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판매소 때문에 농가 소득 하락… “더 힘들게 하고 있다”

농민 초과생산량 반강제적으로 수매…시장보다 30% 싼 가격에 '울며 겨자먹기'로 내놔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7일 김덕훈 내각총리가 함경남도와 남포시의 여러 단위사업을 현지에서 요해(파악)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김 총리가 식량공급 실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대책을 강구했다고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양곡판매소를 설치한 이후 농가 소득이 크게 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양곡판매소를 통해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있지만, 정작 농민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데일리NK 평안남도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농업 생산량 감소에 더해 양곡판매소의 반강제 수매로 농가마다 수확철 소득이 예년에 비해 25~30%가량 하락했다.

농민들은 수확이 끝난 후 개인 소득으로 분류되는 생산분을 시장의 곡물 장사꾼에게 팔거나 개별적으로 장마당에서 판매하는데, 양곡판매소가 설치된 2021년과 2022년 추수 이후에는 양곡판매소가 농가를 돌며 농가의 개별 소득에 해당하는 초과 생산량까지 수매를 강요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시장에 내다 팔면 1kg에 최소 5000원 이상 받을 수 있는 쌀을 양곡판매소에는 3800~4000원에 넘겨야 해 30% 이상 가격 손해를 보기 때문에 농민들은 되도록 시장에 쌀을 팔고 싶어 한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양곡판매소는 ‘애국농민’, ‘충성분자’, ‘애국미’라는 명목을 붙여 농민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쌀을 거둬들인다고 한다.

양곡판매소에서는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농민에게 수매 받은 쌀을 1kg당 500~700원 마진을 붙여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문제는 지난해 농업생산량이 감소하면서 농민들이 개별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초과생산량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농촌진흥청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2022년도 식량 생산량은 451만t으로 2021년의 469만t보다 3.8% 정도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안도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지난 2022년 쌀 생산량이 2021년도의 60~70% 수준”이라고 밝히는 등 농민들이 체감적으로 느끼는 지난해 생산량은 예년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초과생산량이 지난해보다 30~40% 감소한 상황에서 개별 소득에 해당하는 생산분의 상당량을 30% 이상 싼 가격에 양곡판매소에 수매하니 농가 소득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소식통은 지적했다.

실제 한 농민은 “판매소에 쌀을 판매할 경우 쌀 100kg에 15만원, 1t이면 150만원 손해를 본다”며 “15만원이면 한 개 농촌 가정이 한 달을 살 수 있고, 150만원이면 열 달을 살 수 있는 돈인데 일년 내내 농사를 지어놓고 다음 해를 버틸만한 돈이 안 남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가) 농촌발전, 농촌진흥 얘기하는데 양곡판매소는 농민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월 25일 ‘서로 돕고 이끄는 우리 사회의 미풍을 더 활짝 꽃피워나가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어렵고 힘들수록 서로 돕고 위해주는 덕과 정의 힘으로 오늘의 난관을 뚫고나가려는 것은 우리 인민의 가슴 속에 굳게 자리잡은 드팀없는 신조이고 열렬한 지향”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다만 양곡판매소는 농민에게 수매 받은 쌀의 질에 대해서는 크게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서 농민들은 건조가 제대로 되지 않은 쌀이나 돌 같은 이물질이 섞여 있는 질 낮은 쌀을 판매소에 넘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양곡판매소에서 판매하는 쌀에 대한 주민 불만이 높은 편이고, 실제로 주민들 사이에서는 “값은 눅지만(싸지만) 그만큼 질이 낮아서 먹을 수 있는 알곡을 가려내면 시장 쌀값과 큰 차이가 없다”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양곡판매소가 곡물을 상시 판매하는 것이기 아니기 때문에 시장 쌀값 안정화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농업생산량 부족과 수매 차질로 현재  양곡판매소의 곡물 판매는 비정기적일 뿐만 아니라 그 양이 극히 적다”며 “양곡판매소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북한 식량 가격 안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현재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쌀값 안정화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북한 고위 간부가 각 지역의 양곡판매소를 돌면서 운영실태를 점검하는 일이 잦아졌다. 북한 당국도 양곡판매소의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북한 매체는 김덕훈 내각총리가 남포시 안의 양곡판매소들의 식량 공급 실태를 요해(파악)하고 필요한 대책을 강구했다고 보도했고, 지난달 28일에는 평안남도, 평안북도 안의 여러 식량공급소와 양곡판매소의 운영실태를 현지에서 알아보고 해당한 대책들을 세웠다고 전한 바 있다.

앞서 북한은 이달 하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를 소집해 농사 문제와 농업발전의 전망 목표를 토의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계기에 양곡판매소 문제 해결에 관한 새로운 조치가 나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