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 장소로 알려진 풍계리 주변 주민들 상당수가 방사능에 노출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발간돼 주목된다.
인권 조사기록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21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과 영향 매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TJWG는 지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00여 명의 탈북민을 면담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 중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지역에 살았던 32명의 진술을 통해 위치 정보 등을 수집했고, 여기에 탈북민 4명에 대한 추가 면담을 통해 북한에 있을 당시 핵실험 인지, 식수원, 한국 입국 후 피폭 검사 참여 경험과 의견을 모아 이번 보고서를 작성했다.
TJWG는 실제 이 보고서를 통해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에 위치한 풍계리 핵실험장으로부터 방사성 물질이 유출, 전파되고 있을 가능성에 따라 북한 주민들이 건강과 생명에 큰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방사성 물질은 풍계리 핵실험장으로부터 반경 40km 내 3개 도(道), 8개 시(市)·군(郡)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이 영향 내 있는 인구는 약 108만 명이다. 방사성 물질에 영향을 받은 주민이 50% 또는 25%라고 가정하면, 약 54만 명 또는 27만 명이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이 보고서에는 풍계리 인근 지역 지하수가 방사능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와 관련해 TJWG는 “북한의 2008년 인구조사 데이터는 길주군이 포함된 함경북도의 여섯 가구당 거의 한 가구(15.5%)가 지하수, 우물, 공동수도, 샘물 등을 식수로 사용한다”면서 “집안 수도가 있어도 만성적 전기부족으로 무용지물이 되어 지하수와 우물 등을 식수로 쓰는 가구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은 토양에 잘 흡착되고, 빗물을 타고 흐르거나 지하수로 스며들며 확산한다. 이에 미국과 중국의 지하 핵실험장은 주로 지하수가 희박한 사막지대에 있으나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은 강수량과 지하수가 풍부한 지역에 있다.
이에 TJWG는 풍계리 인근에 살았던 탈북민들의 피폭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TJWG는 “2022년 말까지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총 3만 3882명 가운데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후 풍계리 인근 지역(8개 시·군)에 거주하다가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 총 881명”이라며 “약 13억 9726만 원이면 풍계리 인근 지역에 거주한 881명 모두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서는 2019년부터 핵실험장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에 대한 전수 검사 실시를 통일부와 한국원자력의학원에 권고했지만 두 기관은 2019년부터 검사를 중단했으며 현재(2월)까지도 재개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앞서 2017년 통일부가 한국원자력의학원에 의뢰해 실시한 탈북민 30명에 대한 피폭 검사에서는 4명(13%)이 안정형 염색체 이상 7~10개, 방사선량 중앙값은 279~394mSv를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실시된 탈북민 10명에 대한 검사에서는 5명(50%)이 안정형 염색체 이상 7~59개, 방사선량 중앙값은 279~1386mSv에 달했다.
원자력 관련 업무 종사자의 연간 방사선 피폭량 기준은 20mSv다.
TJWG는 ▲피폭 검사를 희망하는 풍계리 인근지역 출신 탈북민 전원에 대한 검사 재개 및 조사결과 공개 ▲북한산 농수산물에 대한 검역 강화와 국제공조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에 관한 즉각적이고, 효과적이고, 철저하고,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 및 피해 방지와 구제를 촉구했다.
이영환 TJWG 대표는 “그동안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안보 문제로만 논의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보고서는 북한의 핵실험이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 사람들의 생명권과 건강권까지 위협하는 인권 문제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의미가 있다”면서 “북한 안보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