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잘 번다며 키우고는 이내 반동으로…北 무역 주재원의 ‘비애’

[북한 비화] 자금 상납 도구로 쓰다 수틀리면 소환…중국인들마저 혀 내두르는 관리 수법

중국 랴오닝성 단동에 있는 북한식당 ‘봉선화’ 종업원들이 차에서 물건을 내리고 있는 모습. /사진=데일리NK

2022년 10월 초 중국 선양 주재 북한 보위원들에게 ‘중국에 파견된 무역 주재원들 가운데 사상이 불온한 자들을 시범으로 긴급 소환하라’는 국가보위성의 과업이 떨어졌다.

국가보위성은 여기에 ‘전 세계적인 코로나 확산 기간 외국에서 가장 머리를 쳐들고 조국에 대한 불신을 조성한 대상 1~2명씩 물색해 자료로 묶어 제출하라’는 비밀 지령도 함께 내려보내면서 ‘이 사업은 관리급 일꾼들만을 대상으로 하라’는 기준도 덧붙였다.

이에 중국 주재 대외경제 부문 일꾼들은 사상 총화 대상으로 소환에 걸려들까 불안해하며 마음을 졸였다.

반면 중국에 나와 있던 보위원들은 쌍수를 들어 환호했고, 상부로부터 받은 과업과 비밀 지령 집행을 위해 코로나 기간 대외경제 부문 일꾼들의 사상 동향을 종합하는 데 혈안이 됐다.

코로나 전 북한은 연 1~2회 해외에 파견된 대외경제 부문 일꾼들을 본국으로 불러들여 사상 총화를 진행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터져 이들을 3~4년간 불러들이지 못했다.

결국 그간 하지 못한 대외경제 부문 파견 일꾼들에 대한 사상 총화를 한꺼번에 진행하기로 하고 그 임무를 현지에 주재하는 보위원들에게 맡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말 선양 주재 무역대표부 50대 남성 조모 씨가 1차로 소환됐다.

그는 평양으로 소환돼 총화 받는 자리에서 “코로나 기간 중국 선양에서 있었던 공적인 일, 사적인 일 모두 잘못 보고된 것이며 보위원이 평소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어 자신을 엮은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보위원이 돈을 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그것을 꼬투리로 잡고 못살게 굴어 해외에서 정말 힘들었고, 심지어 탈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까지 토로했다는 것이다.

조 씨는 또 “계획분도 다 바치고 보위원 개인 요구 돈도 다 보장할 때는 표창하더니 돈 보장을 안 해주니 노동자들이 내 말을 더 잘 듣는다는 것을 들어 종파분자 마냥 취급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국가보위성은 이 같은 조 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당자금 계획분에 항상 의견이 많은 불평분자’, ‘기회가 있으면 조국도 배반하고 들고 뛸 자’라면서 그를 사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해 가족과 함께 오지로 추방했다.

이 사건을 지켜본 대외경제성의 일꾼들은 “돈을 잘 벌면 잘한다면서 지위를 높여주고는 다시 반동으로 몰아 체포하는 식으로 무역일꾼들을 길러 잡아먹는다”며 국가의 행태에 환멸감을 표했다.

소환된 조 씨 소식을 전해 들은 중국 주재 대외경제 부문 일꾼들 속에서도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일부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중국인들에게 “차마 같은 조선(북한)사람이라고 부르기에 창피한 보위부 족속들이 당과 국가에 충성하겠다고 당 자금을 열심히 벌어서 바치는 우리 무역일꾼들의 지위가 커지기 전에 없는 흠을 잡아서 잡아먹고 있다”고 처지를 한탄하기도 했다.

실제 당시 중국 선양에서는 ‘보위원들이 술을 마시며 평소 제일 말째게(까다롭게) 놀고 눈에 든 가시처럼 놀던 X를 처리해 버렸다고 키득거렸다’는 후문도 돌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주재원들 사이에는 불신이 깊어졌고, 현지 중국인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감시하고 물고 뜯게 하는 북한식 관리 통제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