 쓴다. 그래서 당시 러시아 좌파 세력들은 ‘보지디’라는 군사용어도 사용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공산주의자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비공산주의 좌파 정당인 사회혁명당은 당수 체르노프를 ‘당의 가장 친애하는 보지디’, ‘근로 농민의 경애하는 보지디’이라고 불렀다.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지도자 플레하노프를 ‘현명한 보지디’이라고 불렀다. 즉, 다시 말해, 이 단어는 군주제 지지자, 공화제 민주주의자, 비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자도 사용하였다.

‘보지디’라는 단어는 볼셰비키당(공산당) 전용 단어가 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1917년 공산주의 혁명 다음 해인 1918년에 볼셰비키는 일당제를 세웠고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하였다. 1918~23년의 러시아 내전에 이긴 그들은 소련의 유일한 정체 세력이 되었다. 경쟁 세력들은 다 망해 ‘보지디’라고 부를 수 있는 세력은 볼셰비키뿐이었다. 물론, 볼셰비키 정권은 과거에 누군가 황제나 볼셰비키의 적들은 ‘보지디’라는 존칭을 받았던 점을 기억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보았다. 그리고 특히 1929년에 스탈린이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한 후에 소련 매체는 그를 거의 매일 ‘보지디’라고 부르기를 시작하였다. 그래서 1945년에 기준으로 소련에 ‘보지디’이라는 단어는 ‘공산권 지도자’, 즉 레닌과 스탈린의 호칭이 되었다.

1945년 소련은 동유럽과 북한을 점령한 후에 소련 위성 정권에서 ‘보지디’라는 단어는 현지 언어로 번역되었고 스탈린의 호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예컨대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의 호칭이었던 ‘퓌러’(Führer)라는 단어는 동독에서 스탈린의 호칭이 되었다.

동독 포스터 ‘자유, 민주주의,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 인류의 위대한 퓌러와 스승이신 스탈린’. /사진=이휘성 국민대 책임연구원 제공

북한에서 ‘보지디’의 번역으로 ‘수령’이라는 단어는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공산권에서 ‘보지디’, 즉 수령은 2명뿐이었다. 블라디미르 레닌과 이오시프 스탈린 제외에 누구도 ‘수령’이라고 호칭될 수 없었다. 역시 1940년대의 북한 문헌을 보면 김일성을 ‘수령’이라고 부르는 문헌을 찾을 수 없다. 당시 김일성을 일반적으로 ‘김일성 장군’이라고 호칭하였다. ‘민족의 지도자’, ‘진정한 애국자’, ‘위대한 지도자’라는 호칭도 사용했지만 ‘수령’이라는 단어는 레닌과 스탈린의 전용 존칭이었다.

‘수령’이라는 호칭 사용 자제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시 소련의 ‘인민 민주주의’ 개념이었다. 1940년대 후반기에 소련은 위성 국가 공산화 과정을 숨기기 위하여 이 국가의 정치적 제도를 ‘인민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가장(假裝)하였다. 마찬가지로 북한도 권력이 ‘공산당’이 아니라, ‘진보 세력의 연합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에서 형식상 다당제도가 유지되었고, 여당을 1946년부터 ‘공산당’ 아니라 ‘노동당’이라고 불렀다. 1949년 남북 노동당은 통합되었지만, 북한 당국은 이 사실을 1950년 7월 1일 인정하였다. 1950년 6월 30일지 노동신문은 존재하지 않았던 ‘북조선노동당’의 기관지였다.

1950년 6월 30일지 노동신문은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라고 자칭한다. /사진=이휘성 국민대 책임연구원 제공

역시 소련 매체도 김일성을 ‘김일성 동지’가 아니라 ‘김일성 선생’이라고 호칭하였다. 소련 당국을 김일성을 ‘동지’라고 처음 부른 경우는 7.27휴전 축하 전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북한에서 1950년까지 김일성에 대해 ‘수령’이라고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6.25 전쟁 발발 후 김일성은 드디어 ‘수령’이 되었다. 1950년 6월 27일에 투사신문은 이를 수령이라고 호칭하였고 조선인민군 신문에서 다음 날인 28일 ‘경애하는 수령’이라는 호칭이 나왔다. 1950년 9월 노동신문에서도 김일성을 ‘수령’이라고 부르기를 시작하였다.

노동신문, 1950년 9월 4일, 1면. 김일성을 ‘경애하는 수령’이라고 호칭한다. /사진=이휘성 국민대 책임연구원 제공

1952년 9월 19일 노동신문에 재미난 장면이 나온다. 당시만 하더라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고 ‘위대한 수령들’에 대한 글에 이 ‘위대한 수령들’이 곧 레닌, 스탈린 그리고 김일성이라고 설명하였다.

노동신문, 1952년 9월 19일, 3면. 레닌과 스탈린과 함께 김일성을 ‘위대한 수령’이라고 호칭한다. /사진=이휘성 국민대 책임연구원 제공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는 표현이 노동신문에서 처음 등장한 날은 1960년 10월 27일이었다. 아래 그림에 볼 수 있듯이 이 호칭을 도입한 글은 외국인에 대한 보도였다. 특히 김일성 시대 최고지도자의 새로운 호칭을 외국인을 통해 도입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노동신문, 1960년 10월 27일지, 4면. /사진=이휘성 국민대 책임연구원 제공

1969년 2월경 김일성에 대해 ‘경애하는 수령’이라는 호칭 사용은 필수화되었고 1970년 당 제5차 대회 후 김일성의 ‘주요 존칭’은 ‘위대한 수령’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 모두 알고 있는 표현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북한에서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1970년부터 현재 2023년까지 53년이 흘렀다. 세기 절반 이상 북한에서 김일성을 ‘위대한 수령’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호칭은 처음부터 사용되지 않았고, 호칭의 어원을 한반도가 아니라 외국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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