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생일 맞춰 열병식 준비했던 北, 거행 안한 이유는?

내부적으로 김정은 10년 업적 강조…소식통 "국방력 강화 부각할 수 있는 기념일은 4·25"

201010_열병식_발사관 6개 탑재 초대형방사포
북한이 지난 2020년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공개한 발사관 6개의 초대형방사포.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 당국이 대규모 열병식을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내부적으로도 열병식이 4월 15일(김일성 생일, 태양절)에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지도부가 이달 초까지 열병식 시점을 두고 고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22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열병식 거행 시점이 알려진 것은 이달 초순이다. 관련 사실이 통보되기 전까지 열병식 지휘부에서도 4월 15일에 맞춰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6월 북한 군 당국이 참가 병력을 모집할 때부터 태양절을 기념한 열병식이라는 점이 명시됐고, 열병식을 준비하는 지휘부뿐만 아니라 이를 지원하는 군부대들도 최근까지 4월 15일을 행사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북한군 총참모부는 지난해 6월 각 부대 및 군 교육기관 작전훈련부에 ‘태양절 110돐(돌) 기념 열병식’ 참가 인원 모집과 훈련사업 방향을 담은 명령서를 하달한 바 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번엔 3만 8천명…북한, 내년 태양절 110돌 최대규모 열병식 준비)

당시 총참모부는 참가자를 모집하면서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온 나라 인민들의 마음속에 높이 받들어 모시고 천세 만세 길이 전하며 성대히 기념하기 위한 열병식”이라고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언제, 어떤 이유에서 열병식 시점을 변경한 것인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북한 당 내부에서는 올해 초 당에서 조직된 행사준비위원회가 2월 16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 80주년부터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까지 이어지는 국가기념 행사를 기획하면서 열병식 시점을 계획일보다 연기시킨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지난 1월 19일 소집된 제8기 6차 회의에서 결정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10돌과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탄생 80돌을 성대히 경축할 데 대하여’를 채택했다.

결정서 채택을 계기로 당국은 2월 16일부터 4월 25일까지를 ‘민족 최대 경축 기간’으로 정했으며, 이 기간 진행되는 모든 기념일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권 10년 업적 부각’에 방점을 두라는 지시를 각급에 하달했다.

지난 2020년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이 실렸던 9축(18바퀴) 이동식발사차량(TEL)보다 길어진 11축(바퀴 22개)에 실려 마지막 순서로 공개됐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열병식 시점이 4월 15일 이후로 연기된 이후 북한 내부에서는 태양절보다는 인민혁명군 창건일이 김 위원장의 최대 업적인 국방력 강화를 부각할 수 있는 기념일이라는 주장도 뒤늦게 제기됐다.

‘수령님(김일성)은 장총 몇 자루로 항일 무장군을 조직했지만, 원수님(김정은)께서는 지난 10년 간 자주 혁명의 노선을 틀어쥐고 난관 속에서도 핵무력을 완성시켰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북한 내부에서는 ‘올해가 핵무장 고도화의 최정점을 이뤄야 할 시기’라는 점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북한 당국은 미-중, 미-러 갈등 격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대북제재 결의가 번번이 불발되고 있는 현시점을 핵무력 고도화의 최적기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각에서는 북한이 무기를 도열하는 데 있어 기술적인 완성을 이루지 못해 열병식 시점이 연기된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근 북한은 핵 개발과 관련해 상당히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위력을 과시할 수 있는 무기 체계의 미완성으로 인해 열병식 시점이 다소 연기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 1월 5일부터 최근 4월 16일까지 올해 들어서만 총 13차례에 걸쳐 군사 도발을 감행했다. 도발에 사용된 무기들은 준중거리탄도미사일급 극초음속미사일, 단거리탄도미사일, 장거리 순항미사일, 지대지 전술유도탄, 대륙간탄도미사일, 방사포, 신형전술유도무기 등 종류가 다양했다.

하나의 무기를 단계별로 고도화하며 짜임새 있는 개발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여러 가지 무기를 서둘러 선보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이 이번 열병식에서 과거 선보였던 무기의 개체 수를 늘리거나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무기를 외양만 개조해서 도열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양 부연구위원은 “새로운 무기를 선보이기 어렵다면 극초음속 미사일을 여러 개 싣고 나오거나 이동식발사대 같은 발사 수단을 과시할 수 있다”며 “또한 북한 입장에서는 현재 전략 무기에 대한 강조가 필요한 시점이기 필요하기 때문에 탄두에 중점을 두고 기동성 탄두(MRV·다탄두 재돌입체)나 멀브(MIRV·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체) 탄두를 과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