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류장에서 南대통령 연설 유포한 남녀…北 “3대 멸족감”

[북한 비화] '대한민국으로 오라'는 메시지 전했다가 부모 형제까지 모두 끌려가 '몰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왼편에는 북한 신의주, 오른편에는 중국 단둥이 보인다. /사진=데일리NK

2016년 가을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 안전부 구류장에 중국 손전화(휴대전화) 이용과 불법 밀수 사건으로 30대 초반의 남녀가 끌려왔다.

끌려온 남성은 몇 달 전 제대 명령을 받고도 인수인계를 구실로 의주에 남아 휘하에 있던 초소원들의 비호 아래 밀수로 돈을 벌던 평성 출신 초소장이었다. 그는 자기 고향인 평성으로 돌아가 약혼녀와 결혼식을 올리고 집 한 채 장만하려 의주에서 태어난 약혼녀의 집을 근거지로 삼아 밀수하면서 한탕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 중국에 많은 적동(赤銅)을 넘기고 있다는 주민 신고로 밀수 현장에서 약혼녀와 함께 체포돼 의주군 안전부 구류장에 끌려오게 됐다.

이미 제대 명령을 받아 사민이나 다름없는 초소장과 그의 약혼녀를 붙잡은 의주군 안전부는 이 사건이 도에 신소된 건이라 곧바로 이들을 도에 이관했고, 결국 두 남녀는 평안북도 안전국 예심과 구류장에 감금됐다.

그리고 며칠 후 계호원이 돌연 두 남녀가 각각 갇혀있던 감방문을 따더니 짐을 모두 가지고 나오라고 했고, 그렇게 이들은 이감된 지 10여 일 만에 어디론가 실려 갔다.

이들이 일반 범죄자에서 정치범으로 딱지가 붙어 보위국에서 관리 취급한다는 통지가 내려져 도 보위국으로 이관됐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나 알려졌다.

두 남녀가 적동 밀수로 의주군 안전부 구류장에 잠시 감금됐을 때 대기실에서 감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유포시킨 내용이 정치적으로 문제시돼 보위국이 신병을 확보하고 조치한 것이었다.

초소장과 약혼녀가 유포시킨 것은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기 바란다”는 2016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식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 내용이었다. 이 연설은 당시 중국 손전화를 사용하거나 국경 밀수를 하던 사람들 속에 쫙 퍼져 전 국경 보위부들에 ‘유포를 차단하라’는 국가보위성의 내적 명령이 내려질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의주군 안전부에 붙잡혀 온 초소장과 약혼녀는 감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바로 이 연설 내용을 전하고 “이 땅에는 희망이 없다. 이렇게 살 바에는 남조선 대통령이 오라고 할 때 가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는 당시 한 수감자의 밀고로 밝혀졌고, 도 보위국은 ‘3대 멸족감 사건’이라며 크게 떠들며 두 남녀의 부모 형제와 친척 30여 명을 불러내 조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한 달간의 조사를 끝낸 도 보위국은 문제 될 게 없다고 판단되는 친척들은 비밀 유지 계약서를 쓰게 한 뒤 풀어줬고 두 남녀의 부모 형제는 그대로 구류했다.

‘대한민국으로 오라’는 남한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한 두 남녀와 이들의 부모 형제는 참혹한 결말을 맞았지만, 이를 접한 북한 주민들은 ‘우리를 잊지 않고 기다려주는 나라가 있다’며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북한 군인과 주민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처한 참혹한 실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제사회 역시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는 여러분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권리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의 도발과 반인륜적 통치가 종식될 수 있도록 북한 주민 여러분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여러분 모두 인간의 존엄을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 놓을 것입니다.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랍니다.”
(2016년 10월 1일 박근혜 대통령 제68주년 국군의 날 기념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