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절 선전에 “위선” 직설한 노병, ‘정리 대상자’로 관리소행

[북한비화] "선전부 교양 내용은 과장됐다" 공공연히 발언했다가 가족들과 함께 끌려간 사연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승리 69돌 경축 전쟁노병들과 청년학생들의 상봉모임이 전날(26일) 열렸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북한 인민군 전쟁 노병 김모 씨는 매해 전승절(7·27, 정전협정체결일)이 다가오는 7월 초면 한결같이 당 선전부가 써준 대본을 암기하고 노병 상봉 모임 행사에 나가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시기 우리는 당과 수령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싸웠다.”

그러나 행사에 참여하고 돌아온 김 씨가 친구들과 자식들의 귀에 못이 박히게 한 말은 따로 있었다.

“17살 나이에 ‘당과 수령을 위하여’ 이런 말은 잘 몰랐다. 그보다는 ‘내 고향의 촌토를 사수하자’는 구호로 싸웠다.”

평안남도 맹산군이 고향인 김 씨는 17살이 되던 1950년에 징집돼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1952년 초 부상으로 제대한 뒤 총탄을 생산하는 지방의 어느 한 군수공장에 배치돼 줄곧 전상자(당시 상이군인을 부르던 칭호), 참전 노병으로 대우를 받으며 평탄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그는 지난해 전승절 노병 상봉 모임이 있은 지 두 달쯤 지난 9월 어느 날 새벽 함께 살고 있던 아들 가족들과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순간에 일가족이 사라지자 동네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후 노병 김 씨의 아들이 일하던 공장 당위원회에 국가보위성 통보자료가 내려오면서 주변 사람들은 김 씨 일가족이 왜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북한 보위부는 “전승 세대는 당과 수령을 위해 조국을 지켰다”는 선전 교양에 대해 ‘과장’이라거나 ‘위선’이라고 발언한 김 씨를 ‘정리 대상자’로 처리하기로 하고 사회와 철저히 격폐해야 한다는 결론 하에 관리소로 보낸 것이었다.

국가적으로 대우를 받으면서 수령 결사옹위 정신을 후대에 물려주기는커녕 깜빡깜빡한 정신과 흐리멍텅한 기억으로 반체제적인, 사상적으로 뾰족한 막말을 내뱉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씨는 지난해 전승절을 앞두고 어느 한 군부대에서 진행된 노병 상봉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사람들과 술 한잔을 걸치면서 실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오늘 ‘당과 수령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싸웠다’는 선전부 글대로 말하긴 했는데 내가 수십 년째 상봉 모임에서 하는 선전은 사실 내 말이 아니야. 그냥 선전부에서 써줘서 하는 말이지. 2015년 전승절 상봉 모임 행사 때는 내가 겪지도 않은 전투를 진짜처럼 말한 적도 있어.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있었던 사실 그대로 말하면 되는데 선전부 교양 내용은 과장되고 위선적이야.”

이러한 김 씨의 직설은 보위부가 그를 ‘정리 대상자’로 분류해 관리소에 보내게 된 핵심 발단이었다.

보위부는 국가가 최고로 대우하는 전쟁 노병이 체포됐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워하는 주민들에게 ‘노병이라고 다 같지 않으며 의심되는 사람들도 많다’며 ‘그가 노병임에도 과거 막노동자로 일한 것은 평소 사상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김 씨의 사상성을 들먹여 그를 헐뜯었다.

특히 보위부는 김 씨와 함께 처벌받은 가족들을 두고서는 ‘부모가 혁명가라고 자식도 저절로 혁명가가 되지 않는다. 반동 노병의 자식들까지 처리한 것은 청년들을 각성시키는 시범적 교양의 계기’라고 말하며 청년들의 사상성을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하기도 했다.

북한은 여전히 전승절 계기에 노병들을 치켜세우며 후대들도 당과 수령을 위해 한목숨 바쳐야 한다는 내용으로 청년들을 교양하고 있다. 그러나 체제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거나 선전에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되는 순간 어제의 혁명 선배도, 위대한 전승 세대도 하루아침에 정리되는 것이 지금의 북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