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 나는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北 여성의 회고

[북한 비화] 2014~2018년 함경북도 보위국 정보원으로 中서 활동하며 한국행 시도자 밀고

/그래픽=데일리NK

2018년 9월 퀴퀴한 담배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컴컴한 함경북도 보위국 안가(安家)에 한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그는 2014년 중순 비법월경자로 함경북도 보위국에 체포돼 보위국에 충성 맹세를 한 후 다시 중국에 침투돼 ‘스파이’(정보원)로 활동한 30대 후반의 한모 씨였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고난의 행군 시기에 벌어진 대량 탈북 현상을 엄중히 보고 수차례에 걸쳐 국가보위성과 군(軍) 보위국, 그리고 국경의 도(道) 보위국들에 전방위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지시했다.

이후 국가보위성은 ‘원수님(김정은)께서 한때 어려움 때문에 조국을 버리고 달아난 우리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데려올 데 대한 말씀을 주셨다’며 국경의 도 보위국들에 탈북민들을 귀향시킬 묘책을 내놓도록 압박했다.

이에 함경북도 보위국은 한국에 간 탈북민들을 회유·유인하고 한국행을 시도하려는 중국 내 탈북민들을 색출할 정보원 구축을 아이디어로 내놓고 즉각 실행에 옮겼다.

도 보위국은 당시 중국에서 북송돼 구류돼있는 비법월경자 가운데 출신, 사회성분이 나쁘지 않은 여성들을 추려 충성 맹세를 하게 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려보냈다. 실제 이 여성들에게 내려진 임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한국행을 기도하는 중국 내 탈북민을 색출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한 씨는 바로 이때 도 보위국에 발탁돼 중국 지린(吉林)성을 중심으로 맹활약했던 스파이였다.

2008년 먹고살기 힘들어 몰래 국경을 넘은 한 씨는 중국에서 천대와 괄시라는 비참한 현실을 경험했다. 하지만 굶을 걱정 없이 하루 세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다 원치 않게 북송됐다.

먹고살 길 없는 조국보다 도 보위국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중국에서 사는 것이 낫겠다 생각한 한 씨는 정보원으로 발탁된 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 지린성 내 여기저기를 다니며 한국행을 시도하려는 20여 명의 탈북민을 밀고했다.

그 공로로 치하받은 그는 2018년 북한 정권수립(9·9절) 70주년을 맞으며 ‘핵심 정보원을 불러들여 면밀히 강습시키라’는 국가보위성의 지시에 따라 임시 소환돼 도 보위국 안가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한 씨는 앞으로 4년간 한국 내 탈북민들을 유인하는 사업에 참여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그 안에는 중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가 일반 탈북민들과 똑같은 과정을 밟고 잘 정착해 다음 지시를 기다리라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2018년 10월 조선족 남성과 함께 살던 중국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중국에서 브로커를 물색해 한국으로 들어갔어야 하지만, 덜컥 아이가 생겼다. 도 보위국은 아이를 없애서라도 한국에 들어가 임무를 수행하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한 씨는 아이가 한 살이 되면 바로 한국에 가겠다며 버텼고 그렇게 2019년을 넘겨 2020년을 맞았다.

그리고 그해 코로나가 전 세계를 뒤덮으면서 한 씨는 영영 중국에 눌러앉게 됐다. 이후 그는 도 보위국과의 연계를 끊고 중국 내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현재 그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서른넷에 나는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태어난 내 고향은 돈 벌기 힘들고 몇몇 간부들만 배부르게 사는 곳이었고, 살자고 도망쳐 온 여기(중국)서는 공민권이 없어 물건 취급을 당했다. 그러다 조국으로 붙잡혀 갔다. 죽을 게 뻔한 감옥에 가야 하는 것이 무서워 스파이가 됐다. 나 때문에 한국에 가려던 우리(북한) 사람들이 많이 잡혀갔다. 지금은 스파이가 된 것을 후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