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서 연설한 탈북청년 “北 주민들 한 번이라도 더 기억해주길”

[인터뷰] '독재는 영원할 수 없다' 일침 놓은 김일혁 씨 “북한에 정보 유입하는 일 중요해"

17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 인권 관련 공개 회의에서 발언한 탈북청년 김일혁 씨. /사진=데일리NK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자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한 번이라도 더 기억해 주시길 바라요.”

지난 1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6년 만에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지난 2011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김일혁 씨(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가 시민 대표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의 인권 실상을 전한 김 씨는 줄곧 유창한 영어로 연설하다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독재는 영원할 수 없다. 더 이상 죄짓지 말고 인간다운 행동을 해라. 우리 북한 사람들도 인간다운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다”라며 북한 정권을 향해 일침을 날렸다.

지난 25일 서울 성동구 모처에서 만난 김 씨에게 유독 그 문장을 한국어로 한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국어는 남북 모두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이지 않나. 북한 당국에 우리 민족의 언어로 ‘더 이상 죄짓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었다”며 “딱 두 줄이었는데 그 말 만큼은 확실하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 씨는 영어로 연설하는 내내 회의장에 있던 중국과 러시아 대표 쪽에 일부러 더 시선을 두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중국 내 탈북민들이 한국 등 본인이 희망하는 국가로 입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에 말 하나하나 잘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경솽 유엔 주재 중국 부대사와 드미트리 폴랸스키 러시아 차석대사는 안보리에서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하며 대북 제재 완화를 언급했다.

김 씨는 이렇듯 중국, 러시아 대표가 북한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발언을 할 때면 의도적으로 고개를 돌려 더 쏘아봤고, 행여 공감한다는 의미로 비춰질까 단 한 번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고 한다.

김 씨는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을 직접 겪은 당사자이자 피해자다. 아버지가 한국과 통화했다는 이유로 4년형을 선고받아 옥살이했고, 그로부터 가족 전체에 대한 당국의 감시가 심해졌다.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뒤에는 북한에 남아있던 고모가 가족의 탈북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감옥행을 면치 못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슴 아픈, 때로는 잊고 싶은 이야기일 수 있음에도 그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북한의 실상을 알고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을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나의 증언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자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한 번이라도 더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전히 북한 당국으로부터 정보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김 씨는 “아직도 북한 당국이 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 북한 주민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북한 정권에 놀아나지 말고 외부 세계에 눈을 돌렸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그러려면 북한에 정보를 유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회의 현장에 있던 각국 대사들은 김 씨의 연설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김 씨에 따르면 린다-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포함한 몇몇 대사들은 회의가 끝난 뒤 그에게 다가와 ‘북한에서 직접 겪은 일을 용감하게 증언해 줘 고맙다’, ‘당신의 연설을 통해 많은 사람이 북한의 인권 상황을 알게 될 것’이라며 격려했다.

끝으로 김 씨에게 앞으로도 북한 인권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지속할 것인지 물었다. 그는 “북한을 경험한 입장에서 (인권 쪽에) 굉장히 관심이 많이 간다”면서도 “국제 개발 협력 쪽으로 더 공부해 전 세계 미개발 국가에 도움이 되고 싶고, 나중에 통일이 되면 내가 살던 북한의 개발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며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