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근원은 물질에 있다는 사회주의 유물론에 입각해서 북한 정권은 종교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 북한에 종교시설이 있다. 평양에 몰려 있는데, 불교시설은 지방에 역사 문화유적으로 일부 사찰이 복구, 보존되고 있다.
북한 종교시설에 대해서 위성사진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개신교시설로는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있다(그림1).
기독교가 융성하여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다던 평양에서 만경대구역 건국동에 봉수교회가 있다. 1988년 10월에 완공됐다. 나무위키 등 자료에 의하면, 북한이 88서울올림픽에 충격과 자극을 받고 경쟁적으로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1989년 6월)하게 되는데, 당시 서방 세계에 ‘종교의 자유’를 보여주려고 가시적인 형태로 봉수교회 등 종교시설을 부랴부랴 급조해서 설립한 것이라고 한다.
위성사진에서 보면, 보통강 건너편에 봉수교회가 있고 옆쪽으로 평양신학원, 뒤에 목사관, 앞쪽에는 조선그리스도교 연맹 중앙위원회 청사 건물이 있다. 봉수교회 앞마당에는 바닥에 배구코트 라인이 그어져 있는 게 보인다. 교회에는 평상시 관리원 가족만 거주하다가 외국인이 참관 시에 노동당이 엄선한 40~50대 남녀 집단이 집결해서 위장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캐나다 출신 임현수 목사에 의하면, 이곳에서 예배를 보려면 통일전선부에 몇만 불 이상을 선입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북한 노동당에 수천만 원을 갖다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통일전선부장은 “냉면 목구멍” 발언으로 대한민국 사회에 악명을 떨쳤던 바로 그 리선권이다. 리선권이 2022년 6월 통일전선부장으로 새로 임명이 됐다. 본래 북한에는 기독교 신자는 적대계층으로 분류돼서 1950년대 말에 이미 다 박멸이 됐다는 게 정설로 알려진다. 지금 있는 것은 다 보여주기 위한 거짓 쇼라는 것이 나무위키 등의 설명이다.
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 1동에는 칠골교회가 있다(그림 1 오른쪽). 1992년 11월 29일 완공이 됐다. 강반석 즉, 김일성 모친이 장로교 집사로 교회를 출석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건축된 것이고, 김일성도 어린 시절에 엄마를 따라서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이곳 칠골교회에는 김일성 어머니 강반석 동상과 함께 박물관도 있는데 위성사진에서 보면, 우하단에 기념박물관을 본교회보다 더 크게 지어 놓았다.
그림 2에서 평양에는 카톨릭 장충성당과 러시아정교 정백사원이 있다.
카톨릭 교회인 장충성당은 평양시 선교구역 장충 1동에 있다. 본래는 1934년에 건축됐던 건데, 1949년 김일성의 반종교정책으로 폭파됐다가 이후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대비해 종교시설을 복구할 때 부랴부랴 급조해서 건립하고 그해 10월 9일 완공이 된 것이다. 그런데 로마 교황청에서는 이 장충성당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8.15해방 후 북한에서는 카톨릭이 반공을 앞세우며, 특히 가장 비협조적이었다. 그 이유는 성당은 바티칸에 소속된 것이라며, 북한 공산정권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당시 김일성이 장충성당을 폭파해버린 것인데,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급히 복구한 것이다. 나무위키 등 설명에 의하면, 이곳 장충성당에는 신부와 수녀는 없고, 신자들끼리 모여서 회장과 부회장 두 사람 주관하에 자체적으로 기도회가 진행된다고 한다.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 2동에는 러시아정교회 성당인 정백사원이 있다(그림 2 오른쪽). 김정일이 2001년과 2002년 러시아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기념하여 건축되었고, 2006년 8월 24일 축성식을 진행했다. 위성사진에서 정백사원 앞에는 조선정교연맹 본부와 사제관 건물도 보인다.
불교 사찰로는 그림 3에서 평양시에 대표적으로 광법사가 있고, 평남 평성시 등 지방 몇 곳에 사찰이 있다. 그중 평남 평성시 안국사는 지난해 말 북한이 복원 후 처음 공개한 것이다.
평양시 대성구역 대성동에 광법사가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절 창건된 것이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사찰이라고 하는데, 시설로는 들어가는 입구에 해탈문에 이어 천왕문이 있고, 대웅전 앞에 8각 5층 석탑이 서 있다. 석탑 양옆으로 서승당과 동승당이 있어서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와 강습하는 선원으로 쓰인다. 스님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다녀오며 출퇴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방 사찰로는 대표적으로 평남 평성시 봉학동에 안국사가 있다. 고구려 때 창건된 것이고 종교시설 복원이 아닌, 민족 문화유산 가꾸기 차원에서 보수하고 2022년 10월 공개한 것이다. 김정일이 젊은 시절 이곳을 방문해서 “우리 옛 건축술을 보여주는 훌륭한 역사유적”이라고 상찬했다고 한다.
이상 살펴봤듯이, 북한의 종교시설로는 평양에 교회가 2곳, 성당이 1곳, 러시아정교 사원이 1곳이 있고, 그리고 불교 사찰이 평양과 지방 몇 곳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교회와 성당은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대비해서 외국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급조한 것이라는데, 우리의 서울 88올림픽이 결과적으로 이들 종교시설 복원에 역할을 했고 공을 세운 것이다.
맺음말
과거 서울 88올림픽은 대회 유치 준비단계에서 국내외로부터 부정적인 기류 속에서 시작이 되었다. 당시 한국같이 작고 가난하고 민주화가 덜 된 나라가 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 대체적인 우려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이후 서구 공산권 붕괴 및 몰락에 일조를 했다는 일부 분석까지 나온다. 반면, 북한에는 이것이 재앙이었다. 우리의 88올림픽을 따라 하겠다고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무리하게 추진을 하다가 나라가 거덜이 난 것이다. 외국의 많은 손님을 초빙하고 모셔와서 먹이고 재우고 구경시키고 접대하느라 부족한 외화를 탕진했고, 또 준비과정에서 호텔과 식당 및 기타 사회 인프라를 서둘러 급조해서 날림으로 구축하느라 경제가 파탄이 난 것이다. 이것이 결국 1990년대 중반부터 고난의 행군으로 이어졌고, 300만 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진다. 외신에는 북한 인구의 10분의 1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됐고, 지금도 일부 그렇게 인용이 되고 있다. 북한 인구 10분의 1이면 당시 250~260만 명 정도일 것으로 추산이 된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 고난의 행군에는 서구 공산국가의 붕괴와 몰락이 크게 작용을 한 것으로 본다. 동구라파로부터 대북 원조가 끊긴 것이 영향을 많이 끼쳤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북한은 동유럽 공산권에서 대주는 경제원조에 의지해서 먹고 산 것이다. 반면, 우리 한국은 당시 해외 원조에서 벗어나서 경제 자립을 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당당하게 바뀌었다. 이러한 사례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고 한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부끄러운 나라”가 결코 아닌 것이다. 과거 몇몇 정치인들이 선동한 대한민국 비하 발언이 지금도 우리를 슬프고 화나게 한다.
과거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우리보다 더 잘살았다고 한다. 북한이 경제를 잘해서가 아니고 그만큼 서구 공산권에서 경제원조를 많이 해 줬다는 것이다. 우리도 해외 원조받았지만, 복지 한다고 나눠 먹기만 하진 않았다. 나눠 먹으면 똥 되고 남는 건 제로다. 우리는 원조 포함 외국 차관을 빌려서 경제 기적을 이룬 것이다. 북한은 해외 원조가 영원히 계속될 줄 알고 거기에 취해서 자립할 생각은 안 하고 그냥 베짱이처럼 놀고먹기만 했나 보다.
무엇이 이러한 남과 북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체제와 이념의 차이도 있겠지만, 지도자의 차이가 크다고 본다. 지도자를 잘 만나면, 월드컵 축구에서 우리가 세계 4강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지난 우리의 선구적 지도자들께 감사할 일이다.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애 많이 썼다. 우리 서로에게,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세대께도 감사할 일이다. 배고팠던 과거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에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