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가 군 관련 주요 행사에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자 국내에선 ‘김주애 후계설’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북한 후계 구도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정부 내에서도 “김주애의 4대 세습 가능성을 열어놓고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북한 고위 간부들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11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은 ‘남쪽에서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는 말에 “왜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4대까지는 (여성 지도자가) 된다 해도 5대는 성(姓)이 다르게 될 텐데 그게 말이 되겠냐”고 되물었다.
이 소식통은 이어 “후계자를 세울 때는 당연히 미래를 생각하지 않겠냐”며 “5대를 위한 4대를 세우는 게 후계”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주애의 후대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김씨 성이 아닌 다른 성을 갖게 되기 때문에 5대 세습은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자식은 무조건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하고,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북한 내부의 가부장적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기도 하다.
北, 김정은 우상화 강화에 집중…자상한 아버지 이미지 부각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이 주요 행사에 김주애를 등장시키는 것은 후계 구도를 세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대내적으로 김 위원장의 우상화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의 유일영도체제를 강화하는 단계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며 “북한 당국은 후계 구도를 세우는 작업이 아니라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진행된 제5차 어머니대회 역시 사회주의 대가정의 아버지로서 자애로운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선전·선동의 초점이 맞춰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노동신문은 대회가 끝난 후 “우리 원수님(김 위원장)처럼 다심하신 인민의 어버이가 또 어데 계시랴 하는 생각에 누구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었다”는 등 김 위원장을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로 선전하는 데 집중했다.
즉, 이번 어머니대회의 목적은 김 위원장을 사회주의 대가정의 아버지로 우상화하고 동시에 각 가정에서 어머니를 통한 사상 교육을 강화해 젊은 세대들의 사상적 이탈을 막고자 한 것이지 후계 구도 구축과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다만 북한이 김주애 등장 이후 ‘백두혈통 결사옹위’를 내세우며 김씨 가문 우상화를 시작한 것은 김주애가 딸이기 때문에 사회적 위상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고위 소식통은 “당내에서 김여정 동지를 백두혈통으로 인식하고 존귀하게 보지 않는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릴 때부터 원수님(김 위원장)과 혁명역사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냐”고 언급했다.

군 관련 행사에 주애 대동하는 이유는 ‘핵 개발 정당성’ 선전 목적
특히 김 위원장이 주애를 주요 군 관련 행사에 대동하고 있는 것은 핵 개발의 정당성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에 동행해 처음으로 북한 매체에 공개됐는데, 당시 매체는 미사일을 배경으로 김 위원장과 그의 어린 딸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진을 여러 장 게재하면서 “후대들의 밝은 웃음과 고운 꿈을 위해 평화 수호의 위력한 보검인 핵병기들을 질량적으로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미래 세대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한 지도자로, 주애는 미래 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내세운 셈이다.
지난달 21일 북한의 3차 정찰위성 발사 이후 당과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등 주요 기관 간부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기념 강연에서도 탁월한 영도력으로 우주강국 시대를 연 김 위원장의 위대성을 찬양하는 선전이 주를 이뤘을 뿐 김주애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정찰위성 발사 성공 후 간부들 모아 ‘주구장창’ 김정은 찬양)
소식통은 “최근 간부 정치학습 자료에서도 ‘핵으로 전쟁의 불구름을 없애고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주체혁명의 백년대계를 열었다’, ‘우리의 핵은 전쟁이 없는 미래를 위한 것이다’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대에 전쟁 없는 안전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핵을 고도화해야 한다는 식의 핵 개발 당위성을 대내적으로 지속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은 앞으로도 김주애를 군 관련 행사에 등장시키면서 자신들의 핵 개발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주애의 등장으로 북핵 고도화에 대한 문제 인식과 비판 대신 후계 문제로 시선이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김주애의 활동이 85% 이상 군 관련 활동에 집중되면서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한 본질적 인식이 후계 프레임으로 다소 흐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당국이 핵 관련 시험 발사에 김주애를 등장시키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기보다는 ‘주애가 후계자가 맞냐 아니냐’는 논쟁에 집중하면서 북한 당국의 의도를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홍 선임연구위원은 “핵무기 고도화가 주는 호전적 위협이 김주애에 대한 관심으로 희석되는 것이 북한 당국이 의도하는 바”라며 “후계자 논쟁이 계속될수록 북한은 이것으로 혼선을 주기 위한 대남·대미 심리전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