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이탈 막으려 과장·거짓 선전에 탈북민 가족 내세워

[북한 비화] 탈북 동기 무너뜨릴 목적으로 짜여진 각본 내밀며 감형 제안한 보위국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 국경지대. /사진=데일리NK

코로나19 발생으로 북한이 국경을 철통같이 봉쇄하던 2021년 가을, 국경 지역 보위국들에 ‘중국과 남조선(남한)에 넘어간 자들의 말로에 대한 교양을 실리성 있게 하라’는 국가보위성의 지시가 내려졌다. 철저한 국경봉쇄에도 주민들의 탈북 시도가 끊이지 않자 국가보위성이 대책으로 내놓은 지시였다.

이를 접수한 함경북도 보위국은 그해 겨울 회령시 보위부에 긴급 체포돼 일주일 넘게 구금돼 있던 2명의 여성 주민을 주민 교양에 이용하기로 했다. 한 사람은 비법 월경(越境)해 중국으로 간 가족에게서 돈을 받았다가 단속된 50대 여성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중국 휴대전화로 탈북해 한국에 살고 있는 가족과 통화를 시도하다 걸린 20대 여성이었다.

도 보위국은 미리 준비한 각본을 이 2명의 여성에게 내밀며 ‘공개 투쟁에서 이 각본대로 심각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무거운 법적 처벌을 피하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며칠 뒤 도 보위국이 주관하는 공개 투쟁이 청진, 회령, 온성에서 3일 간격으로 진행됐다.

도 보위국은 코로나19 국경봉쇄 시작 이후 도강(渡江)을 시도했다가 붙잡혀 조사 중이거나 법적 처벌을 받은 대상의 가족들과 청년들을 불러 모은 뒤 미리 섭외한 2명의 여성을 앞에 내세워 이들이 자신들의 범죄 내용을 스스로 밝히고 자아비판 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했다.

그렇게 무대에 올려진 50대 여성은 ‘비법 월경해 중국에 간 가족이 공민권이 없는 처지에 집 앞을 지나는 차 소리만 들어도 공안이 잡으러 오는 줄 알고 숨죽이고 살고 있고, 조국에서 용서만 해준다면 돌아오고 싶다며 매일 울고 있다’고 했고, 20대 여성은 ‘남조선에 간 가족이 남조선은 사람 취급도 안 하는 인간 생지옥이니 여기로는 절대로 올 생각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탈북민 가족의 입을 통해 탈북민들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과장되거나 거짓된 선전을 극대화해 외부 세계에 동경을 품고 있던 주민들의 환상을 깨뜨리고 탈북 동기를 무너뜨리겠다는 게 도 보위국의 목적이었다.

도 보위국은 공개 투쟁 끝에 ‘중국에 간 자들은 천대와 괄시 속에 숨어 살면서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있고, 남조선에 간 자들은 조국을 배반했으니 돌아오고 싶어도 못 오고 죽지 못해 살아가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다반사다. 조국과 고향을 떠난 자들의 말로는 산 설고 물 설은 곳에서의 개죽음뿐이다’라며 공포선전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면서 도 보위국은 ‘중국, 남조선에 간 자들은 여전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이고, 그렇기 때문에 공화국은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들이 어디에 살았고 무슨 일을 했든 조국을 등진 죄를 스스로 반성하고 다시 돌아온다면 모두 용서하고 받아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과장되고 거짓된 선전으로 외부 세계에 대한 반감과 탈북에 대한 두려움을 주입 시켜 주민들의 체제 이탈을 차단하려는 교묘한 전략에 몇몇 주민들은 반신반의하며 흔들렸고, 이에 도 보위국은 소기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됐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공개 투쟁에서 도 보위국이 짠 각본대로 발언한 2명의 여성은 감경받아 각각 노동단련형 8개월과 1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