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주민들에게는 생사 문제…국제사회와 공조 중요”

[인터뷰] ‘악질 대결분자’라는 北 비난 속 임기 시작…"정권 상관없이 북한인권결의안 참여해야"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에 임명된 이신화 고려대학교 교수. /사진=데일리NK

지난 5년간 공석으로 있던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이하 북한인권대사)에 이신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임명됐다. 북한인권법 제9조 제2항에 따라 정부는 북한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위해 외교부에 북한인권대외직명대사를 둘 수 있으나, 2017년 9월 초대 이정훈 대사가 임기를 마친 뒤 줄곧 이 자리는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지난 5월 윤석열 정부가 정식 출범한 이후 정부는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북한인권법의 충실한 이행의 일환으로 전임 정부에서 내내 비워두고 있던 북한인권대사를 임명했다. 그렇게 이 교수가 발탁되자 북한은 즉각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비난하고 나섰다.

“5년 동안 공석으로 남아있던 북인권국제협력대사라는 것을 임명했다고 떠들어대면서 반공화국 인권 소동에 광분하고 있다”(우리민족끼리 3일자 기사 中)

“역적패당은 하등의 필요가 없는 존재인 것으로 하여 지난 5년 동안이나 비여있던 북인권국제협력대사라는 자리에 악질 대결분자를 임명해놓고 쑥대 끝에 오른 민충이마냥 기고만장하여 국제무대에서 반공화국 인권압박 분위기를 고취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통일의 메아리 3일자 기사 中)

이는 북한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공론화되는 것에 북한이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데일리NK는 지난달 28일 북한인권대사 임명장을 받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 교수를 4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전날(3일) 북한으로부터 난데없는 막말을 들은 이 교수는 “북한의 직접적인 타깃이 되기는 처음”이라면서도 “미국 그리고 유엔과의 공조는 물론이고 생각이 같지 않은 나라(unlike-minded)들과도 협력함으로써 북한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게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인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북한이 선전매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비난했다. 이렇게 북한의 타깃이 될 수 있는 데다 비상근 무보수인 대외직명대사직을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에는 가족들이 반대했다. 이미 해킹도 한차례 당했고 가족들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소명이라 생각한다. 만약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하라고 했으면 안 했을 거다. 비상근이기 때문에 학생들 가르치면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생각됐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북한인권 문제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인권이 생사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본다. 당장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전공이 다자외교인 만큼 북한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조금 더 끌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보람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집필한 논문이나 이력을 보면 북한인권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해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언급한 것처럼 다자외교안보가 전공인데 다자외교를 통해 북한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있을까.

“전공이 아니라는 것은 북한 또는 인권만 가지고 일을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주로 다자외교안보 영역에서 주로 활동을 해왔는데 그랬기 때문에 국제사회에 북한 문제를 다각적으로 공론화하는 것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엔에서 일할 때 난민 문제를 공부했다. 난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국제정세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봤다. 1995년에 국외 탈북자를 환경난민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문을 썼고 북한인권 문제를 보편적 인권, ‘인간안보(human security)’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얘기해왔다. 정부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에 나를 임명한 것도 북한인권 문제를 인류 보편적인 가치의 측면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믿고 있다.
다자적 외교 측면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는 것을 예로 들면 압록강을 건너 러시아나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자 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았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중국은 탈북자들이 굶주림에 경제적 이유로 탈북했지만, 정치적 박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정부에 탈북자는 북송될 경우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한 정권과 주민의 인권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설득해 나가는 작업이 유의미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중국 정부 관계자를 만나 직접 탈북자 북송 반대 의견을 전달할 수도 있을까.

“도움이 된다면 해야 하고 또 하고 싶다. 그런데 단발적으로 중국 정부에 탈북자 북송 반대와 같은 발언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적으로 비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국제사회와 공조하면서 국제법상으로 명문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더 효율적이고 중요하다고 본다.”

-북한인권 증진을 위해 ‘국제적 관여’와 ‘책임규명’이라는 두 가지 트랙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조사나 보고가 이뤄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 내에서 이뤄지는 인권 유린 문제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보고서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기록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알다시피 북한 당국도 국제사회가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책임규명과 국제적 관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동참하고 또 엘리자베스 살몬 신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도 적극 협력해 나갈 생각이다. 정권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는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인권)결의안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질문도 하나 하겠다. SNS에 적은 ‘아버지가 꿈꾸셨던 대한민국’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커리어, 그리고 북한인권대사직을 받아들인 것에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나.

“사실 그 문구는 2006년에 썼던 신문 칼럼 제목이다. 아버지는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니, 지금의 모습이나 활동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나도 대학 때 민주화 데모에 참여하기도 했고, 딸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아버지는 이를 반대하셨었다. 당시 군사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소위 ‘운동권 학생’만의 것이 아니었고 1987년 6.29선언을 이끌어낸 것은 많은 국민들의 승리였다. 하지만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통일운동으로 변모되면서 친북, 반미주의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스톱(stop)했다. 당시 칼럼에도 쓴 것처럼, 아버지가 꿈꾸셨던 대한민국은 풍요롭고 자유로우며 기본권이 보장되는, 그리고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자식과 손주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그런 사회였다. 그러한 사회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적용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