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칼럼] 핵무력 완성과 핵보유국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월 27일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언제 어디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한다”면서 핵무기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재차 지시했다. 신문은 ‘화산-31’로 명명된 것으로 보이는 새 핵탄두가 대량생산된 모습도 전격 공개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은 2017년 9월 6차 핵실험과 11월 화성 15형인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사실상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의사를 밝혔다. 또한 그해 4월 당 중앙위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표면적 성과를 바탕으로 대미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결국 2019년 하노이회담을 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의 언론은 북미 간 빅딜에 주목했고, 두 정상의 단독회담 장면은 북한이 정상 국가에 올라선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이 당시 우리 정부는‘한반도 운전자론’을 운운하며 북미 간의 협상테이블을 제공하는 중개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렇지만 북한은 결과적으로 깨진 협상에 대한 책임을 우리 측에 돌리며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 ‘오지랖 넓은 사람’ 등 갖은 막말을 퍼부었다.

인제 와서 돌이켜보면 북미협상 과정에 우리 정부의 역할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도 의문이 든다. 혹시 북한의 목적 달성을 위한 행차에 들러리 섰던 것은 아니었는지? 만일 북한이 미국에 원했던 것을 받아들여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협상 의도보다도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의도였다면 더욱더 그렇다.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가장 먼저 개발하고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는 미국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종지부를 찍은 것 역시 일본에 사용된 두 발의 핵폭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당시 세계 모든 나라는 핵무기의 위력을 목격하게 되었고, 서로 먼저 핵보유국이 되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당시 소련이 이어 핵개발에 성공함과 동시에 냉전체제는 본격화되었고, 이 과정에 중국을 포함한 5개국이 핵 개발을 완성하여 이른바 공식적인 핵보유국이 되었다. 미국은 더 이상 핵무기가 확산할 것을 우려해 1970년 NPT(핵확산금지조약)를 주도해가며 발효시켰다. 따라서 5개국 이외의 어떤 나라도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할 수 없도록 금지한 것이다. 미국은 핵무기 최초 개발국에 대한 책임과 핵 종주국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후 요동치는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에 몇몇 국가가 핵 개발에 나섰다.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이 후발주자로 나선 것이다. 이들 국가는 각기 핵을 보유하기 위한 정당성을 내세웠다. 적대국이나 다름없는 주변국이 핵무기를 보유함에 따라 자국이 핵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핵무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인도는 인접국인 중국의 핵 위협으로부터 핵 억제력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파키스탄 또한 인접한 인도의 핵 개발이 자국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는 논리가 그 이유였다. 또한 이스라엘의 경우 주변 아랍권 국가들과의 첨예한 대립과정에서 생존권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핵 개발에 나섰던 것이다. 결국 이들 국가는 NPT에 가입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았고 국제사회로부터 역시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공통적인 것은 미국과 대립하거나 적대적 관계가 아닌 우호관계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 중동정책에서 협력관계에 있었던 것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은 현재 분명하지는 않지만, 핵탄두 30~40발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북한은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14기 7차 회의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 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핵무력정책법을 자국 법령으로 공표했다. 이것은 국제사회에 정당한 방위 수단임을 내세워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고자 하는 목적이다.

북한이 이렇게 핵무기 개발과 완성을 이루고, 일정량의 핵탄두를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핵보유국으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핵보유국으로서 인정받지 못할 경우 지금과 같은 대북제재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상 국가로서 세계무대에서의 활동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국내적으로도 민생문제 해결과 향후 경제발전을 위한 여건 조성이 계속 미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북한이 인도나 파키스탄과 같이 암묵적으로라도 핵보유국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부터의 인정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내세우는 핵보유국으로서의 당위성에는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이 미국의 적대적 정책으로부터의 방위 수단이라고 설명하는데, 이것을 적대국인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만일 미국으로부터 인정받는다고 가정하면 적대국이 아닌 우호국이 되어야 하고, 방위 수단이었던 핵무기의 보유가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원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북한이 오랫동안 핵 개발에 많은 공을 들여왔던 이유는 체제 유지를 위한 목적일 것이다. 그동안 이로 인해 대북제재 속에 고통스러웠지만 체제의 결속과 통치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북한이 가질 수 있는 카드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최근 러시아와의 관계개선 모습만 가지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던가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엔 부족하다. 아무리 핵 무력 완성을 외친다 해도 현재 북한으로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지 못하면 핵 개발의 의미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핵보유국 지위를 얻고자 핵무기를 더욱 고도화하고 핵탄두 수량을 늘린다면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의 각종 제재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는 중국과의 관계마저 불안해질 수도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것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미국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어디에 속하는 명분을 가졌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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