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의 무기외교(weapon diplomacy)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4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우주기지를 둘러보고, 회담을 한 뒤 연회에 참석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러시아와 하마스가 일으킨 전쟁은 북한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와 관련 김정은의 “북한 대외정책 제1순위는 러시아”라는 발언과 “팔레스타인을 포괄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찾으라”는 지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개 전쟁의의 및 파급영향

북한은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김씨 가계 우상화를 위한 자원배분 왜곡, 그리고 2016년 이후 군수 분야를 넘어 민간 영역으로까지 확대된 국제사회의 포괄적 대북제재로 인해 만성적 경제난과 외교적 고립에 시달려 왔다. 김정은이 2018년에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의 장(table)으로 나왔던 것은 이 같은 곤궁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9년 2월 하노이회담이 참담하게 결렬되자 비핵화 협상을 통한 안보와 경제 실리 동시 확보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내부적으로는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자력갱생 기조로 한 《정면돌파전》, 외교적으로는 《북한-중국-러시아 3각연대 강화》로 정책 노선을 전환하였다.

“핵무기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이고 핵타격수단들의 다종화를 실현하며 여러 군종에 실전배비하는 사업을 강력히 실행해야 한다…반제자주적인 나라들의 전위에서 혁명적원칙, 자주적대를 확고히 견지하면서 미국과 서방의 패권전략에 반기를 든 국가들과의 련대를 가일층 강화해나가야 한다.”(2023.9.26 최고인민회의 제14기 9차 회의 김정은 연설)

이런 가운데 지난해 2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북한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북한은 이 계기를 놓치지 않고 국제사회 왕따가 된 러시아를 향해 “러시아 군대와 한 참호에 서겠다”(2023.1.27 김여정) 등으로 연대감을 표시하며 상당한 실리를 챙겨오고 있다.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의 거부권은 북한에 엄청난 뒷배가 되었는데, 이는 유엔이 북한의 다양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도발 등에도 불구하고 2017년 11월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시 채택한 안보리 결의안 2397호를 마지막으로 단 한 건의 추가 제재결의안을 채택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지난 9월 푸틴과의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북한 대외정책 제1순위이며, 코로나19 이후 자신의 첫 번째 해외 순방국”이라고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행보는 북한-러시아 연대 강화는 물론 북한이 말하는 이른바 ‘새로운 길’, 즉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 반미 공동전선 공고화로 이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경제적 실리도 만만치 않다. 북한은 계속되는 마이너스 성장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침으로써 식량부족이 심화하는 등 체제 내부가 극도의 혼란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국가정보원은 9월 17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를 통해 “북한의 옥수수 가격이 작년 1분기 대비 약 60%, 쌀 가격은 30% 가까이 올라 식량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었으며, 아사자 발생과 강력범죄도 예년의 3배에 달하고 사제폭탄 투척 등의 조직화되고 대형화된 범죄도 발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지난 8월 초부터 군수공장을 풀가동하며 시작한 러시아로의 무기 수출 대금은 핵개발 비용이나 김정은 비자금으로 흘러 들어갈 개연성이 크지만, 식량·에너지 등 생필품 수급의 활로를 개척하는데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정은의 최대 관심사이자 푸틴이 언급한 첨단과학기술 이전에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그간의 관례로 볼 때, 러시아는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기술이전의 속도와 폭은 조절할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서도, 하마스 전력의 약 10%가 북한산 무기라고 알려진 가운데 국가정보원이 “김정은이 팔레스타인을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11.1)고 밝히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과거 중동지역이 북한의 제1 무기 수출 시장이었던 점을 고려해 볼 때 하마스는 물론 이란 등 반미·반이스라엘 국가로의 무기 밀매와 군사협력이 다시 활성화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

김정은의 예상 정책노선

가장 먼저, 북한은 그럭저럭 버티기(muddlling through)를 하면서 핵능력 고도화에 역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북한의 대러 밀착과 유럽·제3세계 해외공관 연쇄 폐쇄는 선택과 집중을 보여주는 조치의 하나이다. 무기수출 특수로 경제운용에 다소 숨통을 틔운 북한은 경제·국방발전 5개년 계획(2021~2025년) 수행에 박차를 가하면서 신형 미사일과 정찰위성 발사, 7차 핵실험 등을 통해 핵전력의 질(質)과 양(量) 제고에 박차를 가해 나갈 것이다.

“새형의 중거리탄도미사일용 대출력 고체연료 발동기들을 개발하고 1계단 발동기의 첫 지상 분출 시험을 11월 11일, 2계단 발동기의 시험을 11월 14일에 성과적으로 진행, 단히 만족스러운 결과가 이룩됐다.”(2023.11.15. 조선중앙통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은 보다 공세적이고 압도적인 대응력과 가시적인 전략적 억제군사행동으로 국가의 안전리익에 대한 온갖 위협을 강력히 통제관리 해나갈 것이다.”(2023.11.16. 북한 국방성 대변인 담화)

북한이 5월 31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의 발사 장면. /사진=조선중앙통신

다음으로, 이른바 신냉전 체제 공고화에 주력할 것이다. ▲북한은 핵개발 고지를 반드시 점령해야 하고 ▲중국은 최근들어 미국과의 패권경쟁에서 다소 전략적 숨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기본은 반미(anti-America)이며 ▲러시아는 미국·EU가 뒷배를 봐주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사활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다.

따라서 김정은이 갈 길은 명확하다.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군사-외교-경제적 방패를 튼튼히 하고, 필요시 미국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 한반도에 제3 전장 형성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윤석열 정부 무시와 국론분열 조장 책동이다. 김정은은 하노이 미북회담 결렬이후 문재인 정부를 철저히 무시하였으며,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도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2022.8.19 김여정), “미국의 충견”(2023.10.27 평양출판사 책자) 등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다.

최근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공식 호칭을 쓰는 것도 “같은 민족으로 보지 않겠다. 다른 적대국처럼 핵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위한 고도의 선전선동술이다. 혹여 김정은이 핵문제 등 대외정책에 변화를 도모하더라도 미국과의 직거래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를 무시하고 우리 사회를 갈라치기 하는 전략 전술을 고수해 나갈 것이다.

맺음말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무기외교(weapon diplomacy)를 핵개발로 인한 외교·경제적 고립 탈피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경제 실리 획득과 반미연대 형성이라는 ‘기회의 창’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로 볼 때 김정은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감내하는 기존의 강대강(强對强) 정면돌파전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변화 모색은 시기적으로는 트럼프가 재선할 가능성이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2024.11) 이후, 내용적으로는 비핵화가 아닌 군축을 위한 회담장으로의 복귀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미국,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유엔 등과 긴밀한 공조하에 북한의 불법 활동에 보다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여기에는 육해공 추적·경고와 제재 부과는 물론이고 선제적 차단, 나포, 폭파 등 군사적 조치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대중·러 전략 외교 강화를 통해 북한의 북중러 대 한미일 대결 구도 형성 기도를 저지하면서 북한 사회를 밑으로부터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김정은 체제 허구성 및 외부세계 실상 전파)을 꾸준히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위 정론은 ‘Newsletter by SAND’(2023.11) 내용을 기초로 작성됐습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